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1 - [Boardgame/Train Game (18xx)] - [다시 보기] 1825 Unit 3 - Part 1

3. 게임 특징

2인 게임이다보니 등장하는 회사의 수가 적고, 배경이 되는 지도가 아담합니다. 사기업이 3개, 대형 주식회사가 3개, 소형 주식회사가 3개 등장합니다.

3개의 사기업 가운데 2개는 게임 시작할 때 임의로 분배하므로, 3개의 사기업을 독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 번재 사기업부터 구매 대상이 되는데, 이 가격이 대형 주식회사의 경영자 주식 가격(일반 주식의 2배)에 해당하므로, 사기업 2개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불리할 것도 없더군요. 사기업은 매 경영 회전(Operation Round)마다 일정 수익을 벌어다 주는 것 외엔 특이점은 없습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폐쇄되는 것도 아니고, 대형 주식회사에 인수되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사기업을 적게 가진 게임 참가자는 게임을 빨리 끝내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아야 하겠군요.

회사는 총 주식의 60%가 팔려야 출범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18XX 시리즈와 같습니다만, 한 사람이 보유할 수 있는 한 회사의 주식 한계가 없습니다. (1830 기준 60%) 내키기만 하다면 100% 사들여서 사기업처럼 굴릴 수도 있습니다.

등장하는 회사들도 순서가 있습니다. 후반기에 등장하는 소형 주식회사들은 기지 정류장(Base Staion)을 추가로 지을 수가 없지만, 특수 열차들을 출범과 동시에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기존 회사들이 깔아놓은 선로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2인 게임에서 후반에 등장하는 회사마저 기존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주식 거래하는 건 번잡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이 회사들의 증서는 단 넉 장 뿐입니다. 40%짜리 경영자 주식 증서 한 장과 20%짜리 일반 주식 증서 석 장씩. 이들 회사들의 출발 장소가 지도에 명기되어있지 않아서 잠시 헤맸었는데, 추가 지도 조각(!)이 동봉되어있더군요. 단일 게임에서도 조립형 보드를 제공하는 게임입니다.

주식 시장은 1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르거나 내리거나 하는 것이 직선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다른 18XX의 상당수는 2차원적으로 되어있어서, 시세표 상에서 상하좌우의 이동이 발생합니다.) 1825년이 배경이다보니 아무래도 1870년의 나름대로 고도화된 주식 시장과 동일한 시장을 갖는다는 것이 다소 모순된 것이겠지요. 또한 주식 거래 회전 때는 주식의 시세가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경영 수익을 배당했느냐, 배당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주식 시세가 변합니다.

이렇게 보면 기존 18XX에 비해 오직 규칙들을 빼기만 한 것 같지만, 더한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배당금의 액수에 따라 주식 시세의 변동폭이 정해진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시리즈들이 배당하면 한 칸 상승, 배당하지 않으면 한 칸 하락, 거기에 조금 더 추가한 게임들은, 수익의 반만 배당하면서 시세를 유지했지만, 1825에서는 배당금이 많으면 그만큼 시세 상승폭이 커집니다. 현재 주식 시세를 기준으로 2배 이상의 금액을 배당하면 2칸, 3배 이상의 금액을 배당하면 3칸 상승하는 식입니다. 이 때문에 자금 축적을 위해 수 차례 배당을 하지 않다가도, 한 번의 거액 배당으로 시세를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열차의 등장으로 구분되는 단계는 총 3단계. 각각의 단계는 3짜리 열차, 5짜리 열차가 팔리면서 열리는데, 5짜리 열차가 팔리면서 열리는 제3단계는 조금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18XX에서 열차의 구매는 순차적입니다. 한 번에 두 종류의 열차가 구매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지요. 1825도 제1, 제2단계에서의 열차구매는 이와 같지만, 제3단계가 열리면 모든 열차가 구매 가능해집니다. 이 때 등장하는 U3, 3T와 같은 특수 열차를 이용하면 독특한 전략의 구상도 가능해집니다.

