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게임 소개를 하면 잘 안 뜬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강력하게 밀었던 카품 Cavum이 그랬고, 꾸르티에 Courtier 역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요. 

그러다보니 그동안 게임 소개글을 잘 안 쓰게 되었습니다만, 이 게임은 참을 수가 없네요. 홍샘님이 이 게임을 슬랩스틱 개그물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이지요.

유쾌한 파티성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은 게임성으로 올해 에센 슈필의 현장 순위에도 이름을 올린 그 게임. 소개 들어갑니다.

우리 나라는 본격적인 철도의 시작이 국영철도인데다, 국토가 좁아서 별 관련이 없지만, 민영철도로 시작한데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서 철길 전체를 보호할 수 없었던 미국의 경우, 보안이 꽤나 골치아픈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고속 열차도 아니었기 때문에, 좀 빠른 말을 타고 가면 따라잡을 수도 있었으니까, 달리는 열차는 매력적(?)인 약탈대상이었습니다. 돈 좀 있는 분들이 타는데다, 도망도 갈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니까 말이지요.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도 꽤 많이 나왔습니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나, The Great Train Robbery가 그렇고, 보드게임으로는 Wyatt Earp도 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요. 서부 테마의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와이어트 어프에서는, “무법자들이 이런 나쁜 짓을 했으므로, 현상금이 올라간다.”의 이벤트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컨대 “윌리 더 키드가 열차 강도를 저질렀으므로 현상금 인상”인 것이지요. 카드 제목에 관심없는 분들은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정도의 비중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본격적으로 열차 강도를 다룹니다. 보안관? 승객? 아니지요. 우리는 바로 그 열차 강도가 되는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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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t Express를 개봉하면 일단 구성물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엘 그란데 El Grande 급의 입체감을 주는 열차 때문이지요. 소시 소녀시대 적에 조립식 플라스틱 모델을 만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드게임으로도 그 재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 가산점을 줄 것입니다. 다만, 중고로 구매한다면, 그 재미는 누군가가 가져가버린다는 점을 명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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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인 구성물은 단지 눈요기감이나 손재미를 주는 수준이 아닙니다. 실제 게임에서도 열차의 지붕과 객차 안은 공간적 차이를 줍니다. 불필요한 구성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선인장은 테마 몰입을 위한 소품입니다. 귀찮으시면, 그냥 안 만들어도 게임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저희가 게임할 때, 전심님이 규칙서를 읽으시는 동안, 나머지 보톡스 멤버들이 열차 조립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심님이 규칙서를 완독하실 때까지도 열차조립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젼차로 니르고저 홀빼이셔도 첫 게임과 이후 게임은 게임 시간에서 꽤 차이가 날 텐데, 이를 감안하셔야 합니다. 하하~

게임 규칙을 설명하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한번 해보시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니까요. 대신 게임에 어떤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로보랠리 Robo Rally와 히말라야 Himalaya 등에서 볼 수 있던 프로그래밍 메커니즘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이번 라운드에 할 행동들을 미리 설정하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게임들이 어떤 행동을 한 후, 그로 인해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행동을 선택하는데, 프로그래밍 메커니즘은 일단 행동 선택을 완료하면, 상황변화에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좌충우돌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그저 웃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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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꽤나 재미있는 메커니즘인데, 의외로 앞서 말한 두 게임을 제외하면 걸출한 프로그래밍 게임은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의외성 때문에, 진지한 전략을 꾸밀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보랠리의 경우, 상대 로봇의 진로에 막혀서 어처구니 없게도 구덩이를 향해 돌진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히말라야의 경우, 상대방이 먼저 상품을 집어가버려서, 해당 장소에 뒤늦게 도착한 사람은 헛손질을 하기도 하지요. 

프로그래밍 게임은 게임 참가자의 의지와 상관없는 의외성이 빈발한다는 점 때문에 파티 게임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다른 요소를 첨가해서 온전히 파티성 게임으로 빠져버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맘마미아에서 볼 수 있었던 기억 메커니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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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참가자는 자신의 행동카드를 돌아가며 하나씩 선택해서 한 더미로 쌓아둡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그가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으므로, 이에 맞춰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지요. 다만, 카드더미는 맨 위에 있는 한 장만 볼 수 있으므로, 이전에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지는 어느 정도 기억을 해야 합니다. 각 라운드에 게임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3~5개에 불과하므로, 고도의 기억력을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한 프로그래밍 메커니즘이 유발하는 의외성이 많이 줄어듭니다. 

의외성이 너무 줄어버려서 게임의 재미가 반감될 것 같지요? 디자이너들이 그것도 다 배려해두었습니다. 열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면, 게임 참가자는 자신의 행동카드를 뒤집어서 카드 더미에 넣게 됩니다. 

카드 행동들은 대부분 예상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약탈하기, 이동하기, 총질하기(인접 객차를 향해), 주먹질 하기(같은 객차의 상대방을 향해), 그리고 보안관에게 고발하기 등.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총질을 아무리 많이 당해도 좀 부상을 당할 뿐, 죽지는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서부테마 게임인 Bang!의 경우 게임 도중 탈락하는 사람이 나옵니다만, 이 게임에서는 적어도 탈락은 당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정한 불이익을 받게 되지요. 바로 도미니언 Dominion과 트레인즈 Trains에서 볼 수 있는 덱 빌딩 메커니즘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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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언에서 영지 카드는 게임 종료 후 승점이 되지만, 게임 도중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아니 오히려 방해만 되는 카드입니다. 트레인즈에서 산업 폐기물 카드는 아예 승점조차 되지 않으니, 틈날 때마다 제거해주어야 하는 장애요소일 따름이지요. 

