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제자들이 2주 전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왔다.

침착하고 생각이 깊은 학생, 그리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학생, 무슨 말을 해도 웃고 있는 학생이 각각 한 명씩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 번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먹성들을 자랑했다. :)

이날 돌아간 게임들은 다음과 같다.

Ubongo
Gemblo
For Sale
Coloretto
Elfenland
Bohnanza

이날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학생 덕에 분위기는 다소 부산했지만, 달라진 사제간의 모습을 보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스승은 아직도 한참 어려운 존재인 나로서는, 아내 앞에서 소주가 맛있네, 맥주가 맛있네라며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생소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권위주의와 절대적 교권이 군국주의적 잔재의 영향이라는 생각에 본인 역시 개선의 필요를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그러한 의식을 갖지 않은 학생들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권위주의와 절대적 교권의 빈 자리를 아직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우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울러, 즐거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일인지도 재확인했다. 보드게임을 통한 인성과 지식 교육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길에 3명이 걸어가면, 그 중 한 명은 나의 스승이라는 말처럼, 만나는 모든 이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있는 요즈음이다. 아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운 하루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내와 그녀의 제자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얼굴을 가리고, 옷과 목도리를 잔뜩 두른다. 휴대전화로는 실컷 자기 사진을 찍어대는 아이들이 말이다.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승부욕에 불타 3연속 게임을 내달린 아내에게 3연패라는 결정타를 안기고 만 것이다. 그것도 "이번에도 지면 다시 게임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임한 마지막 게임에서 본인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아내를 패퇴시킨 것이다.


안녕~ 아그리콜라~!
모처럼 온천 여행을 계획했다. 아내에게 여행 계획의 전부를 맡겼는데, 아내가 찾아낸 곳들은 가격만 높고,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본인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후보지는 두 곳으로 압축되었다. 백암온천단양.

전자는 2인 기준으로, 조식과 온천을 포함하여 1박에 7만 7천원(평일 기준)이었고, 후자는 조식과 수영장을 포함하여 1박에 8만 6천원. 그리고 1명 추가시 각각 1만원과 1만 6천원. 아무래도 가격적인 잇점은 전자가 더 있지만, 거리가 경북 울진이라, 8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 어쨌거나, 둘 다 어느정도 이점이 있기에 이 가운데 택일하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 여행은 여럿이 떠나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친구들 몇몇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하루 종일 전화를 붙잡고 연락을 취해봐도 같이 여행을 갈 친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득 스무살 무렵에 그렇게 본인과 함께 여행하기를 희망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불과 십여년 전의 일인데, 이제는 가족과 직장에 치여서 얼굴조차 보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어쩌면, 그동안 폐쇄적인 삶을 살아온 본인의 현주소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일단 한 친구가 다음 주 금-토에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전일 동그랑땡의 재료를 가지고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아내는 본인더러 만두피를 사가지고 오라고 했지만, 동네 가게 한번 다녀오려고 해도, 걸어서 다녀오려면 상당한 거리인 우리 집. 그래서 귀찮은 나머지 직접 반죽을 했다. 참고로 우리 집은 아파트 각 항목점수에서 대부분은 평균에 해당하고, 편의성이 평균보다 약간 아래이다. 자연 환경만 평균보다 아주 높은 수치로 상회하고 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매일매일에 싫증을 느낀 아내가 팔을 걷어부쳤다. 무위도식하는 본인으로서는 아내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이 못내 미안해서 계속 매식을 권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아내로 하여금 미안함을 느끼게 한 모양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우리 집이다.)


억지로 감정을 봉합하고 동그랑땡을 먹기는 했지만, 서로 가슴 한 구석에 상처를 하나씩 새긴 것 같아 안타깝다.
1. 신년 들어 일기를 매일 쓰려고 했지만, 그것도 보통의 노력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특히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요즘의 나날 속에서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5. 어쨌든 지금 아그리콜라로라도 다시금 보드게임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아내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아내와 점심식사를 하러 광주-성남 경계점에 있는 칼국수 집을 찾았다. 최근에 찾은 맛집으로 만두 맛이 일품이라 아내와 종종 찾아가는 편인다. 만두가 일전에 장모님이 빚어주신 만두와 비슷한 맛이라, 아내도 마음에 들어한다.

