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의 달이 다가와서 이런 저런 소식들을 챙겨보다가 After Essen Party라는 것을 발견했네요. 에센이 끝나고 이틀 뒤, 베를린에서 하는 파티라는군요.

http://www.boardgamenews.com/index.php/boardgamenews/comments/after_essen_game_party_in_berlin/

해당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행사 소식, 바로 베를린 게임대회였습니다. 10월 3일~4일이더군요. 카탄의 개척자, 도미니언, 아니마 등의 토너먼트 대회가 있고, 카탄 토너먼트는 10월 2일 17시에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걸 해당 홈페이지에서 본 시각이 10월 2일 16시였습니다.


10월 3일은 독일도 통일 기념일로 휴일입니다. 베를린에서는 분단 독일과 통일의 상징과도 같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이런저런 행사들이 계획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 탓에 상황 봐서 보드게임 모임이나 한번 다시 가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럼 모두들 행복한 추석이 되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뜬금없긴 하군요.)

아! 제 카탄 성적이요? 여기서 확인하시길...


간만에, 정말로 간만에 아내와 오붓한(?) 게임 한 판을 즐길 수 있었다. 동영상도 촬영했는데, 편집을 할 줄 몰라서 좀 걸릴 듯.. 2시간이 넘는 걸 올릴 수는 없으니... -_-;;



지난 8월 26일에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독일 생활도 벌써 두 달 반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말이 서툴고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럭저럭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네요. 근황도 전할 겸, 정리도 할 겸 포스팅을 합니다.

1. 비자 신청 등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EU국가들을 한국인이라면 무비자로 90일동안 머무를 수 있습니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90일을 초과해서 머무르지 않을테니, 사실 상 관광목적인 경우에만 무비자를 허용한 것이지요. 그래도,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지 비자 신청이 가능해졌고, 그것이 이곳에서는 더 일반적이더군요. 도착해서부터 준비했던 것이고, 비자가 발급되지 않으면 독일 생활이 불가능하므로 제게 가장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순조롭게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더군요.

우선, 재정보증서류에서 암초를 만났습니다. 비자신청인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규칙적으로 일정 금액이 입금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현지 계좌에 거액을 예치해두어야 하고, 일정 기간동안은 상당부분 인출할 수 없도록 묶어두어야만 합니다. 환율이 역대 최악을 기록하는 최근 상황(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는 아직 유로화가 정식 출범하지 않았으므로, 유로화의 환율은 현재가 최악임)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후자는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부모님 역시 월급생활자가 아니므로 부적격.

결국 사업하시는 외삼촌이 나서서 재정보증서류를 발급받았습니다. 이 과정이 거의 한 달이 걸렸네요. 만일 도착 직후부터 준비하지 않았다면 매우 곤란했을 겁니다.

해당 서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iMac과 함께 제게 도착을 했고, 이를 들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

첫날 찾아갔을 때는 영사부 근무시간이 막 지났을 때더군요. (세상에! 오후 4시에 업무 종료라니...) 그래도 다행히 친절하신 직원분 덕분에 필요서류가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쉬운 건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호주제가 유명무실해진 건 알고 있었지만, 호적 자체가 사라진 건 몰랐습니다. 호적이 가족관계 증명서를 비롯한 여러가지 증명서로 분할(!)되었으며, 이들 모두 전자정부를 통해 프린터 출력이 불가능한 서류입니다. 또한 본인이 아니면 신청도 불가! 결국 전자정부를 통해 제가 직접 신청을 하고, 이를 우편 송달하게 했습니다. 이 서류를, 한국에 있는 본가 컴퓨터의 원격제어를 통해 스캔을 받았고, 아직 프린터가 없기 때문에, USB메모리에 이를 담아서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대사관에서 원래는 안해주는 건데, 약간의 아양(!)을 겯들여서 서류출력을 허가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독일어로 된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혼인증명서), 운전면허증 공증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드디어 필요한 모든 서류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의 과정도 꽤 우여곡절이었습니다만, 이후의 과정도 역시나(!)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행정관청 민원부서에서 전입신고를, 외국인관청 비자부서에서 비자발급을 요청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들 관청의 공무원들이 현재 파업중이라는 겁니다.