콜트 익스프레스에서 보안관 혹은 상대 게임 참가자의 총질에 당하면, 피격 카드를 받습니다. 이 카드는 다음 라운드부터 내 카드 더미로 들어와서, 내 손에 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제한된 카드 장수를 받는 게임에서, 이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카드가 들어오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의 선택지는 줄어들게 되지요. 트레인즈에서 산업 폐기물 카드와 같습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행동 선택 대신 카드 몇 장 더 집어와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참고로 게임에서 가장 많이 총질을 당한 홍샘님은 이 카드들을 탄피라고 부르더군요. 게임 마치고 정리할 때 그러더군요. “각자 탄피 찾아가세요.” 사격장의 행보관 같은 목소리였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걸죽한 메커니즘 세 가지를 잘 “녹여낸” 작품입니다만,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타델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캐릭터도 첨가되어 있더군요. 총질 더 잘하는 놈, 다른 놈을 방패 삼아서 잘 피하는 놈, 자기 행동을 잘 숨기는 놈놈놈 등…. 게임에 깨알 재미를 더해주는 캐릭터들이 여럿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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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승객들 패싸움, 열차 급정거, 빡친 보안관 등 라운드마다 독특한 이벤트가 발생해서 게임의 재미를 배가해줍니다.

재미를 위해 저희의 첫 게임을 간략하게 복기해보겠습니다. 저(Equinox)와 홍샘, 가이오트님, 전심님 그리고 사자마왕님의 5인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맨 뒷 객차에 세 명, 그 바로 앞 칸에 두 명이 탑승합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전심님과 사자마왕님은 서로 총질을 시작합니다. 저랑 홍샘님은 열차 지붕으로 올라가고, 가이오트님은 푼돈 수거를 시작하네요.

첫 라운드에는 모두 조신(?)하게 객차에서 구걸, 돈 수거… 약탈을 해서 푼돈이나마 조금씩 들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두번째 라운드가 되니, 모두들 상대가 들고 있는 푼돈에 눈이 뒤집힙니다.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상대방을 향해 힘껏 주먹을 휘두르더군요. 주먹질을 당하면, 가지고 있는 돈 혹은 보석 등을 내려놓고, 인접 객차로 튕겨나갑니다. 

어찌저찌 해서 이리 털고 저리 털리는 사이, 전심님은 가장 비싼 돈가방과 보석을 든 채로 라운드를 끝내시더군요. 라운드 종료 이벤트가 승객 난투극이었습니다. 객차에서 라운드를 마치면, 피해를 받는 이벤트였기 때문에, 모두 열차 지붕에 있었고, 그리고 전심님은 다른 게임 참가자들에게 포위된 상태. 이후 라운드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테지요? 다음 라운드가 시작하기 무섭게 전심님은 털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난무하는 총질과 주먹질.

한편 홍샘님은, 이 아귀다툼 속에서 틈새시장을 노립니다. 다른 게임 참가자들이 열차 지붕위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동안 객차로 내려와서 돈주머니 수거를 하려고 했지요. 전심님과 같은 칸에서 액션을 마쳤으니까, 전심님을 향한 총질에 괜히 맞을까봐 피할 목적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홍샘님이 내려놓은 행동카드는 객차 상하 이동 - 돈 줍기- 돈 줍기 - 객차 상하 이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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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홍샘님의 바로 앞에 가이오트님이 있었습니다. 가이오트님은 매 라운드의 첫 행동을 비공개로 내려놓는 캐릭터였지요. 그리고 가이오트님은 그 비공개 행동으로 홍샘님이 내려가려고 하는 객차에 미리 보안관을 불러옵니다. 홍샘님은 가이오트님의 행동 카드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황. 이후에 전개되는 상황이 바로 이날 게임의 하이라이트인 홍샘님의 슬랩스틱 코미디였습니다.

보안관이 객차에 있는 줄도 모르고, 객차로 내려가던 홍샘님은, 정의의 총알을 한 대 맞고 다시 열차 지붕으로 도망갑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객차에 들어와서 돈 주머니를 집어가려 했는데, 다시 지붕위에 올라가게 된 홍샘님은, 덤으로 전심님을 노린 총알에 대신 맞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돈 줍기 행동은 헛손질이 되었지요. 

그리고 마지막 행동. 원래는 객차에서 지붕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던 행동이지만, 꼬여버린 홍샘님은 다시 보안관이 있는 객차를 향해 내려갑니다. 그리고 또 정의의 총탄을 선물받지요. 단 한 라운드만에 총알만 세 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보안관 스토킹의 짜릿한 결과랄까요. 

어쨌거나, 홍샘님의 슬랩스틱 코미디 “보안관 없~다.” 덕분에 함께 했던 모두는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보드게임이 가진 최고의 미덕, 바로 눈물 나게 웃기 미션을 달성한 것이지요.

이 정도면 다들 열차 강도가 되어 열차를 향해 돌진할 준비가 되었겠지요? 파티게임을 원하는 이에게도, 전략게임을 원하는 이에게도, 입체감있는 구성물을 사랑하거나, 조립하며 만들어가는 재미를 아는 이들에게도 모두 어필할 수 있는 게임. Colt Expres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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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 출처: boardgamegeek.com)


필자가 즐겨했던 C&C는, 시대를 풍미한 PC게임들 가운데 단연 첫 손으로 꼽는 수작이다. 지금이야 C&C라고 하면 GMT의 Command & Colors라는 보드게임을 떠올리지만, 당시만 해도 C&C는 누구에게 물어도 Command & Conquer라고 답할 정도로 대표성을 지닌 게임이었다. 이후 워크래프트를 거쳐 스타크래프트라는 희대의 걸작을 낳는 RTS(Real-time Strategy-실시간 전략 게임) 장르의 기반을 닦은 게임이기도 하다.

