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란 본인에게,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서울"은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서울보다는 경기도, 그것도 한촌인 광주에서 지낸 세월도 꽤 되어가는 요즘, 한국 특히 서울은 정글 그 자체로 다가온다. 아무도 나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 생존을 위한 투쟁과 위협만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정글 말이다.

수요일에 새삼 내가 정글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속터미널에서 잠원역까지는 지하철 한 정류장 거리. 택시로는 기본 요금 정도의 거리일 것이라는 판단 하에, 아내와 함께 택시에 몸을 실었다. 결과적으로는 기본요금을 한참 상회한 3,200원 정도의 요금이 나왔으니 나의 오판이라 하겠다.

그런데, 택시에 교통카드로 결재하는 기기가 있었다. 마침 지갑에 현찰이 바닥난 나로서는, 카드로 결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며, 본인의 교통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대었다.

약 10여초의 조회 시간이 흐르고, 조회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뜨고 나서야, 택시에서 내린 본인. 그러나, 그로부터 약 20여분 뒤, 휴대전화에 결제에 관한 내역이 SMS로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사기를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결제 금액은 3,200원이 아니라 4,400원이었던 것이다.

짐작컨대, 그 택시 운전 기사는, 내가 내린 뒤에도 미터기를 종료시키지 않고, 그대로 달린 것 같다. 뒤이어 탄 손님이 좀 일찍 타서 4,400원에 그쳤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타지도 않은 택시 요금을 황당하게 물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영수증도, 탑승했던 택시의 번호도, 운전기사의 이름조차도 확보하지 못한 나였기에, 어떤 방법으로도 이의신청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곳은 정글이다. 나의 안전보장을 그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 국가도, 법도, 도덕과 양심도 실종된 이곳에서, 끊임없는 의심과 확인, 점검만이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1,200원의 수업료로 깨달은 진실이다.
아내와 점심식사를 하러 광주-성남 경계점에 있는 칼국수 집을 찾았다. 최근에 찾은 맛집으로 만두 맛이 일품이라 아내와 종종 찾아가는 편인다. 만두가 일전에 장모님이 빚어주신 만두와 비슷한 맛이라, 아내도 마음에 들어한다.

386 지방도를 통해 귀가하다가 문득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장지 사거리 근방에 저게 사당처럼 보이는데, 왜 저렇게 문을 항상 잠궈둘까?"

뚜렷하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얼버무렸지만,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의문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을 메운다.

금지하는 것 외엔 모두 허용하는 사회와 허용하는 것 외엔 모두 금지하는 사회.

일견 비슷해보이지만, 저 둘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후자는 전자에 비해 예측 가능성이 훨씬 높다. 따라서, 관리자의 입장에선 후자를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얄궂게도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지는 않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러한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너무나 무기력해보인다.

전형적인 후자에 속하는 한국. 그리고 차근차근 다가오는 재앙의 그림자들. 위기가 닥치면, 대안 마련보다 당장의 비난을 면할 변명거리부터 찾고, 말도 안되는 논리로 마구 우겨대다보면 책임을 면하게 되는 우리 사회.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관리형 닫힌 사회. 21세기 한국의 현실은 역사의 교훈 따위는 조작된 경제 논리 앞에 무참하게 짓밟혀버린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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