사실 전입신고는 10월부터 하려고 했었던 것인데, 매번 파업으로 인해 번호표 받는데 실패해서 11월까지 미뤄진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비자 신청도 안된다는 것이죠. 오전 8시부터 업무를 하는데, 7시에 관청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더군요. 제가 현재 거주중인 Wedding은 Berlin중에서도 외국인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항상 붐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업무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긴 줄이 늘어서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제 앞에 4명을 남겨둔 시점에서 번호표 분배를 종료했다는 것이지요. 역시 파업 때문에 정상업무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벌써 수차례 미역국을 먹었던 저로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베를린에 있는 모든 관공서 주소를 받아서 검색을 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구글 맵스가 없었더라면 여기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한국은 주소 체계가 상당히 어지러워서 구글에서도 제대로 된 지도를 등록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이곳 독일은, 심지어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팟터치에서조차도 주소만 입력하면 자세한 경로와 주변 지형을 알려줍니다. 이번에도 구글맵스의 힘을 빌어 다른 관청의 위치를 검색했습니다.

지난번 시내 중심에 있는 Tiergarten 관청에 갔을 때 깨달은 것이지만, 너무 중심부에 있는 관청을 가면 사람들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후미진 곳에 분청을 목표로 했습니다. Wedding의 북쪽에 있는 구역이 Reinickendorf인데, 이곳의 중앙관청도 아닌 동분청을 찾아갔습니다. 지하철 역으로부터도 꽤 떨어진 곳에 있더군요. 다행히 제 예상이 맞아서 이곳에서는 번호표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후미진 곳이라 점심을 사먹을 곳도 마땅히 찾을 수 없어서, 우리 앞에 대기중인 30여명을 믿고, 다시 도시 중심부로 나왔습니다. 참고로 Reinickendorf는 예전 Berlin에 포함되지 않았던 곳입니다. Berlin이 확장되면서 한 구역으로 편입된 것이지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전입신고에 성공(!)했습니다. 그날 일과는 그걸로 끝이었지요. 수업도 들어갈 수 없었고... 아마 한국에서 전입신고에 하루를 온통 들어 바쳐야만 했다고 한다면 믿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건 외국인 관청에서의 다음날에 비하면 약과였습니다. 전날 하도 데였던 아내가 아예 새벽부터 가서 기다리자며 오전 5시에 기상을 시키더군요. 전날 외국인 관청에 가는 길을 익히는 등 이것저것 조사하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던 저로서는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습니다.

Berlin 특유의 음울하고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외국인 관청에 도착한 건 새벽 6시를 갓 넘긴 시각. 하지만, 역시나 파업의 영향인지, 긴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업무시작도 안 한 시각이라 그 쌀쌀한 새벽 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대기하는 건 정말 고역이더군요. 아내는 인터뷰를 대비해 옷차림도 가볍게 하고 나와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의도하지 않았던 노상포옹을 한 시간 가량 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의 독일이라지만, 아직까지 그때만큼 장시간 사람들 앞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추위 앞에선 별 수 없더군요.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기다림 끝에 겨우 건물 내 진입에 성공했고, 대기표를 받았습니다만,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1차 대기 후 서류 작성을 했고, 다시 2차 대기 후 수수료 입금(60유로 x2), 그리고 3차 대기 후 결국 비자를 손에 넣었습니다만, 역시 이로 인해 그날의 일과를 모두 날렸습니다. 새벽 6시부터의 기다림은 무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결과로 나타났으니까요.

그나마, 저희는 양호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고도 조금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 약속(Termin)만 잡고 돌아선 사람도 있고, 심지어 그보다 늦게 온 사람은 아예 빈 손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니까요.