정리하면, 1825는 다른 시리즈에 비해 규칙이 많이 간소화되었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2인 게임의 특수성이기도 하겠고, 배경이 되는 1825년의 주식 시장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덕분에 게임 내내 규칙서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규칙 적용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타일 향상 흐름도(Tile-upgrade flow chart)정도만 가끔 쳐다보면 됩니다.
드디어, 숙원사업 하나를 풀었습니다. 아내와 1825 Unit 3을 돌려본 것이지요.

아아~ 가슴 벅찬 감동이, 게임을 중단한 지 6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비록 첫 플레이인데다, 오리지널 구성물로만 게임을 돌린터라, 시간 지연이 꽤 되었습니다. 게임 박스에는 2~4시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첫 게임에 그런 스피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BGG에서도 소요시간 때문에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한 사람이 있더군요. 자기는 4.5시간 걸렸는데, 아무리 첫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도저히 2시간대에 게임을 마칠 수는 없을 것 같다면서...

사실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 참가자의 초기 자금 액수를 늘리면, 게임 시간이 짧아진다고 설명되어있더군요. 어쨌거나 저희도 새벽 2시 경에 펼치기 시작한 게임을 6시가 되어서 중단했습니다. 물론 규칙서를 다시 익히느라 실질적 게임 시작 시각은 4시 경이었습니다만, 그다지 짧은 게임은 아니지요.



그 밖에 다른 구성물들도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크게 아쉽지도 않은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Mayfair나 JKLM, Hans im Glück에서 만든 게임들보다는 좀 열악합니다만, 대부분의 18XX들이 개인 출판물임을 감안할 때는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2월 13일, 월요일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초야에 은거하는 백면서생이라 찾아주는 이도 없기에, 덩달아 제 전화기도 캔디(외로워도~ 슬퍼도~)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왠 낯선 번호가 뜨더군요. 의아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한 통의 전화. 그 전화로 인해 즐거운 인연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다이브다이스에서 눈팅을 주로 하신다는 그 분은 통화 내내 정중하고, 교양있는 태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춘추가 제법 되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참 인생 선배셨습니다.

통화 내용은 간단했지만, 저로서는 당황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의 골자는 “당신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소~.”였으니까요.

연애도 저돌적으로 해왔던 터라, 여성에게도 자주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하기는 많이 했지요. ^^; 하지만, 중년 남성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나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요.

어 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18일 토요일에 깜짝 아지트 번개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변덕스러운 저희 커플의 일정 덕분에 모임은 당일날까지 불투명했고, 결국 단촐하게 제 친구 커플을 포함한 5명이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제 연인의 기분이 들쭉날쭉이라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쩝쩝~)

처음 뵌 분이시지만, 전화로 받은 인상 그대로시더군요. 다만, 호기심이 남다르셨습니다. 저 역시 호기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라, 만나서 대화를 나눈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서로 친해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호기심 못지 않게 열정도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제겐 낯 간지러운 이야기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만, 마치 스타에게 10대 소녀 팬이 품고 있음직한 열정을 중년까지도 간직하시고 계시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 부러웠습니다.

쑥스러움을 누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보드게임과 더불어 마주 앉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 화두였지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보드게임이라는 유희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의 공통된 갈증은, 바로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 보드게임을 매개로 연을 맺은 이들에게서 한가지로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그 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게임에 대한 갈증과, 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대단하셨습니다. 어쩌면 월요일의 전화 통화도 그 연장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의아한 점은 저 같은 초보 게이머가 선택(?)된 점입니다. 게임에 대한 열정이라면, 절대로 뒤지지 않을 다이브다이스의 회원들이 즐비한데 말이지요. 어쩌면 저를 계기로 그런 분들을 만나고 싶으셨을 겁니다. 서울의 동부지역(상일동, 하남, 구리, 광주 등)에 의외로 보드게이머가 많은데, 때가 되면 정기적인 모임을 주관해봐야겠습니다.