386 지방도를 통해 귀가하다가 문득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장지 사거리 근방에 저게 사당처럼 보이는데, 왜 저렇게 문을 항상 잠궈둘까?"

뚜렷하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얼버무렸지만,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의문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을 메운다.

금지하는 것 외엔 모두 허용하는 사회와 허용하는 것 외엔 모두 금지하는 사회.

일견 비슷해보이지만, 저 둘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후자는 전자에 비해 예측 가능성이 훨씬 높다. 따라서, 관리자의 입장에선 후자를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얄궂게도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지는 않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러한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너무나 무기력해보인다.

전형적인 후자에 속하는 한국. 그리고 차근차근 다가오는 재앙의 그림자들. 위기가 닥치면, 대안 마련보다 당장의 비난을 면할 변명거리부터 찾고, 말도 안되는 논리로 마구 우겨대다보면 책임을 면하게 되는 우리 사회.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관리형 닫힌 사회. 21세기 한국의 현실은 역사의 교훈 따위는 조작된 경제 논리 앞에 무참하게 짓밟혀버린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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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늦게까지 Dexter를 보고 잠들어서 그런지, 오전까지 늦잠을 잤다.

일어나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나니, 주말이라 게임 생각이 났다. 몇 사람 접촉을 해보았지만, 반응이 좀 지지부진했다. 민샤에게 전화를 했더니, 애가 자고 있으니, 나더러 오라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움직이기로 결정했으나, 여전히 엄청난 정체를 자랑하는 죽전에서 발목이 잡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다 결국 7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있던 전심님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애환이 많이 서린 게임, 아그리콜라(Agricola)를 5인 게임으로 배우게 되었다. 우습게도, 규칙서와 카드 번역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하는 법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게임 진행하면서 몇 가지 오역 및 통일되지 않은 용어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너무 채찍질을 받으며 진행한 탓이었으려나. 기회가 되면 한번 다시 훑어봐야 할 것 같다.

아그리콜라를 마치고 전심님은 급히 귀가를 했다. 아무래도 내가 늦게 도착한 것에 다소 서운함을 가진 것 같은 눈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 없어서 조금은 답답하다.

이어서 이번에 태중이를 통해 독일에서 구해 온 null und nichtig라는 트릭테이킹 게임을 4인이서 진행했다.

영문으로 살펴 본 내용으로는 무척이나 간단한 트릭테이킹이라 생각해서, 넘겨달라는 민샤의 요청에 조금 망설이다 넘겼는데, 직접 해보니 꽤나 마음에 든다. 역시 오랫동안 긱을 뒤지면서 평을 살펴보며 산 녀석을 그리 쉽게 넘기는 게 아니었는데... 쩝~

게임은 리드수트를 따라가야 할 필요도 없고, 트럼프로 트릭을 획득하는 것도 아니지만, 트릭 획득이 곧 점수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독특한 형태를 띄게 된다. 즉, 각 색상별로 최후에 획득한 카드의 숫자만이 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인데, 각 색상별로 0짜리 카드가 2장씩 있으므로, 신경쓰지 않으면, 모조리 0으로 도배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두자리 숫자의 카드들을 잔뜩 획득했다고 좋아하며 방심하다가는 어느 샌가 0짜리 카드들의 잔치 속에 울상을 짓게 되는 게임.

3~5인 게임인데, 카드를 속으로 헤아리는 사람에겐 더 없이 쉬운 게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카드 카운팅에 신경쓰지 않는 이에겐 그야말로 폭탄 바르기 게임이 된다.

눌 운트 니히티히를 마치자 시간이 새벽 1시를 향해가고 있길래,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신선설농탕에 들러서 아내와 설농탕 한 그릇씩 먹고 들어왔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둘이 거리를 걸어가니까, 오래전 아내와 데이트하던 기억이 났다. 아내도 그런 느낌이 싫지는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