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일이 순탄할 수만은 없지만, 본인의 경우도 독일 생활을 시작하면서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었다. 인터넷 회사와의 의사 소통 문제로 인해 촉발된 당시 사건은 결국 거의 반 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관련 링크: 2009/04/16 - [My diary(log)] - 인터넷 문제 그리고...
 

덧붙임 #2

원래 여기에서 글을 맺고자 했으나, 문득 중요한 예외에 해당하는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벤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도, 벤처 기업 자체의 성공률은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굴지의 성공한 벤처 기업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두 번째 기회와 관계가 있다. 하지만, 또한 중요한 전제조건이 붙는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아무리 여러 번 실패한 사람이라고 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다면, 꾸준히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즉,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며, 도덕적 결함은 두 번째 기회 제공의 예외라는 것이다.

예컨대, 말과 행동이 항상 정반대이며, 기업인으로서도, 공직자로서도 항상 도덕적 결함 투성이었던 전과 십수범을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앉힌 것은, 두 번째 기회의 너그러움이 아니라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기회가 고국 사회에도 널리 허용되었으면 하는 필자의 의도가, 오독(誤讀)으로 인해, 절대로 다시 기회가 주어져서는 안되는 이들에게까지 기회를 주는 빌미가 될까 염려되어 몇 자 더했다. 마침 시기적으로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때니까.
지난 8월 26일에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독일 생활도 벌써 두 달 반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말이 서툴고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럭저럭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네요. 근황도 전할 겸, 정리도 할 겸 포스팅을 합니다.

1. 비자 신청 등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EU국가들을 한국인이라면 무비자로 90일동안 머무를 수 있습니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90일을 초과해서 머무르지 않을테니, 사실 상 관광목적인 경우에만 무비자를 허용한 것이지요. 그래도,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지 비자 신청이 가능해졌고, 그것이 이곳에서는 더 일반적이더군요. 도착해서부터 준비했던 것이고, 비자가 발급되지 않으면 독일 생활이 불가능하므로 제게 가장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순조롭게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더군요.

우선, 재정보증서류에서 암초를 만났습니다. 비자신청인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규칙적으로 일정 금액이 입금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현지 계좌에 거액을 예치해두어야 하고, 일정 기간동안은 상당부분 인출할 수 없도록 묶어두어야만 합니다. 환율이 역대 최악을 기록하는 최근 상황(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는 아직 유로화가 정식 출범하지 않았으므로, 유로화의 환율은 현재가 최악임)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후자는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부모님 역시 월급생활자가 아니므로 부적격.

결국 사업하시는 외삼촌이 나서서 재정보증서류를 발급받았습니다. 이 과정이 거의 한 달이 걸렸네요. 만일 도착 직후부터 준비하지 않았다면 매우 곤란했을 겁니다.

해당 서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iMac과 함께 제게 도착을 했고, 이를 들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

첫날 찾아갔을 때는 영사부 근무시간이 막 지났을 때더군요. (세상에! 오후 4시에 업무 종료라니...) 그래도 다행히 친절하신 직원분 덕분에 필요서류가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쉬운 건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호주제가 유명무실해진 건 알고 있었지만, 호적 자체가 사라진 건 몰랐습니다. 호적이 가족관계 증명서를 비롯한 여러가지 증명서로 분할(!)되었으며, 이들 모두 전자정부를 통해 프린터 출력이 불가능한 서류입니다. 또한 본인이 아니면 신청도 불가! 결국 전자정부를 통해 제가 직접 신청을 하고, 이를 우편 송달하게 했습니다. 이 서류를, 한국에 있는 본가 컴퓨터의 원격제어를 통해 스캔을 받았고, 아직 프린터가 없기 때문에, USB메모리에 이를 담아서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대사관에서 원래는 안해주는 건데, 약간의 아양(!)을 겯들여서 서류출력을 허가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독일어로 된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혼인증명서), 운전면허증 공증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드디어 필요한 모든 서류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의 과정도 꽤 우여곡절이었습니다만, 이후의 과정도 역시나(!)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행정관청 민원부서에서 전입신고를, 외국인관청 비자부서에서 비자발급을 요청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들 관청의 공무원들이 현재 파업중이라는 겁니다.

