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온지 이제 7개월 남짓 됩니다. 독일어를 사실상 이곳에 와서 처음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버텨오고 있지만, 지금 이야기하게 될 사건은 정말이지 울화통이 터진다는 표현이 어떤 느낌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사건이더군요. 지난 11월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이 사건 때문에 저와 아내는 건강까지 악화되고 있을 정도니, 그 스트레스는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인터넷 회사와의 계약에서 시작됩니다. 10월 1일, 독일에서의 본격적인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로 인터넷을 신청했습니다. 문제의 회사는 Freenet이고, 해당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가운데 가장 비싼 월 30유로짜리 상품을 신청했습니다. 최소 의무 계약 기간이 2년이더군요.

약 한 달여의 기다림 끝에 11월 1일부터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갑자기 인터넷이 안되는 겁니다. 물론 같이 물려있는 전화도 포함해서 말이죠.
일시적인 것이려니 싶어서 며칠을 기다렸는데도 서비스는 여전히 불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지요. 그런데 맙소사... 이 회사의 전화를 통한 고객 서비스는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전화 연결이 어려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천신만고 끝에 전화 연결에 성공하더라도, 담당자가 독어 외에는 말을 못하는 겁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당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막 3개월 째였던 본인으로서는 더듬더듬 의사표현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상대방이 “전화로” 말하는 걸 알아듣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직원과 통화하기 위해 거의 나흘 가량을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간신히 “의사소통”에 성공해서 직원으로부터 새로운 기기를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약 열흘간의 기다림(!) 끝에 새로운 기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 기계도 안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전화기를 붙잡고 인격수양의 시간을 가져보았지만,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기계를 회송하는 편에 편지를 써서 같이 부쳤습니다. “새로 보내준 기계도 작동이 안된다. 문제를 해결해주던지, 계약을 해지하던지 양자택일을 바란다.”는 내용의 영문 편지였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신도 없고, 오히려 월 사용금액 통지서만 날아오더군요. 그래서 다시 편지를 썼습니다. 12월 10일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 아니라면 계약이 해지된 것으로 알겠다. (당시 편지를 보낸 시점은 11월 말 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답신은 오지 않길래, 제 거래은행에 가서 자동이체 지급정지 및 징수금액 회수를 요청했습니다. 이 회사가 그 때까지 제게서 징수해간 금액이 약 70 유로 남짓 됩니다.

그제서야 답신(?)이 오더군요. 답신이라고 하기도 묘한 편지 두 통이 날아왔습니다. 하나는 “귀하의 계약 철회 요청은 부적절한 사유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귀하의 계약은 최소 2년 동안 유지됩니다.”라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회수한 금액에 10유로를 더해서 입금하라는 내용의 통지서였습니다. 왜 부적절한 사유인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고, 다짜고짜 안된다는 말만 덩그러니 던져놓으니까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다시 편지를 썼습니다. 사건의 전후관계와 요구사항을 조목조목 짚어서 A4 8매 분량의 한/영 편지였지요. 그러나, 여전히 회사측은 묵묵부답입니다. 몇 주 뒤에 편지 한 통이 날아와는데, 앞 선 금액에 또 10유로를 가산하여 입금하라는 내용의 통지서였습니다. 그러니까 90 유로 남짓한 금액이 되었지요.

전화로도 해결이 안되고, 편지로도 해결이 안되는 미칠 듯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는 분께 부탁해서 독문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회사에서 답신이 왔는데, 편지를 보낸 사람이 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분께 위임장까지 써주었지만, 회사로부터 별 다른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베를린 리포트의 배너 광고에 있는 한국 변호사님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독일에서도 소송으로 가게 되면 패소한 쪽이 승소한 쪽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희망을 안고 시도해본 것이었는데, 돌아온 답변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상담료만으로 180유로를 요구하는 변호사의 답변은 제 말문을 막아버리더군요.

불안한 나머지 최후의 수단이라는 생각으로 한국 대사관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그 악명 대로 대사관에서도 나 몰라라하더군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에게 한국 대사관이 해준 조치는 다른 변호사의 명함 한 장이었습니다.

그래도 익사 직전의 제겐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기에 명함 한 장 들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갑니다. 그 때가 벌서 해를 넘기고도 2월이 된 시점이었습니다.