한국에서의 관공서 업무가 아무리 비능률, 비효율이라지만 적어도 기다림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독일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인터넷

이사하고 바로 한 것이 바로 인터넷 신청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길어야 1주일 걸리는 인터넷 신청이, 무려 한 달이나 걸린 것도 문제지만, 약 1주일 정상 작동하더니 먹통이 되어버린 인터넷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전화와 함께 물려있는 인터넷이기 때문에, 전화도 먹통이 되더군요. 휴대전화로라도 고장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잘 알아듣기도 힘든 ARS 안내를 10초간 들은 대가로 2유로 가량이 빠져나가는 걸 보고 다시 전화를 걸 엄두가 안 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 신청을 했던 동네 백화점 전자코너(dug)를 찾아갔습니다. 역시 아침 이른 시각에 찾아가서 점원보다 제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 점원, 지난 번 찾아갔을 때의 불친절함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저더러 직접 전화하라는군요. 짧은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건만 요지부동입니다. 한참을 졸랐더니 전화 번호 하나 딸랑 적어주면서 집에 가서 전화해보랍니다. 그리고 그 번호는 수신자 요금부담이니 휴대전화로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해주더군요. 하지만, 지난번에도 그렇게 적어준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로 밝혀진 바, 곧바로 현장 확인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없었던 휴대전화가 선불 충전 전화로나마 있었던 게 다행이었지요. 역시 해당 번호는 ARS안내만 나오고 곧바로 끊어졌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오기가 치솟더군요. 의자에 앉아서 응대하는 점원과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서서 끝까지 버티는 고객. 아내는 거의 주저 앉아서 한숨만 내쉬고 있지만, 어떻게는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 덕분에, 고맙게도(!!) 회사의 전화기로 제가 직접(!!)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영어는 그다지 보편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한국은 때때로 ARS에서 영어 안내를 들을 수도 있지만, 독일에서 그런 건 없습니다. 오로지 독일어로만 모든 것이 진행됩니다. 심지어 E-Mail까지도...

여하튼 그곳에서 2시간 씨름한 덕분에 문제가 해결... 된 것이 아니고 고장 접수만 했습니다. 연락 주겠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전혀 연락을 들을 수 없었고, 결국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들었습니다. 아마 도합해서 3~4시간은 기다렸을 겁니다. 한 10여분 대기하다보면 나중에 다시 걸어달라는 말과 함께 끊어버리는 매정한 ARS만 상대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말입니다. 정말 소싯적 8비트 컴퓨터 게임하던 시절의 근성을 다시 끄집어 내는 곳이네요.

어쨌거나, 이렇게 근성으로 도전과 재도전을 거듭한 결과, 지난 금요일 담당자와의 통화연결에 성공했습니다. 흘흘... 그런데 담당자의 영어는 제 독일어에 필적할만하더군요. 그래도 그 친구의 영어 듣기 능력이, 제 독일어 듣기 능력보다 나을 것 같아서 계속 영어로 대화했습니다. 사실 대화를 할 때 말을 못하면 주도권은 상실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래도 기기 문제인 것 같은데, 혹시 주변에 인터넷 쓰는 친구가 있으면 기기 들고 가서 한번 테스트 해볼래?"라는 황당한 대답을 듣고, 그 때까지의 제 근성은 모두 분노로 환원되었습니다. 제가 영어로 분노를 표출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친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제 노호성에 살짝 움츠려든 그 친구는, 기기를 새로 보내주겠다고 했고, 인터넷 불통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불하는 조치까지도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화요일인 지금까지도 기기는 도착하지 않았고, 내일까지도 소식이 없으면 저는 다시 근성을 발동시킬 겁니다. 정말 피곤합니다.