사실 전입신고는 10월부터 하려고 했었던 것인데, 매번 파업으로 인해 번호표 받는데 실패해서 11월까지 미뤄진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비자 신청도 안된다는 것이죠. 오전 8시부터 업무를 하는데, 7시에 관청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더군요. 제가 현재 거주중인 Wedding은 Berlin중에서도 외국인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항상 붐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업무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긴 줄이 늘어서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제 앞에 4명을 남겨둔 시점에서 번호표 분배를 종료했다는 것이지요. 역시 파업 때문에 정상업무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벌써 수차례 미역국을 먹었던 저로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베를린에 있는 모든 관공서 주소를 받아서 검색을 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구글 맵스가 없었더라면 여기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한국은 주소 체계가 상당히 어지러워서 구글에서도 제대로 된 지도를 등록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이곳 독일은, 심지어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팟터치에서조차도 주소만 입력하면 자세한 경로와 주변 지형을 알려줍니다. 이번에도 구글맵스의 힘을 빌어 다른 관청의 위치를 검색했습니다.

지난번 시내 중심에 있는 Tiergarten 관청에 갔을 때 깨달은 것이지만, 너무 중심부에 있는 관청을 가면 사람들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후미진 곳에 분청을 목표로 했습니다. Wedding의 북쪽에 있는 구역이 Reinickendorf인데, 이곳의 중앙관청도 아닌 동분청을 찾아갔습니다. 지하철 역으로부터도 꽤 떨어진 곳에 있더군요. 다행히 제 예상이 맞아서 이곳에서는 번호표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후미진 곳이라 점심을 사먹을 곳도 마땅히 찾을 수 없어서, 우리 앞에 대기중인 30여명을 믿고, 다시 도시 중심부로 나왔습니다. 참고로 Reinickendorf는 예전 Berlin에 포함되지 않았던 곳입니다. Berlin이 확장되면서 한 구역으로 편입된 것이지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전입신고에 성공(!)했습니다. 그날 일과는 그걸로 끝이었지요. 수업도 들어갈 수 없었고... 아마 한국에서 전입신고에 하루를 온통 들어 바쳐야만 했다고 한다면 믿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건 외국인 관청에서의 다음날에 비하면 약과였습니다. 전날 하도 데였던 아내가 아예 새벽부터 가서 기다리자며 오전 5시에 기상을 시키더군요. 전날 외국인 관청에 가는 길을 익히는 등 이것저것 조사하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던 저로서는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습니다.

Berlin 특유의 음울하고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외국인 관청에 도착한 건 새벽 6시를 갓 넘긴 시각. 하지만, 역시나 파업의 영향인지, 긴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업무시작도 안 한 시각이라 그 쌀쌀한 새벽 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대기하는 건 정말 고역이더군요. 아내는 인터뷰를 대비해 옷차림도 가볍게 하고 나와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의도하지 않았던 노상포옹을 한 시간 가량 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의 독일이라지만, 아직까지 그때만큼 장시간 사람들 앞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추위 앞에선 별 수 없더군요.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기다림 끝에 겨우 건물 내 진입에 성공했고, 대기표를 받았습니다만,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1차 대기 후 서류 작성을 했고, 다시 2차 대기 후 수수료 입금(60유로 x2), 그리고 3차 대기 후 결국 비자를 손에 넣었습니다만, 역시 이로 인해 그날의 일과를 모두 날렸습니다. 새벽 6시부터의 기다림은 무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결과로 나타났으니까요.

그나마, 저희는 양호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고도 조금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 약속(Termin)만 잡고 돌아선 사람도 있고, 심지어 그보다 늦게 온 사람은 아예 빈 손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니까요.

