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9 - [Boardgame] - 에센 보드게임 박람회 참석 후기 (1)


[Finca]

이미 한국에는 소개가 된 게임입니다만, 저는 이번에 처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이 되는 윈드밀에서의 이동이 매력적이더군요. DSP에서도 4위인가를 차지했고, 올해의 게임상(SDJ) 후보작으로도 거론되었었는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매커니즘의 게임은 여럿 있습니다만, 역시 한스 임 글뤽이 게임을 다듬으니까 깔끔한 느낌이더군요.

[TZAAR]

부스를 돌고 돌아 너무 다리가 아픈 나머지, 잠시 휴식처로 선택한 자리였습니다. Gipf 프로젝트는 모두 소장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최신작인 TZARR는 아직 해보지 못했던 관계로 배워보았습니다.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간단한 규칙이지만, 깊이 있는 진행. 아내도 매우 좋아해서, 에센 기간 통틀어 가장 많은 게임 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날 폐관 시간 직전까지 한 게임이라지요.

[카슨 시티]

작년에 출시했던 Cavum을 통해, 기대치가 높아진 회사였는데, 카슨 시티로 신뢰를 굳혔습니다. 수작이더군요. 기본적인 매커니즘은 케일러스와 푸에르토 리코를 섞었습니다. 즉, 일꾼 배치와 캐릭터 선택, 그리고 건물 건설. 물론 약간의 변조가 가미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일꾼 배치 게임은 선점이 중요한 요소지만, 이 게임에서는 둘 이상의 사람이 같은 행동을 원할 경우, 결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테마가 서부극인 주된 이유겠지요. 균형도 잘 잡힌 것 같고, 상호작용도 충분한데다 2인 게임도 가능해서 바로 제 소장품목에 낙점되었습니다. 회사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라서, 작년처럼 수준급의 게임을 만들고도 매출은 그다지 못올리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마지막 날 보니 그 많던 게임을 다 팔았더군요.

[던전 로즈]

게임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설명을 해주신 CGE의 담당자가 너무나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주셔서 거의 게임을 해본 것처럼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더군요. 원래도 기대작이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가 PC게임인 던전 키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보드게임으로 아주 잘 구현했습니다. 악명높은 어둠의 군주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너무 악명이 높으면, 강력한 영웅들이 자신을 상대하러 내려오기 때문에, 애써 만든 던전이 쑥대밭이 될 수 있습니다. 흡혈귀 보냈더니 영웅네 파티에 성직자가 있어서 힘을 못 쓰는 경우도 생깁니다. 던전에 설치한 덫을 도둑이 해체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어쨌든, 발상의 전환으로 즐거웠던 PC게임을 보드게임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다만, 영문판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네요. 마침 현찰이 떨어져서, 다음 날 구매하려고 했는데, 이미 영문판은 박람회장 전체 품절이 되었더군요. 아쉬운 마음으로 구매한 독문판인데, 그 마저도 제가 구매하고 얼마 안 있어서 품절이 나더군요.

[사진들]

0. 제목 참 길기도 하다. 작년, 아니 재작년 동계 올림픽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피겨 스케이팅. 나름 권위 있는 4대륙 대회가 한국에서 열렸다. 이번이 무려 세 번째라는데, 앞선 두번은 아예 피겨에 대해서 몰랐던 시기에 있었던 거라 좀 아쉽다. 그 당시에는 입장료가 무료였었다는데...

이번에 연아의 불참으로 인해서 많이 김이 샜다고 하지만, 높은 입장료 가격만으로 볼 때는 나름 장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너무 높은 가격과 조기 매진으로 인해 결국 이번 대회의 전 경기를 TV로 밖에 볼 수 없었다. 하긴 직접 아이스링크에서 본 건 재작년의 Superstars on the ice 때 뿐이지만... (작년의 그 행사는 목동 지붕에서 방수작업을 하며 담배를 피우신 아저씨의 멋진 방화쇼로 취소되어버렸다. 다시 생각하니 열이 뻗쳐 오른다.)

대회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기량을 체크할 정도의 눈썰미는 갖지 못했으니 다른 건 생략하고, 갈라쇼의 소감만 말하고자 한다. (본문에 삽입된 영상의 출처는 모두 SBS이다.)


p.s. 연아 양이 참석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지만, 어차피 현장에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4대륙 대회나, 세계 선수권 대회나 내겐 별반 차이가 없다. 빨리 완쾌해서 멋진 모습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등 안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있어다오!)

