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더운 날이었다. 최근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다니던 필자지만, 나름 "파티"라는 이름을 걸고 초대받은 것이라, 차마 그렇게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간만에 긴 바지를 입고 길을 나섰다. 여담이지만, 귀가하고 보니, 엉덩이와 등 쪽에 잔뜩 땀띠가 났었으니, 정말 더운 날이었다.

이렇게 더운 날 찾아간 곳은, 필자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네. 아주 잠깐 회상에 잠길 시간을 허락 받을 줄 알았지만, 재개발과 시간의 무게 덕분에 과거와의 연결고리는 많이 옅어져 있었다.

인텔의 블로거 파티. B2C보다는 B2B가 더욱 중요할 것 같은 인텔이 업체 관계자가 아닌 블로거를 초대하는 것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일반 CPU도 아닌 노트북 프로세서니, 더더욱...

오히려 발상의 전환을 통한 홍보효과를 노린 것일까? 어쨌거나, 밥을 먹었으니 밥값은 해야 하는 것이 인지 상정. :) 센트리노 2가 탑재된 노트북은 살지언정, 센트리노 2를 직접 구매할 일은 없는 필자지만,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소감을 간단하게나마 남겨본다.

우선, 장소와 행사 준비 등은 꽤 만족스러웠다. 식사의 주력 메뉴가, 필자는 전혀 손도 대지 않는 해산물이었다는 점이 좀 불만스러웠지만, 그거야 필자 사정이고... 얼리아답터들을 진두지휘하는 블로거들을 상대로, 다양한 방송장비를 통한 인터넷 생중계의 시도는 꽤 신선했다. 그리고, PT준비들도 나름 괜찮았고... 무엇보다 진행을 맡으신 블로거 "그만"님의 맛깔스러운 입담은, 자칫 경직되기 쉬운 신기술 발표회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후기로 남겨줄 듯한 덕담일테고, 진짜 밥값을 하려면 쓴 소리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 조금 아쉬운 점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선, 나름 센트리노2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기존 제품과 비교 시연을 한 것 같은데, 여기서 미흡한 점들이 많이 나타났다. 게임에서의 초당 프레임 수(fps)를 비교하기 위해, 양쪽의 노트북을 보여주었는데, 대상이 된 WoW는 그 초당 프레임수의 차이를 체감하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현장감을 좀 줄이더라도, 차이점을 체감하기 적당한 영상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일반 어플리케이션 퍼포먼스는 다소 억지스러웠다. 두 노트북에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진행시켜서, 소요시간과 소모 전력을 비교한 데모는, 우선 변인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령, 신형 테니스 라켓의 성능을 강조하려면, 구형과 신형의 라켓을 쓰는 동일인, 최소한 동급의 실력을 가진 이들의 시합을 통하는 것이어야 설득력을 가진다. 그런데, 신형 라켓을 쓰는 로저 페더러와, 구형 라켓을 쓰는 필자의 시합을 통해 신형 라켓의 우수성을 설명하려면, 이것이 라켓의 우위에 따른 결과인지, 선수의 기량차이인지 구별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비교 대상의 CPU는 화면상에 나타난 자료에 의하면, 코어 듀오와 코어 2 듀오. 센트리노와 센트리노2의 차이가 이 둘의 차이와 같다면,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필자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두 CPU의 클럭 차이는 꽤나 확연했다. 1.X GHz 대의 구형과 2.X GHz대의 신형을 비교한 것이었으니, 동일 코드명의 CPU를 비교해도 퍼포먼스의 질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 이를 통해 신기술의 우수성을 설명하려고 했으니,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소모전력에서도 단위의 선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양자간의 소모전력을 비교하기 위해 선택한 단위는 mWh (밀리와트시), 즉 총 소모 전력이다. 당연히 속도가 느린 CPU에서는 작업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전력량에 시간을 곱한 밀리와트시 단위를 쓴 건, 수치의 차이를 현격하게 벌려서 성능의 차이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간 꼼수로 보였다. 진정으로 소모전력의 우위를 말하고 싶었다면, 단위 시간 당 소모 전력량, 즉 소요 시간으로 나눈 값을 단위로 택했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랬다면, 실제로 행한 데모 값보다 수치상으로는 차이가 줄어들겠지만, 그래야 과학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분명 센트리노2가 기존의 프로세서보다 더 나은 성능을 가진 제품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려다보니 오히려 필자에겐 좋지 않은 느낌을 안겨준 비교PT가 되었다.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블로거들을 좀 과소평가하는 듯한 멘트들이 좀 거슬렸다. 블루레이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는 등, 궁금할테니 한번씩 만져보라는 등의 멘트는, 전술한 바와 같이 얼리아답터들을 진두지휘하는 블로거들에겐 모욕으로 들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현실적인 금전의 문제로 그다지 얼리아답터라고 할 수 없는 필자조차도, 블루레이와 HD-DVD, 802.11n은 매우 익숙하고 자주 접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소 까칠한 논조의 후기지만, 항상 좋은 말만 써주는 관계자들만 초청하는 일반 발표회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가진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한 발표회니까, 이런 것을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여 쓴 글이니,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쨌거나, 밥값은 이만 하면 된 것 같고, 까딱하면 아내의 등떠밀림에 휘말려, 물욕에 사로 잡혀 가무를 선보이는 한 30대 가장의 추태를 보일 뻔 했는데, 이를 면한 것은 참 다행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