각설탕 하나 먹고, 이날의 첫 게임으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를 선택했습니다.

이 게임은 묘하게 제게 3인 게임으로 남아있습니다. 2~4인까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3인일 때 가장 좋은 이유 때문일까요? 아직 2인, 4인 게임으로는 해보지 못하고 오직 3인 게임으로만 돌렸네요. 이 날 역시 아직 친구커플이 도착하지 않은 관계로, 3인 게임이었습니다.

그 분(다이브다이스의 대화명을 빌어 이하 “차님”이라 호칭)은 처음 접하는 게임이라시기에 간단히 설명을 하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게임을 처음 할 때 겪는 어려움, 즉, 외부 분쟁과 내부 분쟁을 헷갈려 하시더군요. 덕분에 게임 초반부터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저와 제 연인은 두 분쟁의 차이를 알려드리기 위해, 그리고 차님은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마디로 분쟁 러쉬였습니다. 세 진영의 각 지도자들은, 설사 환자 화장실 들락거리듯, 보드 판을 들락거려야 했고, 영토를 키워나갈 틈도 없이 숱한 타일들이 분쟁 해결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게임 종료 조건이 2가지가 있는데, 보통 거대 국가 탄생(게임 내 유물 잔존 개수 조건)으로 끝이 났던 이 게임이, 타일이 바닥나서 끝나더군요. 아직 유물이 많이 남았었는데…. 조용히 키워 먹는 건 저나, 제 연인이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기도 했지만, 초반부터 분쟁러쉬가 계속되다 보니, 사실상 전쟁게임이 되더군요. 제가 제 연인을 1점차로 제치고 1등. 차님은 한 종류의 타일을 전혀 모으지 못하시는 바람에, 유물만으로 3점. 뭐 첫 게임은 아픔으로 배우시는 거니까.... 핫핫~ (애써 [설명하고 1등 하기]였다는 것을 감추려는 웃음)

게임 끝나니까 배가 고파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시간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낸 제 친구가 아직도 도착을 안 했었습니다. 그래서, 잠깐 맛보기로 6Nimmt!를 한 라운드만 돌려보았습니다. 친구가 오면 황소 뿔의 춤 5인 게임으로 돌리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지요.

9시가 훨씬 넘어 도착한 친구 커플과 함께 우선 식사를 했습니다. 비X XXX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돈까스였지요. 핫핫~ 식사도 하고, 차도 한 잔씩 하면서 잠깐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5인 멤버를 갖추었기에 바로 전에 연습했던 6Nimmt!의 보드게임 버전인 황소 뿔의 춤을 꺼내 들었습니다.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지만,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함으로써, 재미를 배가시킨 게임이지요.

차 님의 초반 독주가 두드러졌습니다. 알다시피 이 게임은 점수 트랙에서 독주한다는 의미가 꼴찌를 의미하지요. 하지만, 뭐든 앞서나가면 좋은 걸로 교육받은 우리네 교육문화 속에서 이 게임은 꼴찌를 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 게임에서 숱한 꼴찌를 했지만, 끝나고 나서도 독주했다는 묘한 뿌듯함을 느꼈…. 쿨럭~

저는 운이 너무 잘 따라줘서 10점을 채 못 나갔습니다. 게다가 해피 카우로 뒷걸음질까지 하는 바람에 나머지 4분과 너무 동떨어졌습니다. 완전 순위권 제외! (다른 말로 1등 예약. 이 게임도 설명 담당이었는데… --;;;;)

초 반은 차님의 독주와 친구 연인의 견제(?), 중위권의 제 연인, 좀체 움직이지 않는 저와 제 친구의 형국이었는데, 중반 이후, 친구 커플이 동반 질주를 시작하더군요. 한 칸 차이로 바싹 추격한 친구 연인, 그리고 5칸 내외로 거리를 두고 추격전을 펼치는 제 친구. 이들의 치열한 레이스(?)덕분에 저희 커플은 왠지 도토리 신세가 된 듯한….