작년 양방언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큰 감명을 받고, 올해에도 있나 싶어서 웹을 뒤지다가 리얼 그룹이 다시 내한공연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얼른 예약을 했다. 사실 전년도에도 이들의 공연을 보고 싶었으나, 필자가 이 사실을 알아냈을 때는 이미 전부 매진이라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올해 필자가 그들의 공연 사실을 알아냈을 때는 서울 공연의 자리가 넉넉하게 있었다. 하지만, 인천에서 생활하는 아내에게 평일 저녁 잠실 왕복은 좀 무리가 있어보여서, 4일 서울 공연을 포기하고, 5일 고양 공연을 선택했다. 전년도에도 인천 공연이 훨씬 빨리 매진된 사례가 있어서인지, Yes24에 할당된 티켓 가운데는 딱 4장이 남아있었다. 서둘러서 으뜸자리(5만원) 2석을 예약!

다소 일찍 도착하여 근처 화정역에서 석식을 한 후, 고양 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 들어섰다. 작년 휴대전화 아카펠라폰의 출시로 한국에서 높아진 지명도를 반영하듯, 많은 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공연 팜플렛을 1,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는데, 사실 프로그램 구성 목차가 내용물의 전부인지라, 부실함이 마음에 걸렸는지, 빨간색 산타모자도 같이 주고 있었다. 이 마저도 조악하기 그지 없었지만, 어쨌든 성탄 분위기도 낼 겸 하나 구입해서 머리에 좀 써줬다. 나중에 하도 아내가 벗으라고 구박하길래, 사진으로 봤더니... 쩝~ 모자가 작은 건지, 필자의 머리가 큰 건지... 모자를 썼다기 보다는 그냥 얹어진 모습.

필자가 예약한 자리는 으뜸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무대로부터 제법 떨어져 있어서, 좀 아쉬움이 있었지만, 일단 공연이 시작되자, 그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화음과 다양한 연출에 그 아쉬움은 멀리 멀리 달아났다.

다소 생소한 멜로디와 생소한 언어, 독어와 비슷한 느낌의, 하지만 독일어는 아닌 스웨덴어로 부르는 캐롤이 서막을 열었다. 이후에도 스웨덴 전통 곡들을 꽤 많이 들려줬는데, 자연스럽게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 같아서, 새삼 문화상품의 위력을 절감케 했다.

유창한 영어로 번갈아가며, 곡 중간중간 관객들에게 익살을 떨곤 했는데, 무엇보다도 이날 공연 최고의 이벤트는, 개구리 노래의 다양한 스타일 변주였다.

스웨덴 전통 동요라, 자세한 가사는 잘 모르겠지만, 중간에 영어로 해설해 준 내용은, “귀도 없고, 꼬리도 없는 개구리, 개골~개골~개골~” 뭐 이런 식이었다.

이걸 원래 곡으로 한번 들려준 이들은, 관객들에게 원하는 스타일을 말해보라고 종용했다. 누군가가 용감하게 외친 한 마디 “hip-hop!”

개구리 노래를 힙합 스타일로? 그것도 아카펠라 그룹인 리얼 그룹이?

하지만, 곧바로 힙합 스타일로 개구리 노래를 부르는 그들. 이미 여러번 호흡을 맞추고 연습한 결과겠지만, 너무도 완벽하게 힙합 노래로 바뀐 개구리 노래에 관객들은 포복절도!
원하는 다른 스타일을 묻길래, 필자는 큰 소리로 “Samba!” 외쳤지만, R&B를 외친 다른 관객에게 묻혀서 유야무야되었다. 아쉽~. R&B만 약간의 난색을 보였지만, 그 밖에 오페라풍의 개구리 노래, 째즈풍의 개구리 노래 등도 기가 막힐 정도로 멋드러지게 소화해내더라.