한국에서의 관공서 업무가 아무리 비능률, 비효율이라지만 적어도 기다림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독일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인터넷

이사하고 바로 한 것이 바로 인터넷 신청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길어야 1주일 걸리는 인터넷 신청이, 무려 한 달이나 걸린 것도 문제지만, 약 1주일 정상 작동하더니 먹통이 되어버린 인터넷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전화와 함께 물려있는 인터넷이기 때문에, 전화도 먹통이 되더군요. 휴대전화로라도 고장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잘 알아듣기도 힘든 ARS 안내를 10초간 들은 대가로 2유로 가량이 빠져나가는 걸 보고 다시 전화를 걸 엄두가 안 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 신청을 했던 동네 백화점 전자코너(dug)를 찾아갔습니다. 역시 아침 이른 시각에 찾아가서 점원보다 제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 점원, 지난 번 찾아갔을 때의 불친절함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저더러 직접 전화하라는군요. 짧은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건만 요지부동입니다. 한참을 졸랐더니 전화 번호 하나 딸랑 적어주면서 집에 가서 전화해보랍니다. 그리고 그 번호는 수신자 요금부담이니 휴대전화로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해주더군요. 하지만, 지난번에도 그렇게 적어준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로 밝혀진 바, 곧바로 현장 확인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없었던 휴대전화가 선불 충전 전화로나마 있었던 게 다행이었지요. 역시 해당 번호는 ARS안내만 나오고 곧바로 끊어졌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오기가 치솟더군요. 의자에 앉아서 응대하는 점원과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서서 끝까지 버티는 고객. 아내는 거의 주저 앉아서 한숨만 내쉬고 있지만, 어떻게는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 덕분에, 고맙게도(!!) 회사의 전화기로 제가 직접(!!)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영어는 그다지 보편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한국은 때때로 ARS에서 영어 안내를 들을 수도 있지만, 독일에서 그런 건 없습니다. 오로지 독일어로만 모든 것이 진행됩니다. 심지어 E-Mail까지도...

여하튼 그곳에서 2시간 씨름한 덕분에 문제가 해결... 된 것이 아니고 고장 접수만 했습니다. 연락 주겠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전혀 연락을 들을 수 없었고, 결국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들었습니다. 아마 도합해서 3~4시간은 기다렸을 겁니다. 한 10여분 대기하다보면 나중에 다시 걸어달라는 말과 함께 끊어버리는 매정한 ARS만 상대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말입니다. 정말 소싯적 8비트 컴퓨터 게임하던 시절의 근성을 다시 끄집어 내는 곳이네요.

어쨌거나, 이렇게 근성으로 도전과 재도전을 거듭한 결과, 지난 금요일 담당자와의 통화연결에 성공했습니다. 흘흘... 그런데 담당자의 영어는 제 독일어에 필적할만하더군요. 그래도 그 친구의 영어 듣기 능력이, 제 독일어 듣기 능력보다 나을 것 같아서 계속 영어로 대화했습니다. 사실 대화를 할 때 말을 못하면 주도권은 상실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래도 기기 문제인 것 같은데, 혹시 주변에 인터넷 쓰는 친구가 있으면 기기 들고 가서 한번 테스트 해볼래?"라는 황당한 대답을 듣고, 그 때까지의 제 근성은 모두 분노로 환원되었습니다. 제가 영어로 분노를 표출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친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제 노호성에 살짝 움츠려든 그 친구는, 기기를 새로 보내주겠다고 했고, 인터넷 불통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불하는 조치까지도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화요일인 지금까지도 기기는 도착하지 않았고, 내일까지도 소식이 없으면 저는 다시 근성을 발동시킬 겁니다. 정말 피곤합니다.

3. 프린터 그리고 건강보험

건강보험을 들었습니다. 11월 1일부터 적용되지요. 서류들은 진작에 도착을 했고, 병원 방문 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있길래 챙겼습니다. 지난 달 말부터 약간의 복통이 있었고, 어제는 치통도 오더군요. 외국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드디어 몸에 무리를 주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문제는, 병원에 가서 해당 서류를 제출할 뿐, 돌려받지는 못한다는군요. 다른 병원에 가려면, 이를 복사해서 써야 한다네요.