마지막 라운드는 누가 벌점을 먹느냐에 따라 1등이 가려지는 안개 정국으로 펼쳐집니다. 결국 막판에 황소똥(최종 점수칸)에 박힌 건 친구 연인이었습니다. 원래 여기서 게임이 끝나야 하지만, 그 라운드에 공개된 타일들은 모두 배치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친구는 아예 추월해버린 거 아니겠습니까? 헐~ 결국 초반 독주하셨던 차님은, 친구 커플에게 모두 추월 당해서 3등으로 마감하셨습니다. 저와 제 연인이 나란히 1, 2등.

이 게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게임 종료조건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점수조건이고, 하나는 타일 고갈입니다. 중간까지 진행되는 모습을 보니, 대충 타일로 끝이 날 것 같더군요. 타일 고갈 속도가 꽤 빨랐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게임은 점수로 끝이 났지요. 그 이유가…?

친구 연인이 버려야 하는 타일들을 다시 타일 바구니에 넣고 있었던 겁니다. -_-; 중간에 이렇게 묻더군요.

“어? 저기 게임 박스에 버려진 타일들은 뭐야?”
(일동) “…….”

그녀는 타일을 버린다는 것은 의당 타일 바구니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지요. 덕분에 게임이 never ending story가 될 뻔 했었답니다.

이어진 게임은 보난자였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에 익숙치 않은 친구 커플을 상대로 하려다보니, 전략게임은 내어놓기가 어렵더군요. 보난자도 높은 게임성을 가진 게임인데, 평소 돌려보기 힘들었던 터라 오히려 반갑긴 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차님의 진가가 발휘되더군요. 인생의 연륜과 재치가 듬뿍 묻어나는 협상 스킬. 이경규씨가 “인생은 로비야~!”라고 말을 했는데, 역시 인생 경험이 풍부하신 분의 협상은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여기저기 박장대소(拍掌大笑)가 터졌습니다. 중간중간 1등 견제를 위해 게임을 조율하신 차님 덕분에 모두 1점차로 옹기종기 게임을 마쳤습니다. (또 제가 1등… -_-;;;)

친구 커플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3인 게임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차님이 토레스를 원하셔서 신판 토레스를 꺼냈습니다. 차님은 구판으로 소유하고 계시다더군요. 그러고보니, “신판 토레스의 성으로는 몇 층까지 쌓아봤어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8층까지 올려봤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니, “게임에서 말고, 그냥 쌓는거요. 저는 80여 개를 넘어가니까 중심이 안 잡히더군요.” -_-; 저도 아직 그건 해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한번 해봐야겠어요. 보드게임 규칙서에 안나오는 새로운 게임이 하나 나올 것 같지요?