CD에서만 듣던 그들의 멋진 화음을 직접 들은 것도 좋았지만, CD로는 들을 수 없었던 특별한 음악들도 멋진 성탄절 선물이 되었다. 인터미션 직전에 “또 하나의 성탄절 선물”이라고 소개하고 들려줬던, 팝 메들리는 정말이지, 이들이 진정한 프로이며,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들임을 일깨워주었다. 팝송을 즐겨듣는 편이 아니라 Back street boys의 노래는 곡명을 알지 못하겠지만, Britney Spears의 Oops! I did it again, Toxic 등 익숙한 곡들의 아카펠라 컨버전은 그저 놀라울 뿐. 특히 베이스의 얄케우스가 예의 그 묵직한 중저음으로 “Oops! I did it again”을 부를 땐,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롤러 스케이트와 각종 소품들을 이용해서, 때론 진중하게, 때론 발랄하게 분위기를 전환시켜가며 멋진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사실 아카펠라가 자꾸만 계속 해서 들으면 다소 지루해지기 쉬운데, 그들은 화려한 퍼포먼스와 분위기 전환, 다양한 레퍼토리로 지루함 없이 공연을 이끌었다. 앵콜 2곡까지 포함해서 약 2시간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거나 아깝지 않았다.

사실 소싯적에 중창단 활동을 해봤기 때문에, 반주 없이 화음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필자로선, 그들의 절묘한 화음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배경음악(도널드 덕)처럼 심한 변주가 동반된 곡까지도 그 어느 누구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맞추는 그들의 호흡도 경탄의 대상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스웨덴이라는 곳도 한번 가보고 싶다. 리얼 그룹의 멤버가 대부분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 출신이라는데, 과연 어떤 교육을 하길래,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장수하며 아직도 멋진 음악을 선사하는 그룹이 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내과 모처럼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해서, 그동안 한식으로 건조해진 뱃속에 기름진 피자를 좀 넣어주고, 간만에 외식한 김에 데이트 기분도 낼려고 영화관람까지 달렸다.

마침 몇 주전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했을 때, 꽤 보고 싶다는 느낌을 주었던 영화가 바로 전날 개봉을 해서 상영중이길래, 주저없이 선택했다. 제목은 어거스트 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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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남자와 쥴리어드 출신의 첼리스트인 여자가 운명같은 사랑을 나누지만, 여자의 아버지가 반대하여 단 한번의 만남을 끝으로 헤어진다. 하지만, 그 한번의 만남은 열매를 맺었고, 아버지는 태어난 아이를 사산했다고 속이고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여기까지가 배경이다. 이 후 여자가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아이는 부모를,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아이를 찾는 이산가족을 찾는 데, 이것이 사실 내용의 전부이다.

어찌보면 뻔한 신파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를 멋진 극화로 승화시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다른 블로거들은 혹평을 감추지 않는 것 같은데, 줄거리 전개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는 엉성한 얼개라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는 영화에서 차지하는 음악의 비중을 일반적인 영화에서의 그것과 비슷하게 취급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꾼이다. 남녀가 서로 만나게 된 계기도 음악이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물도 음악이다. 그들이 아이에게 물려준 유산도 음악이고, 아이가 부모를 찾기 위해 매달리는 것도 음악이다. 핏줄을 타고 음악이 전해지고, 다시 음악으로 핏줄을 찾아가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음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간과하면 전체 이야기의 약 절반 이상을 놓친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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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아들과 어머니와의 연결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버지와의 연결점이 약하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한번 감동의 물결로 나를 흔들어 놓은 장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기타 합주.)

다소 과장된 듯한 아이의 음악적 천재성은,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재능에, 강한 염원이 합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면 납득하지 못할 바가 아니며, 지나친 우연의 연속은 그들이 서로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점과 그 염원이 담긴 음악이 지닌 흡인력을 생각하면 나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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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유일하게 아리송한 캐릭터였던 로빈 윌리암스. 극 중 그는 악역이었을까, 선역이었을까? 혹시 자본주의 앞에 무릎꿇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영화 내내 그가 주는 메시지를 잡기 위해 꽤 고심했었는데, 아직도 좀 아리송하다.)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이산가족 찾기를 시작할 무렵, 사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서로를 찾는 애절한 눈빛이 음악이라는 촉매를 만났을 때 엄청난 파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토록 감동적인 이야기 앞에서 끝까지 참을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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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만의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몇몇 블로거들이 “어이없다.”라고 평한 장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핏줄이 음악을 통해 끌어당겨서 모인 이들이기에 어쩌면 놀라는 것이 더 어색했을거라 생각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볼 때도 걷잡을 수 없는 눈물샘의 폭발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남녀상열지사보다는 핏줄의 흡인력이 더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어쨌든 아내에게 놀림 거리 하나 추가되었다. 쩝~

여운이 좀 가라앉으면, OST라도 하나 구해서 당시의 감흥을 느껴보고 싶다. (사실 youtube에서 몇몇 곡들은 벌써 감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