이 장르의 게임들은 일정한 정도의 테크트리를 타는 것이 묘미이다.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분별하게 유닛과 기술향상을 시켜서는 안된다. 자신이 주력할 부분을 한정하고, 그 부분의 테크를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테크트리 유형의 게임으로는 시드 마이어의 문명을 빼놓을 수 없다. 기술 개발 시, 고급 기술들은 하위 기술들이 충족되어야만 개발할 수 있게 되어있는 전형적인 테크트리 게임이다. 아예 게임을 구매하면, 테크트리 요약도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테크트리가 PC게임에서만 존재할까? 그럴리 없다. 대표적인 테크트리 보드게임으로는, 시드마이어의 문명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 프랜시스 트레샴의 문명이 존재한다.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역시 PC게임을 보드게임으로 이식한 바 있으므로, 해당 게임에서도 테크트리를 타는 재미가 존재한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게임이지만, ASSA Games가 2005년에 출시한 Conquest of the Fallen Lands 역시 매우 유쾌한 테크트리 게임이다.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은 테크트리 게임이라는 점 말고도 또 다른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땅따먹기라는 지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들 게임에서 테크트리를 타는 이유는,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여 더 큰 권력(혹은 승점)을 얻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렇게 지형적 정보를 제공하는 게임들은 PC게임이건, 보드게임이건 시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보드게임의 경우 넓은 탁자에 게임판을 펼쳐야 한다는 문제 아닌 문제점까지 가지고 있다.

이들 게임에서 영토경쟁의 요소를 빼서 시간과 공간을 다이어트하고, 테크트리의 재미만을 추구한 게임은 없을까?

있다.

바로 스플랜더 Splendor (2014)가 그러한 게임이다.

스플랜더는 기본적으로 카드게임이다. 물론 카드를 어느정도 펼쳐놔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공간을 사용하지만, 앞서 언급한 게임들에 비해, 시간과 공간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구성물이라고 해봐야 카드와 칩이 전부이므로, 휴대성 역시 발군이다.

(초기 세팅 사진 1)

게임의 초기 세팅은 사진과 같다. 카드를 단계별로 분류하여 4장씩을 공개해놓는다. 이들 카드 측면에는 획득에 필요한 보석 개수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상단에는 이들 카드가 가져다주는 효과가 표시되어 있다. 1단계의 카드는 주로 보석만을 제공해주며, 2단계에서는 승점도 제공해주는데, 3단계에서는 더 큰 승점을 제공해준다. 마지막 5인의 인물카드는 아예 승점만 제공해주는 존재들이다.


(초기 세팅 사진 2) - 찬조출연 X자X왕님의 손


게임 내 보석은 총 다섯 종류. 달그락 소리가 경쾌한 양질의 칩이 이들 보석을 나타낸다. (다른 하나는 와일드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보석이다.) 칩으로 제공되는 보석은 일회용이라, 카드 구입시 소비하면 반납하게 된다. 그러나, 카드로 제공되는 보석은 소비되어 사라지지 않는 영구적 재산이므로, 게임 중반 이후에는 칩보다는 주로 카드의 힘으로 다른 카드를 구매하게 된다.

이것이 게임의 핵심 포인트이다. 내가 이전에 어떤 카드를 구매했느냐에 따라, 이후에 구매할 수 있는 카드의 종류가 제한이 되기 때문에 테크트리 성격을 지닌 조합 모으기(Set Collection) 게임이 되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 자신의 차례에 할 수 있는 행동은 1. 칩 가져오기 2. 카드 선점하기, 3. 카드 구매하기 등이 있다.

칩을 가져오는 것은 카드를 구매하기 위함이니까, 이들 행동은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카드 선점하기는 이 게임에서 중요한 상호작용을 야기한다.

게임 참가자들이 어떤 보석을 얼만큼 가지고 있는지의 정보는 모두 공개이다. 그러다보니, 특정 카드를 누가 노리고 있는지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내가 공들여 노리고 있는 카드를 앞에서 채간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다. 만약 내 조합의 완성이 상대방보다 한 두 턴 정도 늦을 것 같다면, 미리 카드를 선점하는 것도 중요한 행동이다. 다 차려진 상대방의 밥상을 눈 앞에서 송두리째 빼앗아옴으로써, 그의 얼굴이 총천연색으로 변해가는 모습 역시 이 게임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라 하겠다. 물론 참가자의 성향에 따라서는 육두문자와 주먹이 오갈 수도 있으나, 그건 당사자들이 알아서 합의할 일이다.

누군가가 15점을 획득을 하면 해당 라운드를 마치고 게임을 끝낸다. 다득점자가 승자인 것은 불문가지.

스플랜더는, 숙련된 사람들이 할 경우 30분 내외의 짧은 시간과, 적절한 휴대성을 지닌 매우 효율적인 게임이다. 규칙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양질의 칩까지 포함한 가격이, 다이브다이스 선주문 가격으로 4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매우 다이어트에 성공한 작품이라 하겠다.

하지만, 재미는 다이어트 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동안 테크트리를 타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영토경쟁이라는 부분이 빠져서, 게임 참가자들의 상호작용이 부족할 것 같다면, 그것 역시 기우라고 말하고 싶다. 카드 선점을 통한 상호작용 역시 연약한 유리멘탈의 소유자들에게는 가볍지 않은 스크래치를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선주문 가격이 4월 1일부터 상승한다고 하니, 더 늦기 전에 달려가서 주문들 하시라. 클릭!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몇 카피 더 사서, 아직 보드게임의 맛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을 중독시키기 위한 아이템으로 사용하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끝으로, 먼 거리까지 달려와서 멋진 게임을 소개시켜준 사X마X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는 또한 게임 참가자 모두 스플랜더의 재미에 푸욱 빠져서 “한 판 더!”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매정하게 게임을 싸들고 돌아가버린 시크한 남자가 아니겠는가! (진정한 의미의 세일즈맨이기도 하다.)