3. 프린터 그리고 건강보험

건강보험을 들었습니다. 11월 1일부터 적용되지요. 서류들은 진작에 도착을 했고, 병원 방문 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있길래 챙겼습니다. 지난 달 말부터 약간의 복통이 있었고, 어제는 치통도 오더군요. 외국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드디어 몸에 무리를 주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문제는, 병원에 가서 해당 서류를 제출할 뿐, 돌려받지는 못한다는군요. 다른 병원에 가려면, 이를 복사해서 써야 한다네요.

복사할 곳도 마땅히 안 보이고, 마침 프린터도 필요한데, 프린터를 하나 사와서 복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약 2 주 전이었습니다. Saturn과 Media Markt 등을 수차례 오가며 시장조사를 했고, E-bay와 독일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뒤적거렸지요. 맥 지원과 컬러 인쇄, 유지비 등을 고려하여 삼성 컬러레이저복합기 CLX-2160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거 가격이 고무줄이더군요. 어느 곳에서는 300유로를 넘게 부르기도 하고, 인터넷 가격비교 최저가는 189유로니까, 계속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A/S문제도 있고 해서, 동네 컴퓨터 가게로 갔지요. 189유로에 판매하는 곳은 프랑스였습니다. 쿨럭~

미리 사전조사한 가격과 일치하는 219유로였는데, 문제는 배송료더군요.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6유로 정도의 배송료가 붙고, 현장에서 구매해서 배송요청을 하면 16유로가 붙습니다. 결국 돌돌이를 끌고 가서 이걸 직접 끌고오는 무모한(!) 짓을 시도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순탄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지하철 2정류장 되는 거리를 그 무거운 프린터를 끌며 걸어왔습니다. 오늘처럼 비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요. 어쨌거나, 어제 모든 설치와 복사를 마쳤고, 이제 병원에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째, 치통도 가라앉고 복통도 거의 없어진 것 같네요... -_-;;;

4. 월반

기초부터 계속 들어온 독일어과정인데, 석달째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월반시험을 쳤습니다. 차근차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인데, 문제는 교실에 너무 학생수가 많다는 겁니다. 거의 15~20여명이 매일 수업을 함께 하는데, 선생님은 한 명의 낙오자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타입인지라, 저와 아내의 입장에서는 참 답답했었거든요. 그래서 월반을 했고, 지금의 클래스로 옮겼습니다. 화법조동사와 간접화법 등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혼자 복습하며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신경쓸 일들이 많아서 아직 못하고 있네요. 아내는 벌써 거의 다 따라잡은 모양입니다.

5. 아이폰

T-mobile에서만 쓸 수 있던 iPhone이 O2와 Base에서도 가능해진 모양입니다. 오늘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식 대리점이 아닌 이베이에서만 가능한 모양인데, 어쨌거나 잘만 하면 iPhone을 손에 넣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현재 사전으로서의 용도가 가장 큰 아이팟이 딱 1대 뿐인지라, 둘이 공부할 때 좀 불편한 점이 있어서 조만간 지르게 될 것 같네요.

그냥 최근 근황을 주절거리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종종 글은 쓰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올리다가, 이렇게 필 받았을 때 좌악 올려봅니다.
한국에서의 골치 아픈 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 한국을 떠났는데 환전할 때마다 한국의 불안한 정세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집 계약금(보증금) 납입을 위해 500유로를 인출했더니 한화로 무려 852,600원이 빠져나갔다. 1유로당 환율이 무려 1705.2원인 셈이다. 불과 얼마전 1570원대에 인출해던 기억이 있는데, 그 며칠 새 무려 130원 이상 오른 것이다.

누가 말했듯이 국가의 경제 기조가 매우 심약하다는 증거인가. 따지고 들면 복합적인 이유들이 다양하게 얽혀있겠지만, 집권초기부터 고환율 정책을 공공연하게 내세웠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심한 역겨움을 느낀다.