복사할 곳도 마땅히 안 보이고, 마침 프린터도 필요한데, 프린터를 하나 사와서 복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약 2 주 전이었습니다. Saturn과 Media Markt 등을 수차례 오가며 시장조사를 했고, E-bay와 독일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뒤적거렸지요. 맥 지원과 컬러 인쇄, 유지비 등을 고려하여 삼성 컬러레이저복합기 CLX-2160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거 가격이 고무줄이더군요. 어느 곳에서는 300유로를 넘게 부르기도 하고, 인터넷 가격비교 최저가는 189유로니까, 계속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A/S문제도 있고 해서, 동네 컴퓨터 가게로 갔지요. 189유로에 판매하는 곳은 프랑스였습니다. 쿨럭~

미리 사전조사한 가격과 일치하는 219유로였는데, 문제는 배송료더군요.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6유로 정도의 배송료가 붙고, 현장에서 구매해서 배송요청을 하면 16유로가 붙습니다. 결국 돌돌이를 끌고 가서 이걸 직접 끌고오는 무모한(!) 짓을 시도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순탄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지하철 2정류장 되는 거리를 그 무거운 프린터를 끌며 걸어왔습니다. 오늘처럼 비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요. 어쨌거나, 어제 모든 설치와 복사를 마쳤고, 이제 병원에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째, 치통도 가라앉고 복통도 거의 없어진 것 같네요... -_-;;;

4. 월반

기초부터 계속 들어온 독일어과정인데, 석달째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월반시험을 쳤습니다. 차근차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인데, 문제는 교실에 너무 학생수가 많다는 겁니다. 거의 15~20여명이 매일 수업을 함께 하는데, 선생님은 한 명의 낙오자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타입인지라, 저와 아내의 입장에서는 참 답답했었거든요. 그래서 월반을 했고, 지금의 클래스로 옮겼습니다. 화법조동사와 간접화법 등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혼자 복습하며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신경쓸 일들이 많아서 아직 못하고 있네요. 아내는 벌써 거의 다 따라잡은 모양입니다.

5. 아이폰

T-mobile에서만 쓸 수 있던 iPhone이 O2와 Base에서도 가능해진 모양입니다. 오늘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식 대리점이 아닌 이베이에서만 가능한 모양인데, 어쨌거나 잘만 하면 iPhone을 손에 넣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현재 사전으로서의 용도가 가장 큰 아이팟이 딱 1대 뿐인지라, 둘이 공부할 때 좀 불편한 점이 있어서 조만간 지르게 될 것 같네요.

그냥 최근 근황을 주절거리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종종 글은 쓰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올리다가, 이렇게 필 받았을 때 좌악 올려봅니다.
10월 22일 오후 7시에 베를린을 출발한 우리 부부는, 별다른 연착 없이 도착 예정시각인 10시 30분 경 에센 중앙역에 도착했다. 베를린과는 달리, 24시간 교통체계가 수립되어있지 않은 에센은 밤 11시만 되면 거의 대부분의 대중교통수단이 끊기게 된다. 서둘러서 지하철인 U-Bahn으로 이동했지만, 에센 중앙역은 확장 공사로 인해 대부분의 출입구가 폐쇄된 상황. 우리가 나온 출구는 U-Bahn으로부터도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라,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게다가 모조리 계단을 이용하여 상하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이 쑤시고 뻐근한 상태가 되었다.

한국팀 일행과 23일 오전 8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7시에 기상을 했다. 하지만, 독일에 온 이후로, 베를린 이외의 곳에서 첫 장기 체류인지라, 생각보다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약속 장소에 도착한 건 약 3분 가량 늦은 8시 33분 경. 부지런한 한국팀은 벌써 행사장으로 떠났다고 한다. 다행히 호텔 매니저를 통해 약속된 물건을 인도받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신경 써준 이근정 사장님을 비롯한 한국팀 관계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내키지 않는 에센행으로 인해 첫날부터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아내를 적당히 달랠 겸, 아침식사도 할 겸,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날 저녁에도 복통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인지라 아침시간에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 어떻게 빵 한 모금 입에 물고 Messe에 도착한 건 거의 개장이 임박한 오전 9시 50분 경. 매표소와 출입문 부근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리 Messe 첫날이라고 해도 평일 오전인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건 보드게임에 대한 독일인, 그리고 세계인의 관심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리라.