이번 3인 토레스는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해본 토레스는, 주로 연인과의 2인 게임이었고, 3인 토레스는 지난 번 비X XXX님과의 게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X형 XXX님의 경우 그 게임이 첫 게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테스트 플레이의 성격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X 스XX님께 그날 졌단 말이죠. 허억~) 그런데 차님은 부인되시는 분과 자주 돌리셨다고 하시더군요. 다시 말해 저로서는 베테랑과 진행하는 첫 토레스 게임이었던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현란한 플레이가 펼쳐지더군요. 제가 토레스를 하면서 “이거 참 조잔한 게임이다.”라는 말을 했었거든요. 이유인 즉, 자기가 열심히 쌓은 성에는 남이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를 해야 하고, 남이 쌓아놓은 성에는 열심히 무임승차를 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하는 게임이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 플레이를 아주 현란하게 하신 분이 바로 차님이셨습니다. 제가 기반을 닦은 성에 무임승차를 하신 것도 모자라서, 제가 더 이상 층수를 못 올리게 막아버리시더군요. 물론 본인은 왕창 키우고 말이지요. 첫 라운드에 그렇게 당하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아~ 이게 바로 토레스의 정수구나. 사람들이 왜 이 게임에 환장을 하는지 알겠다.’ 이후부터는 내가 점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점수를 못 먹게 방해하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저와 제 연인은 서로가 태클 플레이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차님의 플레이에 비하면, 요조숙녀 플레이였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라운드에서 제가 선두를 치고 나갔습니다. 치고 나갔다는 표현도 우습네요. 2라운드 점수 계산했을 때는 차님과 2점 차이 밖에 안 났으니까 말이지요. 파워그리드만큼은 아니지만, 토레스에서 먼저 차례를 가지는 것은 그리 유리하지 않습니다. 뒤집힐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계속 박빙의 선두를 유지할 때는 더더욱 그렇지요. 제 연인은 1~2라운드 점수 계산할 당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2파전이었습니다. 아니 2파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을 높이는데 주력했고, 차님은 마스터카드의 보너스 점수에 주력했습니다. 마스터카드의 보너스 조건이 모든 기사들이 서로 인접해 있는 경우 40점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차님의 모든 기사들은 한 곳에 옹기종기 모이고 있었지요. 게다가 왕이 주는 보너스까지 차곡차곡 챙기셔서, 3라운드 점수 계산했을 때, 결국 저를 1점차로 제쳤습니다. 7층짜리 성으로 달아나려고 했지만, 왕 보너스를 챙길 수 없었던 것이 치명타였지요. 그런데 1등은 제 연인이 차지했습니다. (허걱~!) 왕 보너스를 챙겼고, 제가 높여놓은 성에 무임승차를 했고, 그 성의 바닥면적을 넓히면서 여러 성에서 점수를 획득하는 작전으로 나갔던 것이지요. 처음 이 작전에 최대 수혜자가 제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차님은, 이 게임을 제가 이길 경우 부부사기단의 업적일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전혀 의외의 상대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졸지에 저는 꼴찌가 되었네요.

최종 점수! 검은 색에 본인... -_-;

자신이 1등임을 알리는 저 거만한 손가락~!

다시금 느끼지만, 걸작입니다. 게임을 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일전에 이 게임에 대한 평가를 내렸던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더군요. 아직 이 게임의 정수를 다 맛보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죠.

이어진 게임은 알함브라였 습니다. 게임 구매 러쉬 초기에 들어왔던 녀석이라 꽤 자주 돌렸었는데, 한동안 못 찾았던 녀석이지요. 본판이 모두에게 익숙한 게임이라 확장 1번 가운데 [고관의 부탁]을 넣어서 진행했습니다. 결과론이지만, [고관의 부탁]은 인원이 많을 때 더 빛을 발했을 것 같네요.

저희 커플은 주로 2인 게임을 많이 해왔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타일에 금액을 정확히 맞추어서 지불하려고 합니다. 원하는 타일을 무리해서 구매해야 할 필요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카드 장전에 주력하는 스타일인데, 차님은 외벽 중시 스타일이더군요. 필요한 외벽이다 싶으면,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구매해오곤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더군요. 외벽 점수는 가장 긴 사람만 차지하게 된다고 알고 계셨던 겁니다. 에러였던 것이지요. 여담이지만, 차님의 자택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만 정식 규칙보다 훨씬 빡빡한 에러로 진행하는 줄 알았었는데, 차님의 집에서는 훨씬 더 각박(!)한 하우스룰이 적용되고 있더군요.
어쨌거나 덕분에 첫 번째 점수계산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셨었는데, 총알 소진이 심한 탓에, 중반 이후 조금씩 밀리고 계셨습니다. 제 경우는 외벽도 꽤 길게 만들었지만, 고급 건물에 주력했습니다. 탑이나 정원 같이 높은 점수를 주는 타일을 모으고 있었지요. 덕분에 같은 타일에 주력하던 제 연인이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말렸습니다. 최종 순위는 저-차님-제 연인.

