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발림님과 스코틀랜드의 망치(Hammer of the Scots)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항상 전쟁게임(War Game)에 대한 강한 미련을 갖고 있었는데, 비로소 체험을 하게 되는군요. 일전에도 배틀로어 등은 해보았지만, 정통 전쟁 게임이라고 보기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지요.

게임의 배경은, 아시다시피, 스코틀랜드입니다. 정확하게는 영화 용감심장(BraveHeart)이며, 영화의 주인공인 윌리엄 월러스도 이 게임에 등장합니다. (등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게임의 승리조건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전쟁 게임과는 달리, 전멸이나 병력 상의 압도가 아닌, 차지한 귀족 수였습니다. 즉, 스코틀랜드 안에서도, 독립파와 친영파로 갈려져 있는데,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과반이 넘는 귀족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잉글랜드는 친영파 귀족들을 기반으로 스코틀랜드의 통치를 공고히 해야 하는 것이네요.

지도를 펼치고 나니, 자연스럽게 제가 스코틀랜드를 맡게 되었습니다. 침략군인 잉글랜드는 사탕발림님의 몫이었구요.

스코틀랜드의 입장에서 보면, 시작이 참으로 암울했습니다. 본디 병력이라는 것은 집중의 원칙에 입각하여 운용하는 것인데, 스코틀랜드의 병력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잉글랜드의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특히나 월러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의 주력부대(Fife에 위치한 3개 군단)는 사면초가의 형국이었습니다. 사방이 모두 잉글랜드의 병력으로 포위된 상태였으니 말이죠. 월러스가 봉기하게 된 계기가, 영주의 초야권 때문이었으니, 사실 뭔 준비를 하고 봉기를 했겠습니까? 그냥 동네 주민들에게 쟁기 들고 따라오라고 한 거였겠지요. 그러니, 이해할만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북쪽의 머레이, 남쪽의 부르스와 캘러웨이가 월러스의 봉기에 호응해주어서, 잉글랜드의 병력이 월러스에게 집중하는 걸 막아주었다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시작하는 스코틀랜드가 암울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입니다.

잉글랜드군은 겨울 나기를 위해 보병을 제외한 전 병종이 철수를 해야한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이 증원되는 부대는 항상 전투력 만땅을 채우고 들어온다는 유리함을 안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군은, 새로 증원되는 병력의 전투력이 매우 허약하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겨울이 지나도 지역이 허락하는 한, 부대가 잔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각 진영의 전술이 어때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정규전을 지향해야 하는 잉글랜드 군과 비정규전으로 가닥을 잡아야 하는 스코틀랜드군이지요.

하지만, 본인은 본래 비정규전, 즉 게릴라 전을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후의 위협부터 차근차근 제거해 가며 병력을 집결시키는 전술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가 지향해야 하는 전술에 위배되는 전술을 펼친 덕분에 초반에 심하게 고전해야 했습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일단,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비해 척박한 영토가 많습니다. 대규모 부대가 겨울나기를 하려면, 해당 영지의 보급능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런 옥토는 대부분 남쪽, 잉글랜드군이 점령한 지역이거든요. 덕분에 첫 해에 몇 개 부대는 강제 해산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밥 없다. 고향 가라~.”가 된 것이죠. 흑흑~

첫 해의 삽질로, 병력의 분산 배치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고 나서, 이후 부터는, 겨울이 다가오면 전 병력을 분산 시켜서, 스코틀랜드 특유의 자투리 부대 대량 육성을 시도했습니다. 나름 이 전술이 주효하면서, 스코틀랜드의 파란 물결이, 지도의 80% 이상을 뒤덮는 순간까지 왔습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습니다. 월러스의 근거지인, selkirk숲은, 숲 특유의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대규모 부대의 투입이 곤란한 곳입니다. 그곳에 월러스가 혼자 조용히 게릴라전을 수행하였으니, 에드워드 1세가 이끄는 대 부대도 별 힘을 쓰지 못하던 것이지요.

약 6개 군단을 투입하고도 허탕을 쳤던 잉글랜드군은 새로운 전술을 구가합니다. 바로 “유인전술.” Selkirk 숲 남쪽에 2개 군단을 배치해놓은 잉글랜드군을 만만하게 본 월러스가 부르스 가문을 이끌고 공격을 시도하는데, 이 부대가 너무나 충격적인 전과를 거둡니다. 3개 주사위 모두가 1이 나오는 기여을 토한거죠. 참고로 주사위 숫자가 낮을 수록 전과가 좋습니다. 대부분의 병종이 1~2일 때 성공이고, 엘리트 유닛들이 1~3일 때 성공을 거둡니다. 1이 3개가 나왔다는 것은 치명타지요. 1/27의 확률이 적중해버린 겁니다.