천일야화(Tales of the Arabian Nights) 후기 - 1. Zumurud의 이야기

(출처: 보드게임 긱

어제 고대하던 천일야화(Tales of the Arabian nights)를 돌렸습니다. 


목표치를 20으로 시작하였으나, 6인 게임이고 첫 게임인데다, 저의 영어 독해능력이 딸려서 게임 진행 속도가 더딘 탓에, 중간에 목표치를 10으로 조정해서 게임을 짧게 줄였습니다.


게임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이야기 점수(SP: Story Point)와 운명 점수(DP: Destiny Point)의 조합을 적절한 목표치로 설정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 포인트를 획득하고, 다시 이야기의 출발지인 바그다드로 돌아오는 게임입니다.





목표는 매우 단순하지만, 게임까지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마주치는 모든 대상(사람이든, 물건이든)에게 어떤 응대(Reaction)을 하느냐에 따라, 마법같은 이야기가 펼쳐지니까요.




(우연히 마주치는 상대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의 번호가 달라집니다.)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어제 이루어졌던 몽환적 판타지의 기록을 남겨보고자 합니다.


참가자는 저(Equinox)와 아내(Twinkrystal), 그리고 거만이님과 이날 처음 같이 게임을 했던 세 분을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입니다. 게임 내내 룰북과 스토리북에 집중하느라, 같이 게임하신 분과 통성명도 못했네요. 이후 서술하는 이야기에서 참가자는 모두 캐릭터의 이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1. 주무루드(Zumurud)의 이야기



(주무루드의 Custom made figure. 출처: 보드게임 긱)



실제 천일야화에서, 노예 소녀로 태어나, 노예 매매와 유괴, 납치를 당하는 등의 인생의 굴곡을 겪었지만, 영리함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일국의 왕이 되는 인생 역전 드라마의 배경 이야기를 가진 주무루드는, 바그다드에서 이상한 꿈을 꿉니다. 꿈 속에서 그녀는 타나라는 도시를 방문하게 되는데, 거기서 잃어버렸던 먼 친척을 만나,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 앞으로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지요. 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꿈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위해 타나를 향해 갑니다. 이게 게임 시작 시 그녀에게 주어진 첫 퀘스트입니다. 타나를 찍고 바그다드로 돌아오면 퀘스트를 완수하게 되고, 막대한 부와 보물을 얻게 되지요. 그녀는 행운(Luck)과 지혜(Wisdom), 그리고 이성을 유혹(Seduction)하는 기술을 재능 수준(Talent level)으로 가지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장착(?) 가능한 스킬 목록


타나는 인도 남단의 도시. 그곳으로 가기 위해 그녀는 바스라와 무스카트를 지나 인도양을 가로질러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스라에서 이상한 이발사(Strange Barber)를 만났습니다. 긴 여행으로 머리도 엉망이 되었다 싶어서, 머리 손질을 하려고 흥정(Bargain)을 선택한 그녀, 하지만 그 이발사는 왕수다쟁이였습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그 이발사에 패닉이 되어버린 그녀는, 궁리 끝에 이발사를 떼어놓을 묘책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긴 마법 주문 외우기 대회”에 이발사를 보내버리는 겁니다.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이발사를 처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이발사는 좋다며 그 대회에 참석합니다. 그러나...


이발사는 이 대회에서 자신의 숨겨진 적성을 찾아냅니다. 바로 마법사의 소질이지요. 그는 그 대회에서 우승해버립니다. 그는 대회에서 우승한 후, 자신의 적성을 발견해준 주무루드에게 보은하고자 그녀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불대기로 결심합니다. 혹 떼려가 더욱 강력한 혹을 붙여버린 주무루드. 그녀는 멘탈붕괴의 상태(Griff Stricken)가 됩니다. 이제 그녀는 마법사가 되어버린 이발사보다 더 강력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SP가 8이상)까지 멘탈 붕괴의 상태가 지속되며, 이 상태에서는 그녀는 자신의 재능 수준 스킬을 전혀 사용할 수 없고, 달인 수준(Master level)의 스킬만이 간신히 재능 수준으로 쓸 수 있습니다.




(Custom painted figure. 출처: 보드게임 긱)


이후 발생하는 이벤트에서 자신의 지혜(Wisdom)이나 행운(Luck) 등의 스킬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된 그녀는, 폭풍우 속에서 산책하다 홍수에 자신의 재산이 몽땅 떠내려가는 걸 지켜봐야 했고, 골골대는 마법사를 납치해서 뭔가(?) 해보려는 수작을 부리다가, 납치한 마법사가 야반도주하면서 그녀의 짐을 가져가는 상황 등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유도(Wealth Level)에서 가난한(Poor) 상태를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더군요.




(여행 도중 만나는 대상들의 예. 출처: 보드게임 긱)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 적어도 이야깃거리는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이 시기엔 재미있는 이야기는 곧 돈이 되기도 하지요. 타나에 도착할 즈음엔 SP가 3에 도달했기 때문에, 돈이 좀 생겨서 이제 좀 성큼성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유도에서 Respectable이 되면 육로와 해로를 다 합쳐서 4칸씩 이동 가능)


타나에서 자신의 꿈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한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남겨주었다는 유산을 찾으러 바그다드로 향합니다. 물론 곁에는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이발사가 계속 붙어다니는 중이지요.