알함브라를 끝내고 나니까 시간이 4시 정도 되었습니다. 게임을 더 하고 싶었는데, 차님이 지금 안 가시면 졸음운전의 위험이 있으시다면서 모임을 끝냈습니다.

모 임이라고 해봐야, 번개 형식이었기 때문에, 조촐한 3인 게임 위주로 돌아갔지만, 새로이 열정적인 분을 알게 되어서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그 분”을 잘 설득해서 가급적이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려 합니다. 이렇게 게임을 사이에 놓고 사람과 마주 앉는 시간이 너무 즐거우니까 말이죠.

p.s. 경황이 없어서 사진은 또 토레스밖에 못 찍었네요. 아니면 토레스가 끝났을 때 가장 예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핫핫~

보드 위에 그린 세상 - 3. 보드게이머 A씨의 하루

<프롤로그>

0-1. A씨는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드게이머이다. 프로게이머는 프로겠지만, 보드게이머는 보드가 아니다. -_-;


0-2. B씨는 PC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PC게이머이다. 프로게이머는 프로겠지만, PC게이머는 PC가 아니다. -_-;


1-1. A씨는 즐겨 찾는 보드게임 쇼핑몰에서 신작 출시 소식을 접했다. 그 신작의 가격은 8만원에서 1천원이 빠지는 금액

“음~ 이 회사의 구성물은 실하기로 유명하지. 그래. 이 회사 제품이라면 이 정도 금액은 타당해.”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신용카드를 긁었다. (카드가 가려웠나 보다. -_-;)


1-2. B씨는 즐겨 찾는 PC게임 사이트에서 신작 출시 소식을 접했다. 그 신작의 가격은 3만원에서 2천원이 빠지는 금액

“에이~ 뭐가 이렇게 비싸? 이 회사는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거야?”

그는 망설임 없이 와레즈를 뒤졌다.


2-1. A씨가 구입한 게임에는 두툼한 영문 설명서가 들어있었다. 구성물, 게임목적, 준비, 진행, 게임 종료, 점수 계산, 변형룰 등….

그는 망설임 없이 영한사전을 뒤져 번역을 시작했다. (영문 규칙이 들어있는 게 어디냐는 듯이…)


2-2. B씨가 다운받은 게임은, 원래 구입할 경우 조촐한 한글 설명서가 들어있다. 게임 사양, 조작방법 등…. 그리고 다운 받은 게임을 설치하고 나면, 파일로 된 전자 설명서를 읽겠느냐는 물음이 뜬다.

그는 망설임 없이 “아니오”를 클릭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3-1. A씨가 구입한 게임에는 카드에 영문이 빼곡히 적혀있다. 토익 점수 900점을 상회하는 그에게 그 정도 영문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기와 마주 앉아 게임을 돌리는 친구 C와 D를 떠올렸다. 친구C는 몰라도 친구D는 영문이라면 알러지를 일으키는 인물.

“그래. 게임은 함께 하는 거야.”

그는 망설임 없이 자와 칼, 풀을 동반한 한글화를 시작한다.


3-2. B씨가 구입한 게임은, 캐릭터들이 육성을 통해 게임을 진행한다. 정확한 영어 발음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지만, 한국의 게이머들을 위해 자막처리가 되어있다.

“에이~ 무슨 게임을 꼬부랑말을 들으면서 해? 이 회사는 더빙도 안해주나?”

그는 망설임 없이 “음성 음소거”를 클릭했다. -_-;


4-1. 마침내 A씨는 규칙 번역과 카드 한글화를 마쳤다. 게임이 하고 싶어진 그는, 전화로 친구 C와 D를 불렀다. 오늘은 다행히 그들이 시간이 비었나 보다.