내 경우는 몇 만원의 환차손에 불과하겠지만, 수출입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그곳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잠시 위로의 마음을 가져본다.

p.s. 얼마전에 500유로 인출했을 때는 78~9만원 가량이 빠져나갔는데... 쿨럭~
수업 마치고 막간을 이용해서 태중이와 승섭 형, 그리고 같은 수업을 듣는 한인 학생 한 명과 함께 베를린 구경을 다녀왔다. 과거 개선문과 같은 용도로 사용했던 곳인데, 분단 이후 그 앞으로 베를린 장벽이 지나감으로서 냉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는 문화재.

다른 건 둘 째 치고 문화재 관리가 참 잘 되어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역시 조국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불안땐 부엌문 from Sangbae Ko on Vimeo.
바로 어제 일이었다. 이곳 시각으로 9월 5일 금요일 오전 7시 경, 갑자기 방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와 함께 단잠에 빠져 있던 나는 부시시한 눈으로 방문을 열었다. 내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종종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을 하곤 했던 승섭이 형이었기 때문에 으례히 문 앞에 형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곳 관리인이 서 있었다.

약간 성이 난 듯한 목소리로 알아듣기 힘든 독일어를 마구 토해내는 관리인. 아직 햇병아리 독일어 실력인 나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고, 몇 마디 듣다 못해 아직도 잠이 덜 깬 머리를 간신히 돌려서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관리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집의 계약자는 Frau Shin이다.
2. 너는 Frau가 아니다. (쩝~)
3. 고로 너는 이 집에 계약한 사람이 아니다. 8시까지 당장 나가라!

그렇게 말하고서는 집 열쇠를 빼앗아서 휑~하니 가버렸다.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 참고로 이곳의 방문은, 열쇠가 없이는 잠그지 않고, 단지 닫힌 방문도 열 수가 없다.

급히 승섭이 형과 태중이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 밖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잠시 후 승섭이 형으로부터 짐을 싸고 있으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난 데 없는 날벼락에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우리 두 부부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는 10월 2일까지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고, 계약한 금액도 다 지불한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쫓겨날 줄이야...

한국에서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분명 어떻게든 내 스스로 조치를 취할테지만, 이곳에서 나는 문맹의 외국인에 불과한 입장,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내 상황이 처절할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서러움이 울컥 밀려오는 가운데, 한 시간여 짐을 꾸렸고, 그 결과 바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갖춰졌다. 꾸려진 짐들을 바라보노라니 착잡하고 막막하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그 때 시각이 8시 40분 정도. 관리인이 우리를 쫓아내려고 재방문한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문을 여니, 승섭이 형이 열쇠를 들고 서 있었다. 다행히 잘 해결되어서 10월 2일까지 머무를 수 있는 걸로 말을 해놓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린 아내와 나.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앞이 캄캄했던 상황이었으니...

독일에서 두번째 주말을 앞둔 시점에 한번 닥쳤었던 대 위기였다.

26일 저녁에 도착했고, 현재 현지 어학원에 등록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완전 까막눈의 문맹자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도움 주시는 분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대부분의 행정절차를 완료했습니다. 다만 기숙사의 인터넷이 말썽을 피우는 통에 이제서야 소식을 전하게 되었네요.

출국 전후로 약 열흘~보름 간 초강행군을 한 덕분에 지난 토요일부터 몸살에 걸렸습니다. 아직도 콜록거리고는 있지만, 거의 다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베를린은 한국의 가을보다 약간 쌀쌀하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는 아주 쌀쌀해서 두툼한 이불을 덮고 자지 않으면 감기 걸리기 쉽겠더군요.

어쨌거나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시려나?)을 위해 몇 자 적어봅니다. 좀 있다 또 나가봐야 하니 저녁에 다시 좀 추가해야겠네요.


p.s. 동영상 추가했습니다만, 어째 좀...
어찌저찌하여 결국 살아서 귀환했습니다만, 돌아오는 그날까지 사고로 점철된 여행이었습니다. 까딱하면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지 못할 뻔 했거든요.