무스카트 남동쪽 해상에서 잘생긴 왕자를 만난 그녀는, 이발사를 떼어내기 위해 역시 또 흥정(Bargain)을 시도합니다. 그러자 왕자는 흥정의 댓가로 자신의 첫째 아들과의 혼인을 제안합니다. 


결혼? 뭔가 아라비안 나이트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전개같지만, 이 멘탈붕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하는 심정으로 이를 받아들입니다. (Married 상태 획득)




(출처: 보드게임 긱)


해상에서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 다음에 들어가는 첫번째 도시가 곧 자택이 됩니다. 그리고, 자택을 벗어나서 다른 도시에서 일과를 마치면, 반드시 자택이 있는 도시로 돌아와서(외박은 하루를 넘길 수 없다는 기혼자에게만 적용되는 규칙. 내게 있어 자유는 게임에서조차 남의 이야기란 말인가!), 배우자에게 일과를 보고해야 합니다.(SP +1) 일과를 보고하면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일정한 확률로 자녀를 갖게 되는데(응?) 이 때 어떤 자녀가 태어나느냐에 따라, 운명 점수가 증가하기도 하고(DP+1), 또는 오히려 멘탈 붕괴(Griff Stricken)의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쿨럭!)


그래도 본거지인 바그다드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차리려고 메카에 둥지를 튼 그녀. 이제 아버지의 유산을 찾기 위해 바그다드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마루프(Ma’aruf)의 승전보를 듣고 이야기를 끝냅니다.


방대한 스토리북과 상황을 보정해주는 주사위, 그리고 아침/점심/저녁에 따라 다른 스토리들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 게임은 몇 번 해봤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가 어렵습니다. 매번 다른 이야기로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방대한 스토리북의 위용! 출처: 보드게임 긱)

기나긴 겨울밤에 둘러 앉아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걸 좋아하는 사이라면,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겠지요. 오늘 밤에도 천일야화(Tales of the Arabian Nights)를 만들어보고 싶어지네요.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도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제 캐릭터만큼 상세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제 게임에 참석하셨던 분들이 자신의 캐릭터가 겪은 스토리를 이어서 적어주시리라 믿습니다. 흠흠~ 




아메리카의 정착자 (부제: 철도를 따라) - 카탄 역사 시리즈 (2010년 작) 게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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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역사적 배경이 강하게 스며들어있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특히 역사를 간접체험하는 거라면 물불을 못 가립니다.

그리고, 카탄은 보드게임에 입문하는데 있어 최상의 교보재입니다. 그래서 저 자신도 좋아할 수 있고, 보드게임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카탄 역사 시리즈를 주목했습니다. 마침 보드엠의 송년파티 때 믿어지지 않을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있길래 하나 구매했습니다.

이번 역사 시리즈는 미국이더군요. 광활한 북미 대륙을 배경으로, 서부개척시대를 그리고 있는 2010년 카탄 신작입니다.

구입 후, 지금까지 보드게임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본 이들과 세 차례 진행을 했는데, 역시나 카탄은 카탄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네요. 모두들 몰입해가며 즐겼고, 그리고, 저 역시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가볍게 후기 들어갑니다.

1. 세련되어졌다.

카탄이 첫 작품을 선보인 이래 15년의 시간이 흐른만큼, 그간의 노하우가 반영된 이번 신작은 세련되어졌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게임판의 구성도 그렇고, 규칙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더군요. 특히 승점 10점이라는 종료조건이 사라지고, 대신 게임판 위의 진행상황으로 종료조건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그동안 카탄의 갑작스런 게임 종료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지 않게 반가워할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2. 상호관계가 강화되었다.

카탄이 본래 상호관계(interaction)이 아주 부족한 게임은 아닙니다만, 최장 무역로와 최강 군대는 왠지 투박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양새가 조금은 원초적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이번 신작에서는 승점 요소가 사라진 만큼, 최장 무역로와 최강 군대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신, 철도와 상품 수송이라는 요소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상품수송은 승점 대신 승리 조건으로 등장합니다. 상품 수송을 가장 먼저 완료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상품 수송은 한 도시에 하나만 가능하므로, 이는 게임 참가자들 사이에 공간 선점 경쟁을 유발합니다. 기존 카탄보다 훨씬 상호관계가 강화된 느낌을 주더군요.

3. 게임 내 요소들이 유기적이다.

게임의 목적은 상품 수송입니다. 그 상품 수송을 위해서는 도시를 건설하고, 철도를 건설하고, 열차를 이동해야 합니다. 도시를 건설하려면 정착자가 나와야 하고, 도시 건설 예정지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처럼 게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오리저널 카탄을 하다보면, 누군가는 군대에만 집중하고, 누군가는 도로에만 집중하는 등, 테크 선택에 따라 버려지는 게임 요소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번 신작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서 골고루 선택해야만 합니다.

4. 좌절 요소를 감소시켰다.

카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초기 배치입니다. 확률적으로 높은 곳에 배치한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의 차이는 확연하지요. 물론 오리저널 카탄도 숫자 토큰 뒷면의 알파벳을 통해 자원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곳 특정 지역을 방지하긴 하지만, 그래도 특정 자원이 집중해서 나오는 경우까지 완전히 방지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경우, 주사위 숫자의 확률이나 자원 중요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좋지 못한 자리에 초기 배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특정 자원만 마구 생산되거나, 아예 자원 생산하는 차례에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밸런스가 잘 맞는 고정지도는 이러한 경우를 확연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아주 기가 막히게 좋은 장소도 없고, 눈물 나게 불리한 곳도 없습니다. (물론 해안가의 경우 좀 그렇기 하지만, 그 곳에 초기 배치 도시를 놓을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일체의 임의성을 없앤 것도 아닌 것이, 9~11까지의 토큰을 놓는 곳을 둠으로써, 일정한 정도의 임의성도 확보했습니다.