박람회장에 들어가자 사람들도 입장을 하고 있었다. 차례에 늦을까봐 허겁지겁 달려간 곳은....

1. 진정한 한철 장사 - Winsome Games.

긱을 통해 정보를 접한 바에 의하면, 에센 첫 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선착순 80명에 한해서 Wabash Cannonball의 확장을 비롯한 Winsome의 게임들을 판매하며, 이를 구매한 이들은 Queen Games에서 Wabash Cannonball을 재판한 Chicago Express를 5유로 할인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개장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바로 Winsome Games의 부스였다. 역시 미리 확인한 정보에 따라 Winsome 부스인 10번 홀 66번 부스를 찾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찾기는 찾았는데, 위치가 상당히 애매했기 때문이다. 정식 부스라기보다는 거의 귀퉁이 자투리 공간에 테이블 하나 놓고 벽면에 윈섬 특유의 로고인 "W"자만 덩그러니 붙여놨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1착으로 찾아간 곳인데, 실망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선착순 80명은 이미 웹을 통해서 예약받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거란다. 즉 당일날 선착순으로 도착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 그럼 왜 시간 제한을 두었느냐고 물었더니, 12시까지 오지 않는 사람들의 물량은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즉, 본인이 Winsome게임을 구하기 위해서는 12시까지 기다렸다가, 누군가가 예약해놓고 구매하러 나타나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 뿐. 왜 이렇게 소량을, 그것도 예약한 사람들로만 한정해서 판매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나마 유럽에 사는 게이머들을 배려해서 하는 거라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자사 게임들이 소량에, 북미 한정으로만 판매하고 있었더니 유럽의 게이머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고, 그래서 작년부터 이러한 방식으로 유럽 게이머들에게도 선보이는 거란다. 고작 80카피만을... 그래서 내년에 나올 것을 미리 예약하는 자리이기도 한다는데, 내년에 에센에 갈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그냥 고개를 저었다. 값도 절대 저렴하지 않은데...

어쨌거나 12시에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 다른 게임 부스를 찾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이 12시가 다가와서 허겁지겁 다시 Winsome 부스를 찾았는데... 놀랍게도 테이블을 철수하는 중이었다!!!

예약했던 80명은 모조리 다 와서 구매를 했고, 자기들은 이번 에센에서 모든 볼 일을 마쳤기 때문에 철수한다는 것이다. 행사는 모두 나흘인데, 첫째 날 딱 2시간만 열고, 철수를 한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왜 그들이 그렇게 좁아터진 귀퉁이에 테이블 하나만을 두었는지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판매했던 게임이 기억하기로 8~90 유로였었는데, 단 두 시간만에 6~7,000유로를 후딱 거두어가고 바로 자리를 뜬 그들. 진정한 한철 장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추후 사진 및 추가 내용 업데이트 예정)
한국에서의 골치 아픈 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 한국을 떠났는데 환전할 때마다 한국의 불안한 정세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집 계약금(보증금) 납입을 위해 500유로를 인출했더니 한화로 무려 852,600원이 빠져나갔다. 1유로당 환율이 무려 1705.2원인 셈이다. 불과 얼마전 1570원대에 인출해던 기억이 있는데, 그 며칠 새 무려 130원 이상 오른 것이다.

누가 말했듯이 국가의 경제 기조가 매우 심약하다는 증거인가. 따지고 들면 복합적인 이유들이 다양하게 얽혀있겠지만, 집권초기부터 고환율 정책을 공공연하게 내세웠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심한 역겨움을 느낀다.

내 경우는 몇 만원의 환차손에 불과하겠지만, 수출입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그곳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잠시 위로의 마음을 가져본다.

p.s. 얼마전에 500유로 인출했을 때는 78~9만원 가량이 빠져나갔는데... 쿨럭~
수업 마치고 막간을 이용해서 태중이와 승섭 형, 그리고 같은 수업을 듣는 한인 학생 한 명과 함께 베를린 구경을 다녀왔다. 과거 개선문과 같은 용도로 사용했던 곳인데, 분단 이후 그 앞으로 베를린 장벽이 지나감으로서 냉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는 문화재.