다소 인종차별적 태도를 경험한 것이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마구 항의했겠지만, 워낙 경황이 없어서 분루를 삼키며 참아야만 했었네요.

이륙 10분전이 되어서야 간신히 비행기에 탈 수 있었고, 나름 추억에 잠기며 미국땅을 떠날 것을 그렸었지만, 거친 숨소리와 흐르는 땀줄기로 미국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매조지하게 되었네요.

약 7천장을 상회하는 사진들을 정리하느라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무리 하는 대로 여행기를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걱정해주신 분들(있을지는 모르겠지만...)께 인사드립니다.

잘 돌아왔다구요...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사고가 터졌다. 본래 여행이라는 것이 예기치 않은 요소들의 연속이고, 또 그것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기도 하겠거니와, 본인에게 있어서 이제 PC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필수 기기이며, 이번 여행에서도 디지털 사진들의 백업과 각종 정보 수집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기대해야 하는 것인데, 이 기기의 액정이 깨어져버린 것이다. 흘흘~

약 1/4만 정상 작동하고 있는 액정을 통해 LA에 있는 애플스토어의 위치와 전화번호를 알아내었고, 서투른 영어로 수리 예약을 걸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서 상담을 받은 결과... 무려 800달러라는 수리비가 든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마저도 텍사스에 있는 공장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약 1주일이 소요된다는 말까지 겯들여져서 그야말로 본인을 패닉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miniDVI-Video 포트와 3.5파이-스테레오 콤포지트로 변환해주는 잭을 구매해서 모텔에 있는 TV에 연결하는 것으로 간신히 PC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간혹 전혀 input인식이 안되는 TV들을 만나 고생하기는 해도, 아직까지 사진들 백업과 정보 수집을 할 수 있으니 불행중 다행이랄까...

집떠나면 고생이라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서도 소싯적에 많이 들어왔던 위기관리 능력이 아직 조금은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놀라고 있다. 물론 이전과는 달리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이겠지만...
곧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을 대비하여, 전화기를 장만했다. 그리고, 함께 패키지 상품으로 나온 공유기도 장만했다. 평소 집에서 사용하는 100Mbps의 속도를 지원하는 무선 공유기가 없어서 계속 망설였는데, 802.11n 공유기 가격도 많이 떨어진데다, wi-fi 전화기 2대와 함께 구매하니까 매우 저렴하길래 과감하게 질러줬다.

처음엔 802.11g짜리 무선 랜카드를 AP로 변환하여 만든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서 통화를 시도해봤더니 아주 약간의 잡음이 들렸는데, 공유기로 교체하고 나니, 일반 전화 만큼이나 깨끗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밖에서도 전파가 잡히는 것이 꽤 만족스러운 세트이다.

스카이프 가입자끼리는 무료전화이므로, 해외에 나가서도 전화요금 걱정없이 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일전에 cub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mp3p의 수리를 맡겼는데, 수리비로 2만원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조금 더붙여 보상구매를 하기로 했다. cube가 작고 가볍긴 해도, 그만큼 재생시간이나, 음질, 내구성 면에서 핸디캡이 너무 큰 단점이 있어서 역시 다른 기종으로 갈아탔다. (cube는 벌써 3번째 a/s 였다.)

새로 구매한 mp3p는 T-10으로 알려진 모비블루의 신제품. 4G가 모델인데, 어째 아이팟 터치의 축소형 같다. 압력식 터치스크린을 사용하고 있지만, 쬐그만 화면으로 320x240 해상도의 동영상까지 재생해주는 재주꾼이다. 배터리도 모비블루 라인업 가운데 가장 큰 용량인 녀석으로 선택했다. 4G만 음악 부족으로 고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한동안 구매가 뜸했었는데, 갑자기 전자제품으로 왕창 구매를 하니, 아내가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내 나름대로는 꽤 고심과 오랫동안 저울질을 거친 결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