한 시간 여를 기다리자 친구들이 도착했다. A씨는 자리에 앉아 게임을 준비하고(30분), 게임에 대해 설명을 했다. (30분) 게임을 하기로 맘 먹은지 두 시간만에 시작한 그들의 게임은 약 3시간 여의 플레이타임을 기록하고 끝이 났다. 그들은 지퍼백을 이용해 게임 구성물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집어넣었다. (10분) 도합 5시간 10분.


4-2. B씨는 오늘도 게임 생각이 나서 PC앞에 앉았다. B씨는 PC를 켜고 게임을 시작했다.(5분) 한 시간 여를 게임에 열중한 B씨. 슬슬 손가락이 아파질 무렵 그는 게임을 종료하고 PC를 껐다. (20초) 도합 1시간 5분 20초


5-1. A씨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옥션에서 카지노 칩을, 방산시장에서 카드 슬리브를, 지물포점에서 무광 시트지를, 천원 하우스에서 구성물 보관용 플라스틱 함을, 팬시점에서 카드 보관용 종이박스를 구입했다.

그는 지금 문구점에서 구입한 아크릴로 다이스 타워를 손수 제작하고 있다.


5-2. 3개월 전 PC를 업그레이드 한 B씨. 그는 오늘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PC게임을 하고 있다.


6-1. 며칠 뒤 A씨는 즐겨 찾는 쇼핑몰에 새로운 신작이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통장 잔고를 살핀 후, 한숨을 내쉰 A씨

그는 지금 커뮤니티 중고장터란에, 자신이 애써 한글화하고, 슬리브를 씌워서, 지퍼백으로 정리한 게임들을 팔려고 명단 정리 중이다. (구매 자금 마련을 위해…)


6-2. 며칠 뒤 B씨는 즐겨 찾는 PC게임 사이트에서 새로운 신작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가격을 살핀 후, 한바탕 투덜거린 B씨

그는 지금 와레즈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다.


7-1. 지난 에센에서 새로운 게임이 소개되었음을 알고, 가슴 두근거렸던 A씨. 그러나, 그 게임의 출판사는 소량만을 출판하기로 유명한 회사였고, 발매 후 며칠 만에 품절되어 버려서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지금 e-bay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다.


7-2. 지난 E3쇼에서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었음을 알고 가슴 두근거렸던 B씨. 그러나, 그 게임 회사는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는 수익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 한국에서는 출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해외 와레즈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다.


<에필로그>
위에 적은 A씨는 제가 아닙니다. 물론 B씨도 아니구요. A씨는 주변에 열성적인 보드게이머를 모델로 삼아 가상으로 만든 인물이며, B씨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모델로 했습니다.

문득 생각이 든 사실이지만,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보드게임은, 같은 게임이라는 점에서 항상 비교대상일 수 밖에 없는 PC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이며, 인원의 제한이 있으며, 언어의 장벽도 스스로 넘어야만 합니다. 그것도 번역과 포토샵질과 컬러프린팅 및 재단(?) 등의 엄청난 수고로움을 요구하는 한글화를 통해서 말이지요.

게다가, 게임을 돌리기 위해서는 규칙을 공부해야 합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설명을 졸면서 들었던 사람조차도, 누군가가 게임을 설명할 때는 눈빛을 빛내며 듣습니다. 아니 심지어 스스로 규칙서를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게임을 공부하며, 때론 누군가에게 가르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해가 잘 안가는 규칙은 질문과 답변 게시판을 이용하거나, 게임 출판사 홈페이지의 FAQ를 뒤적거리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만 하는 보드게임인데도, 구매를 위해 망설임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지금껏 100개를 넘지 않는 저렴한(!) PC게임 구매 개수에 비해, 보드게임은 300개를 훌쩍 넘긴 저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드게이머들은 유희를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의 유희를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속에서, 보드게이머들은 돋보이는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유쾌한가 봅니다.

오늘도 저는 사람들과 만나 게임을 하게 되는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