그렇게 월러스가 비명횡사하면서 전역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남부의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게릴라 전은 흐지부지 끝나게 되지요. 결국 남부를 이끌던 부르스 가문도 잉글랜드에 포섭이 됩니다.

스코틀랜드에 많은 귀족들이 있지만, 귀족은 2개의 파벌로 나뉩니다. 그 하나가 부르스 가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코뮌 가문이지요. 스코틀랜드에 왕이 등장 하면,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이 두 가문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다른 파벌은 모두 잉글랜드 쪽에 붙어버리는, 독립보다 파벌과 권력다툼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담고 있는 장면이 연출이 됩니다.

남부의 부르스 가문과 북쪽의 코뮌 가문을 모두 잉글랜드에 뺏긴 본인은, 대관식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프랑스 출신 가문(밸리얼)을 통한 것만 남아있었고, 그마저도 대관식을 하려면 이벤트 카드가 나와야 하는데, 무려 4년동안 단 한 장의 이벤트 카드도 들어오지 않는 풍전등화의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월러스도 없고, 코뮌도, 부르스도 없는데, 왕도 세울 수 없는 위기 상황.

한 때 국토의 80%를 수복했었지만, 다시금 심하게 밀리기 시작한 스코틀랜드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소규모 부대의 게릴라 전술로 전세를 힘겹게 유지시켜 나갑니다.

때는 바야흐로, 마지막 해. 게릴라 전술이 적중하면서 다시금 세를 역전 시킨 스코틀랜드군에 대관식 조건이 갖춰지게 됩니다. 코뮌 가문을 탈환한 것이지요. 하지만, 코뮌 가문이 스코틀랜드 왕위를 차지할 경우, 부르스 파 귀족들은 모두 반기를 들 상황. 제게 부르스파 귀족들이 모두 3가문 있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바랬던 스코틀랜드 왕이었기에, 이들의 반역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들을 사실상 가미가제로 써버립니다. 이왕 반역할 것들이라면, 상대의 전력이라도 감소시키는데 쓰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북부의 전 병력을 소집하여, 왕의 대관식에 맞추어 최대 규모의 군단을 편성하며, 화끈한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지요. 승리 조건은 병력 수가 아니라, 자기편 귀족의 수라는 사실을... 마지막 해에 접어들 시점에 제가 귀족의 수에서 사탕발림님보다 4명이 더 많았었는데, 가미가제로 2명을 헌납하는 바람에 동수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게다가 대관식 준비하느라, 이동력을 모두 소진한 상황. 한바탕 혈전을 벌여보고자 했던 저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제 운명은 [귀족 전향] 이벤트를 통한 일발 역전만 남은 상태.

귀족 전향 이벤트는 사실 성공확률이 다소 높습니다. 1~4의 주사위 결과가 나오면, 상대 귀족을 포섭하는데 성공하는 것이고, 5~6이 나오면 실패하는 겁니다. 2/3인 셈이지요. 하지만, 이날 게임에서 모두 5차례 이 이벤트가 시도되었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섯 번 째 시도가 바로 이 마지막해 마지막 명령이었습니다.

귀족 수에서 동률인 채로 끝이 난 양 진영. 이 경우, 윌리엄 월러스의 생사를 통해 승패를 가늠합니다만, 월러스는 게임 중반, 유인 전술에 걸려, “프리덤”이라는 먼 옛날의 여성용품 이름을 외치며 횡사한 상태.

결국 사탕발림님의 승리로 이날의 잉-스 전쟁을 마쳤습니다.

게임은, 양군이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도 매우 균형이 잘 맞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규전 위주의 잉글랜드와 비정규전 위주의 스코틀랜드군. 병종도 다르고, 지형도 서로 다릅니다만, 절묘할 정도로 균형을 잘 맞춰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더군요. 게임의 부분만으로 보면 분명 일진 일퇴의 상황이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호각지세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본격 전쟁 게임으로는 사실 상 처음 맛보는 게임이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Hammer of the Scots. 시간도 그리 많이 안 걸리니까,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꼭 돌려보고 싶은 게임이네요.

전쟁 게임 초보자인 제게, 설명도 잘 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사탕발림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