다른 건 둘 째 치고 문화재 관리가 참 잘 되어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역시 조국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불안땐 부엌문 from Sangbae Ko on Vimeo.
오늘 유럽에서 가장 큰 백화점 체인이라는 Ka De We (카데베)를 다녀왔습니다. 5층에 들어서니까,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기더군요.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아~ 이곳이구나!'

아니나다를까, 5층에 제법 큰 구역을 차지하고 있던 건 보드게임이었습니다. 라벤스부르거와 하바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게임들이 더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제법 난이도 있는 게임들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에는 약 450여개의 게임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곳 독일 땅엔 못 들고 왔기 때문에, 게임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간만에 보드게임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나니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2008년 SDJ에 빛나는 Keltis가, 올해의 어린이 게임상 수상작과 나란히 판촉을 벌이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절판으로 꽤 구하기 힘들었던 게임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특 히 몇몇 게임들은 파격 세일을 하고 있었는데, 루미큐브 클럽은 20유로, 줄로레토는 15유로, 발할라는 무려 5유로에 판매하고 있더군요. 쿨럭~ 지갑이 열리려다가, 모두 한국 집에 잠들어 있는 게임이라는 점을 상기하고는 마음을 다시 다잡았습니다.

간간히 집에서 아내와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도 하나 마련할까 하다가, 다음 달에 에센에 다녀올 것이므로, 참기로 했습니다. 우봉고 듀얼과 Zug um Zug Kartenspiel이 눈에 밟혔었는데... 훌쩍~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인증샷이 없습니다. 카메라만 있었어도 수북하게 쌓인 Keltis 사진을 담아오는 건데 말이죠.
바로 어제 일이었다. 이곳 시각으로 9월 5일 금요일 오전 7시 경, 갑자기 방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와 함께 단잠에 빠져 있던 나는 부시시한 눈으로 방문을 열었다. 내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종종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을 하곤 했던 승섭이 형이었기 때문에 으례히 문 앞에 형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곳 관리인이 서 있었다.

약간 성이 난 듯한 목소리로 알아듣기 힘든 독일어를 마구 토해내는 관리인. 아직 햇병아리 독일어 실력인 나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고, 몇 마디 듣다 못해 아직도 잠이 덜 깬 머리를 간신히 돌려서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관리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집의 계약자는 Frau Shin이다.
2. 너는 Frau가 아니다. (쩝~)
3. 고로 너는 이 집에 계약한 사람이 아니다. 8시까지 당장 나가라!

그렇게 말하고서는 집 열쇠를 빼앗아서 휑~하니 가버렸다.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 참고로 이곳의 방문은, 열쇠가 없이는 잠그지 않고, 단지 닫힌 방문도 열 수가 없다.

급히 승섭이 형과 태중이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 밖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잠시 후 승섭이 형으로부터 짐을 싸고 있으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난 데 없는 날벼락에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우리 두 부부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는 10월 2일까지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고, 계약한 금액도 다 지불한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쫓겨날 줄이야...

한국에서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분명 어떻게든 내 스스로 조치를 취할테지만, 이곳에서 나는 문맹의 외국인에 불과한 입장,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내 상황이 처절할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서러움이 울컥 밀려오는 가운데, 한 시간여 짐을 꾸렸고, 그 결과 바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갖춰졌다. 꾸려진 짐들을 바라보노라니 착잡하고 막막하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그 때 시각이 8시 40분 정도. 관리인이 우리를 쫓아내려고 재방문한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문을 여니, 승섭이 형이 열쇠를 들고 서 있었다. 다행히 잘 해결되어서 10월 2일까지 머무를 수 있는 걸로 말을 해놓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린 아내와 나.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앞이 캄캄했던 상황이었으니...