카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남들 다 자원 챙길 때, 손가락만 빠는 사람의 심정을. 이번 신작 카탄은, 이렇게 밸런스를 맞춰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손가락 빨기 사태에 대해, 금을 한 개 보상으로 지불하는 인간다움을 갖추었더군요.

금 2개는 자원 1개로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에서 상당한 중요도를 갖습니다.

5. 무법자의 영향력 약화

카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는 도둑입니다. 특히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8장 이상의 자원카드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에겐 크나큰 시련이지요.

본래 도둑은, 자원 사재기를 막기 위한 요소이지, 지뢰 밟기를 통한 변태 가학적 즐거움을 게이머에게 주기 위한 요소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리지널 카탄에서는 불가피하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곤 하지요.

이번 신작에서는 한 사람의 차례가 끝날 때마다 모두에게 추가 건설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무법자에 의한 약탈 위험을 한층 감소시켰습니다. 카드를 쓸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많이 제공하니까요. 이제 비로소 디자이너가 원했던 무법자(도둑)의 존재 목적을 달성했다는 느낌입니다.

6. 공간의 의미 강화

조립식 보드와 고정 게임판의 차이입니다만, 공간이 주는 의미가 오리지널보다 조금 더 강합니다. 특히 추가 철도와 숫자 토큰의 이동이라는 요소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부 개척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하다보면,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동부를 떠나, 신천지를 개척하려는 “아메리카의 정착자”의 심정에 동화되어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도시 예정지 마다 지명이 적혀있고, 해당 지형들이 실제 북미 대륙의 지형과도 유사하기 때문에 더욱 몰입할 수 있습니다.

자유도를 제약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런 정도의 가이드라인 제시는 역사 간접체험이라는 측면과 몰입도 면에서 훨씬 긍정적이다 라는 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7. 총평

결론적으로, 세련되어졌고, 역사적 배경도 충분히 반영했으며, 상호관계도 더욱 강화했지만, 우발적 요소에 의한 좌절은 오히려 감소시킨, 그동안 카탄을 하면서 느꼈던 아쉬운 점을 거의 대부분 보완한, 현재까지의 완결판 같은 느낌을 주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카탄은 카탄입니다. 여전히 주사위 한 번에 일희일비할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며, 무법자로 상대방 자원 집산지를 틀어막을 때의 쾌감도 존재합니다. 그동안 카탄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던 요소들도 모두 잘 살아있습니다.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장점도 잘 살려낸 수작. 보드게이머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카탄의 추억을 다시금 꺼내어 빛내줄 좋은 게임이 우리 곁에 등장한 것 같아 반갑습니다.

아마도 한국을 떠나기 전에, 카탄을 가장 즐겼던 이에게 이 신작을 선물로 증정하고 돌아갈 것 같습니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을 위해 간략하게 요약 규칙서를 만들어봤습니다. 예전처럼 완역할 스테미너가 못되는 지라, 요약 규칙서를 만들었지만 게임을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 특히 카탄을 이미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2010/12/30 - [Boardgame/Data Box] - 아메리카의 정착자 (부제: 철도를 따라) - 카탄 역사 시리즈 (2010년 작) 한글 요약 규칙서


오늘 광활한 북미대륙을 배경으로, 카탄 한 판 하시렵니까?






Karl Heinz Schmiel의 본격 요리 게임인 A La Carte입니다.

묵직한 정치게임인 Die Macher, 기발한 트릭테이킹 게임인 Was Sticht?의 디자이너인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막상 게임은 시끌벅적한 파티게임이네요.


지금까지 제가 파악한 요리들의 의미를 대충 적어보았습니다. 게임 하면서 알고나면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적고 나니 그다지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네요.

p.s. 글을 다 쓰고 보니 이미 보드게임긱에 요리 이름에 대한 해석들이 올라와 있군요. 역시 긱.... 아~ 허탈해라...

Communi를 돌려보았습니다.

그동안 Le Havre만 실컷 돌리다가, 간만에 신작(?)인 Communi를 돌려보았습니다. 아직 2인 게임 한 번밖에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평가내리기 어려워서 간단한 소감만 적어보고자 합니다.


첫 게임이긴 하지만, 나름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릎을 탁 치게 할만큼 경이적인 시스템이 있거나, Le Havre처럼 매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만드는 게임은 분명 아니지만, 중급의 전략 게임으로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선두에게 가중되는 패널티가 강력해서, 후발 역전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꽤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ssen 현장 순위에서도 꽤 상위에 있었던 만큼 나름의 검증은 되었을테니, 조만간 다시 한번 해보자고 졸라볼 생각입니다. (^^)
디자이너: Wolfgang Kramer & Michael Kiesling
일러스트: Mike Doyle
출판사: QWG
발표년도: 2008

사진들은 이곳에서...

들어가기

개인적으로, 디자이너의 이름 때문에 관심목록에는 올랐지만, 다소 생소한 출판사의 이름 때문에 구매목록에는 오르지 못했던 게임인데, Essen 08에서 직접 해보고는 그 자리에서 구매해버린 게임이다. 2008년도 Messe Essen에서는 꽤 많은 신작들과 수작들이 쏟아져 나와서 가히 보드게임의 르네상스가 도래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신작은 바로 이 게임이 아닐까 한다.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음을 다시 느끼게 한 게임, Cavum을 살펴보고자 한다.