변호사는 한국인이었지만, 독일에서 태어나서 자란 관계로, 저와의 의사소통은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해당 회사와 주고받은 모든 문서자료와 사건일지를 가지고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제 설명을 들은 변호사는, “회사에 한 푼도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도 돈을 지불할 의무가 없다.”며 저를 안심시켰고, 문제 해결을 위해 회사에 연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비록 선임비용이 50유로 가량 들 것이라고 했지만, 그동안 골머리를 썩게 했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또다른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나서 며칠 후, 회사측이 고용한 변호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말이 편지지 청구서입니다. 이제 청구 금액도 190유로 정도로 급상승했더군요. 이 편지를 변호사 사무실에 맡기고 왔습니다. 제 변호사는 이 때도 저를 안심시키더군요. 자기가 알아서 하겠노라고...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3월 17일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제 변호사는 약속시각이었던 9시를 펑크내고, 저로 하여금 2시간을 그 주변에서 서성이게 만들더니, 충격적인 메시지를 제게 전달(!)합니다. 제가 회사에 10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인 즉, 제가 회사에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문제에 대해서 제게도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제게 청구한 전체 금액의 반인 100유로를 제가 지불하면 기계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이더군요.

이게 무슨 해괴한 말입니까? 그들이 제게 청구한 금액은, 제가 사용하지도 않은 지난 해 11월부터 3월까지의 인터넷 요금과 그들의 변호사 비용입니다. 이 금액 자체도 제가 부담해야 할 아무런 당위성도 찾지 못합니다. 게다가 제가 수차례에 걸친 전화와 편지를 통해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걸 상기하면, 그들의 논거와 결론 모두 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걸 전달하는 변호사의 말이었습니다.

한 달 전의 첫 만남에서 본인이 했던 말을 뒤집은 것은 물론이고, 저에게 고용되었기 때문에 제 입장을 그들에게 대변해야 하는 변호사가, 상대 변호사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전달자의 역할만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렇게 속이 터지는 이야기를 듣고도 제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이어진 변호사의 말이었습니다.

“만일 소송까지 가게 되면 변호사 비용만 7~800 유로에 달할 것이다. 이런 소액 사건을 가지고 이런저런 서류 검토하는 것도 귀찮은 일 아니겠는가. 그냥 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치솟은 환율 때문에 1유로도 아까워서 벌벌 떨며 사는 저희 부부에게 7~800 유로 운운한 것은 결정타였지요. 속에서는 열불이 났지만, 그냥 그렇게라도 해결해 달라고, 대신 향후에 이런 문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만 해달라는 조건을 붙여달라고 했습니다. 제 변호사는 상대측에게 그 내용으로 연락을 하고, 답신이 오게 될 다음 주에 제게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 그 다음 주가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더군요. 사무실로 전화를 몇 차례 걸었는데, 그 때 마다 자리에 없길래, 전화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역시 감감 무소식입니다. 이 메일을 보내도 마찬가지로 답신이 없더군요.

4월 3일,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던 저는 또 충격적인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제 변호사가 휴가를 갔고, 5월 중순에야 돌아온다는 비서의 말.

극심한 스트레스에 난생 처음 저혈압 판정을 받은 저는, 그 순간 온 몸의 피가 쫙 빠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그 주말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독일 생활을 접고 귀국하자고, 이 저주받은 곳에 더 머무를 수가 없겠다며, 아내랑 부둥켜 안고 펑펑 울면서 그렇게 주말을 보냈습니다.

이제 체념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귀국하기 위해 이런 저런 정리를 하면서, 변호사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중대 결심을 하게 될 것 같으니, 조속히 연락을 주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말이죠.

그런데 좀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제 변호사랑 같이 일하는 독일인 변호사인 모양입니다. 약 5분 여동안 전화로 주고받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터넷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4월 말까지 130유로를 내면 기계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윤 변호사(제가 고용한 한국인 변호사) 말로는 그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다고 한다. 윤 변호사는 아직 휴가에서 돌아오지 않았기에 내가 대신해서 당신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또 30유로가 올랐더군요. 이 쪽 변호사의 무능함을 상대측에서도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지난 번의 100유로도 말도 안되는 조건을 수락하는 것이었는데, 그새 30유로가 올랐다니...

일단 다음 월요일에 대리 변호사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과연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소연할 곳조차 없어서 홧병이 생길 지경입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아내와 단둘이서 시작한 독일 생활이 기로에 섰습니다. 이렇게 독일 생활을 청산하기엔 그간의 결심과 노력이 너무나 아깝지만, 현 상태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현명한 분들의 고견이 제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