독일에서 두번째 주말을 앞둔 시점에 한번 닥쳤었던 대 위기였다.

26일 저녁에 도착했고, 현재 현지 어학원에 등록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완전 까막눈의 문맹자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도움 주시는 분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대부분의 행정절차를 완료했습니다. 다만 기숙사의 인터넷이 말썽을 피우는 통에 이제서야 소식을 전하게 되었네요.

출국 전후로 약 열흘~보름 간 초강행군을 한 덕분에 지난 토요일부터 몸살에 걸렸습니다. 아직도 콜록거리고는 있지만, 거의 다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베를린은 한국의 가을보다 약간 쌀쌀하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는 아주 쌀쌀해서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자지 않으면 감기 걸리기 쉽겠더군요.

어쨌거나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시려나?)을 위해 몇 자 적어봅니다. 좀 있다 또 나가봐야 하니 저녁에 다시 좀 추가해야겠네요.


p.s. 동영상 추가했습니다만, 어째 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본인에게,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서울"은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서울보다는 경기도, 그것도 한촌인 광주에서 지낸 세월도 꽤 되어가는 요즘, 한국 특히 서울은 정글 그 자체로 다가온다. 아무도 나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 생존을 위한 투쟁과 위협만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정글 말이다.

수요일에 새삼 내가 정글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속터미널에서 잠원역까지는 지하철 한 정류장 거리. 택시로는 기본 요금 정도의 거리일 것이라는 판단 하에, 아내와 함께 택시에 몸을 실었다. 결과적으로는 기본요금을 한참 상회한 3,200원 정도의 요금이 나왔으니 나의 오판이라 하겠다.

그런데, 택시에 교통카드로 결재하는 기기가 있었다. 마침 지갑에 현찰이 바닥난 나로서는, 카드로 결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며, 본인의 교통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대었다.

약 10여초의 조회 시간이 흐르고, 조회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뜨고 나서야, 택시에서 내린 본인. 그러나, 그로부터 약 20여분 뒤, 휴대전화에 결제에 관한 내역이 SMS로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사기를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결제 금액은 3,200원이 아니라 4,400원이었던 것이다.

짐작컨대, 그 택시 운전 기사는, 내가 내린 뒤에도 미터기를 종료시키지 않고, 그대로 달린 것 같다. 뒤이어 탄 손님이 좀 일찍 타서 4,400원에 그쳤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타지도 않은 택시 요금을 황당하게 물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영수증도, 탑승했던 택시의 번호도, 운전기사의 이름조차도 확보하지 못한 나였기에, 어떤 방법으로도 이의신청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곳은 정글이다. 나의 안전보장을 그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 국가도, 법도, 도덕과 양심도 실종된 이곳에서, 끊임없는 의심과 확인, 점검만이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1,200원의 수업료로 깨달은 진실이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최근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다니던 필자지만, 나름 "파티"라는 이름을 걸고 초대받은 것이라, 차마 그렇게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간만에 긴 바지를 입고 길을 나섰다. 여담이지만, 귀가하고 보니, 엉덩이와 등 쪽에 잔뜩 땀띠가 났었으니, 정말 더운 날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 찾아간 곳은, 필자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네. 아주 잠깐 회상에 잠길 시간을 허락 받을 줄 알았지만, 재개발과 시간의 무게 덕분에 과거와의 연결고리는 많이 옅어져 있었다.

인텔의 블로거 파티. B2C보다는 B2B가 더욱 중요할 것 같은 인텔이 업체 관계자가 아닌 블로거를 초대하는 것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일반 CPU도 아닌 노트북 프로세서니, 더더욱...

오히려 발상의 전환을 통한 홍보효과를 노린 것일까? 어쨌거나, 밥을 먹었으니 밥값은 해야 하는 것이 인지 상정. :) 센트리노 2가 탑재된 노트북은 살지언정, 센트리노 2를 직접 구매할 일은 없는 필자지만,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소감을 간단하게나마 남겨본다.