총평

Cavum은 전략게임이다. 방향성을 정하고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없으며, 때로 상대방이 걸어오는 태클에도 대응해야 하므로, 임기응변 능력도 요구된다.

Cavum은 철도 게임이다. 주어진 철도 타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최적의 노선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철도는 공유자산이므로, 타인이 놓는 철도까지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공들여 놓은 철도를 날려버리는 다이너마이트의 존재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AP시스템을 채택한 이들 디자이너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수읽기와 수싸움이 역시 이 게임에도 나타난다. 골치 아픈 걸 싫어하는 이들에겐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마치며

본인이 알기로 Kramer는 아직 본격 철도 게임을 만들지 않았었다. 철도라는 테마는 게임 디자이너에게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있기에, 당대의 어지간한 디자이너라면 한번쯤은 염두에 두었던 테마이다. 그런 이유로, 그토록 많은 게임을 만들었던 Kramer가 아직 본격 철도 게임 하나 만들지 않았었다는 점이 본인에겐 다소 의아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의아함은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그는 단순한 철도 게임의 경지를 벗어나, 갱도라는 특수성을 가미함으로써, Kramer brand 철도 게임을 선보인 것이다. 그것도 3라운드라는 길지 않은 게임 길이 속에 담뿍 함축시킴으로써, 단시간에 깊이 있는 게임 요소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철도 게임으로.

Age of Steam, Brass, 그리고 18xx의 게임을 즐겨왔던 놀이꾼이라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KK콤비의 신작, Cavum이다.

제목부터 강렬한 기운을 내뿜고 있죠? 어제 규칙서를 끝까지 읽어보고, 긱 포럼을 뒤져보았는데, 이게 재판이더군요. 테이블스타라는 출판사에서 찍어냈는데, 재판되기 전까지 안달복달하는 무리들이 꽤 있었습니다. 게임성이 좋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테이블스타 社가 경영난으로 감축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재미있더군요. 저야 재판으로 나오기 전까지 저 게임의 존재를 몰랐으니 그냥 유쾌할 뿐이지요. 아마도 한글판 게임들 기다리는 국내 유저의 심정이 그와 같지 않을런지...



오늘 모 님이 오시기로 했으니 잘 하면 맛을 좀 볼 수 있을 것도 같고, 주말에 기회가 되면 다른 분들하고도 같이 해보고 싶은 기대작입니다. 그런데 다들 요즘 바쁘신 것 같아서... 게임 기갈이 심하군요. 쿨럭~
사탕발림님과 스코틀랜드의 망치(Hammer of the Scots)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항상 전쟁게임(War Game)에 대한 강한 미련을 갖고 있었는데, 비로소 체험을 하게 되는군요. 일전에도 배틀로어 등은 해보았지만, 정통 전쟁 게임이라고 보기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지요.

게임의 배경은, 아시다시피, 스코틀랜드입니다. 정확하게는 영화 용감심장(BraveHeart)이며, 영화의 주인공인 윌리엄 월러스도 이 게임에 등장합니다. (등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게임의 승리조건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전쟁 게임과는 달리, 전멸이나 병력 상의 압도가 아닌, 차지한 귀족 수였습니다. 즉, 스코틀랜드 안에서도, 독립파와 친영파로 갈려져 있는데,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과반이 넘는 귀족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잉글랜드는 친영파 귀족들을 기반으로 스코틀랜드의 통치를 공고히 해야 하는 것이네요.

지도를 펼치고 나니, 자연스럽게 제가 스코틀랜드를 맡게 되었습니다. 침략군인 잉글랜드는 사탕발림님의 몫이었구요.

스코틀랜드의 입장에서 보면, 시작이 참으로 암울했습니다. 본디 병력이라는 것은 집중의 원칙에 입각하여 운용하는 것인데, 스코틀랜드의 병력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잉글랜드의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특히나 월러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의 주력부대(Fife에 위치한 3개 군단)는 사면초가의 형국이었습니다. 사방이 모두 잉글랜드의 병력으로 포위된 상태였으니 말이죠. 월러스가 봉기하게 된 계기가, 영주의 초야권 때문이었으니, 사실 뭔 준비를 하고 봉기를 했겠습니까? 그냥 동네 주민들에게 쟁기 들고 따라오라고 한 거였겠지요. 그러니, 이해할만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북쪽의 머레이, 남쪽의 부르스와 캘러웨이가 월러스의 봉기에 호응해주어서, 잉글랜드의 병력이 월러스에게 집중하는 걸 막아주었다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시작하는 스코틀랜드가 암울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잉글랜드군은 겨울 나기를 위해 보병을 제외한 전 병종이 철수를 해야한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이 증원되는 부대는 항상 전투력 만땅을 채우고 들어온다는 유리함을 안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군은, 새로 증원되는 병력의 전투력이 매우 허약하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겨울이 지나도 지역이 허락하는 한, 부대가 잔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각 진영의 전술이 어때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정규전을 지향해야 하는 잉글랜드 군과 비정규전으로 가닥을 잡아야 하는 스코틀랜드군이지요.