우선, 장소와 행사 준비 등은 꽤 만족스러웠다. 식사의 주력 메뉴가, 필자는 전혀 손도 대지 않는 해산물이었다는 점이 좀 불만스러웠지만, 그거야 필자 사정이고... 얼리아답터들을 진두지휘하는 블로거들을 상대로, 다양한 방송장비를 통한 인터넷 생중계의 시도는 꽤 신선했다. 그리고, PT준비들도 나름 괜찮았고... 무엇보다 진행을 맡으신 블로거 "그만"님의 맛깔스러운 입담은, 자칫 경직되기 쉬운 신기술 발표회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후기로 남겨줄 듯한 덕담일테고, 진짜 밥값을 하려면 쓴 소리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 조금 아쉬운 점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선, 나름 센트리노2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기존 제품과 비교 시연을 한 것 같은데, 여기서 미흡한 점들이 많이 나타났다. 게임에서의 초당 프레임 수(fps)를 비교하기 위해, 양쪽의 노트북을 보여주었는데, 대상이 된 WoW는 그 초당 프레임수의 차이를 체감하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현장감을 좀 줄이더라도, 차이점을 체감하기 적당한 영상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일반 어플리케이션 퍼포먼스는 다소 억지스러웠다. 두 노트북에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진행시켜서, 소요시간과 소모 전력을 비교한 데모는, 우선 변인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령, 신형 테니스 라켓의 성능을 강조하려면, 구형과 신형의 라켓을 쓰는 동일인, 최소한 동급의 실력을 가진 이들의 시합을 통하는 것이어야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신형 라켓을 쓰는 로저 페더러와, 구형 라켓을 쓰는 필자의 시합을 통해 신형 라켓의 우수성을 설명하려면, 이것이 라켓의 우위에 따른 결과인지, 선수의 기량차이인지 구별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비교 대상의 CPU는 화면상에 나타난 자료에 의하면, 코어 듀오와 코어 2 듀오. 센트리노와 센트리노2의 차이가 이 둘의 차이와 같다면,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필자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두 CPU의 클럭 차이는 꽤나 확연했다. 1.X GHz 대의 구형과 2.X GHz대의 신형을 비교한 것이었으니, 동일 코드명의 CPU를 비교해도 퍼포먼스의 질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 이를 통해 신기술의 우수성을 설명하려고 했으니,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소모전력에서도 단위의 선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양자간의 소모전력을 비교하기 위해 선택한 단위는 mWh (밀리와트시), 즉 총 소모 전력이다. 당연히 속도가 느린 CPU에서는 작업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전력량에 시간을 곱한 밀리와트시 단위를 쓴 건, 수치의 차이를 현격하게 벌려서 성능의 차이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간 꼼수로 보였다. 진정으로 소모전력의 우위를 말하고 싶었다면, 단위 시간 당 소모 전력량, 즉 소요 시간으로 나눈 값을 단위로 택했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랬다면, 실제로 행한 데모 값보다 수치상으로는 차이가 줄어들겠지만, 그래야 과학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분명 센트리노2가 기존의 프로세서보다 더 나은 성능을 가진 제품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려다보니 오히려 필자에겐 좋지 않은 느낌을 안겨준 비교PT가 되었다.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블로거들을 좀 과소평가하는 듯한 멘트들이 좀 거슬렸다. 블루레이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는 등, 궁금할테니 한번씩 만져보라는 등의 멘트는, 전술한 바와 같이 얼리아답터들을 진두지휘하는 블로거들에겐 모욕으로 들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현실적인 금전의 문제로 그다지 얼리아답터라고 할 수 없는 필자조차도, 블루레이와 HD-DVD, 802.11n은 매우 익숙하고 자주 접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소 까칠한 논조의 후기지만, 항상 좋은 말만 써주는 관계자들만 초청하는 일반 발표회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가진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한 발표회니까, 이런 것을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여 쓴 글이니,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쨌거나, 밥값은 이만 하면 된 것 같고, 까딱하면 아내의 등떠밀림에 휘말려, 물욕에 사로 잡혀 가무를 선보이는 한 30대 가장의 추태를 보일 뻔 했는데, 이를 면한 것은 참 다행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