하지만, 본인은 본래 비정규전, 즉 게릴라 전을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후의 위협부터 차근차근 제거해 가며 병력을 집결시키는 전술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가 지향해야 하는 전술에 위배되는 전술을 펼친 덕분에 초반에 심하게 고전해야 했습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일단,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비해 척박한 영토가 많습니다. 대규모 부대가 겨울나기를 하려면, 해당 영지의 보급능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런 옥토는 대부분 남쪽, 잉글랜드군이 점령한 지역이거든요. 덕분에 첫 해에 몇 개 부대는 강제 해산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밥 없다. 고향 가라~.”가 된 것이죠. 흑흑~

첫 해의 삽질로, 병력의 분산 배치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고 나서, 이후 부터는, 겨울이 다가오면 전 병력을 분산 시켜서, 스코틀랜드 특유의 자투리 부대 대량 육성을 시도했습니다. 나름 이 전술이 주효하면서, 스코틀랜드의 파란 물결이, 지도의 80% 이상을 뒤덮는 순간까지 왔습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습니다. 월러스의 근거지인, selkirk숲은, 숲 특유의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대규모 부대의 투입이 곤란한 곳입니다. 그곳에 월러스가 혼자 조용히 게릴라전을 수행하였으니, 에드워드 1세가 이끄는 대 부대도 별 힘을 쓰지 못하던 것이지요.

약 6개 군단을 투입하고도 허탕을 쳤던 잉글랜드군은 새로운 전술을 구가합니다. 바로 “유인전술.” Selkirk 숲 남쪽에 2개 군단을 배치해놓은 잉글랜드군을 만만하게 본 월러스가 부르스 가문을 이끌고 공격을 시도하는데, 이 부대가 너무나 충격적인 전과를 거둡니다. 3개 주사위 모두가 1이 나오는 기여을 토한거죠. 참고로 주사위 숫자가 낮을 수록 전과가 좋습니다. 대부분의 병종이 1~2일 때 성공이고, 엘리트 유닛들이 1~3일 때 성공을 거둡니다. 1이 3개가 나왔다는 것은 치명타지요. 1/27의 확률이 적중해버린 겁니다.

그렇게 월러스가 비명횡사하면서 전역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남부의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게릴라 전은 흐지부지 끝나게 되지요. 결국 남부를 이끌던 부르스 가문도 잉글랜드에 포섭이 됩니다.

스코틀랜드에 많은 귀족들이 있지만, 귀족은 2개의 파벌로 나뉩니다. 그 하나가 부르스 가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코뮌 가문이지요. 스코틀랜드에 왕이 등장 하면,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이 두 가문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다른 파벌은 모두 잉글랜드 쪽에 붙어버리는, 독립보다 파벌과 권력다툼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담고 있는 장면이 연출이 됩니다.

남부의 부르스 가문과 북쪽의 코뮌 가문을 모두 잉글랜드에 뺏긴 본인은, 대관식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프랑스 출신 가문(밸리얼)을 통한 것만 남아있었고, 그마저도 대관식을 하려면 이벤트 카드가 나와야 하는데, 무려 4년동안 단 한 장의 이벤트 카드도 들어오지 않는 풍전등화의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월러스도 없고, 코뮌도, 부르스도 없는데, 왕도 세울 수 없는 위기 상황.

한 때 국토의 80%를 수복했었지만, 다시금 심하게 밀리기 시작한 스코틀랜드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소규모 부대의 게릴라 전술로 전세를 힘겹게 유지시켜 나갑니다.

때는 바야흐로, 마지막 해. 게릴라 전술이 적중하면서 다시금 세를 역전 시킨 스코틀랜드군에 대관식 조건이 갖춰지게 됩니다. 코뮌 가문을 탈환한 것이지요. 하지만, 코뮌 가문이 스코틀랜드 왕위를 차지할 경우, 부르스 파 귀족들은 모두 반기를 들 상황. 제게 부르스파 귀족들이 모두 3가문 있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바랬던 스코틀랜드 왕이었기에, 이들의 반역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들을 사실상 가미가제로 써버립니다. 이왕 반역할 것들이라면, 상대의 전력이라도 감소시키는데 쓰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북부의 전 병력을 소집하여, 왕의 대관식에 맞추어 최대 규모의 군단을 편성하며, 화끈한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지요. 승리 조건은 병력 수가 아니라, 자기편 귀족의 수라는 사실을... 마지막 해에 접어들 시점에 제가 귀족의 수에서 사탕발림님보다 4명이 더 많았었는데, 가미가제로 2명을 헌납하는 바람에 동수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게다가 대관식 준비하느라, 이동력을 모두 소진한 상황. 한바탕 혈전을 벌여보고자 했던 저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제 운명은 [귀족 전향] 이벤트를 통한 일발 역전만 남은 상태.

귀족 전향 이벤트는 사실 성공확률이 다소 높습니다. 1~4의 주사위 결과가 나오면, 상대 귀족을 포섭하는데 성공하는 것이고, 5~6이 나오면 실패하는 겁니다. 2/3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날 게임에서 모두 5차례 이 이벤트가 시도되었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섯 번 째 시도가 바로 이 마지막해 마지막 명령이었습니다.

귀족 수에서 동률인 채로 끝이 난 양 진영. 이 경우, 윌리엄 월러스의 생사를 통해 승패를 가늠합니다만, 월러스는 게임 중반, 유인 전술에 걸려, “프리덤”이라는 먼 옛날의 여성용품 이름을 외치며 횡사한 상태.

결국 사탕발림님의 승리로 이날의 잉-스 전쟁을 마쳤습니다.

게임은, 양군이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도 매우 균형이 잘 맞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규전 위주의 잉글랜드와 비정규전 위주의 스코틀랜드군. 병종도 다르고, 지형도 서로 다릅니다만, 절묘할 정도로 균형을 잘 맞춰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더군요. 게임의 부분만으로 보면 분명 일진 일퇴의 상황이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호각지세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본격 전쟁 게임으로는 사실 상 처음 맛보는 게임이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Hammer of the Scots. 시간도 그리 많이 안 걸리니까,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꼭 돌려보고 싶은 게임이네요.

전쟁 게임 초보자인 제게, 설명도 잘 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사탕발림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