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소개] Portrayal

Protrayal(묘사)라는 게임은 주어진 그림에 대한 묘사를 듣고 그림을 그리는 게임입니다.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묘사를 하고, 그림을 그렸는지를 평가하여 승자를 가리지요. 일견 픽셔너리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픽셔너리가 언어→그림→언어의 구조라면, [묘사]는 그림→언어→그림이라는 차이가 있겠네요. 아무래도 이 구조적인 차이 때문에, 더 구체적인 능력(언어 능력, 분석 및 해석 능력, 표현 능력 등)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인원이 좀 더 경쟁적으로 게임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요소들은 교육적 활용의 측면에서도 고려해봄직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작자도 그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었더군요.

[구성물]
구성물은 간단합니다. 10면체 주사위, 120여장의 그림 카드와 그보다 훨씬 많은 채점지들, 그리고 필기구와 제한시간 체크용 전자기기가 구성물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워낙 카드와 채점지가 많아서 게임 자체는 묵직합니다. 제한 시간 체크용 전자기기에는 수은전지가 들어가며, 2가지 모드가 있는 것 같은 데, 둘 중 하나는 1분 30초짜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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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드게임긱(http://www.boardgamegeek.com/image/134573)]

[진행]

게임은 묘사자와 예술가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매 회전마다 한 명씩 묘사자를 번갈아가며 맡습니다.

묘사자는 그림과 평가 항목이 적힌 카드를 한 장 받습니다. 물론 평가 항목은 가려주는 봉투에 넣은 채로 말이죠. 이 그림은 묘사자만 볼 수 있고, 채점이 끝날 때까지도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출처: www.braincog.com]

제한시간 카운터를 누르면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이 때부터 묘사자는 열심히 받은 그림을 설명하고, 예술가들은 그 설명에 따라 그림을 그립니다.

제한 시간이 절반 정도 남으면 삐~ 소리가 한번 나고, 완전히 종료되면 삐삑~소리가 2~3회 울린 후 끝이 납니다.

제한 시간이 지나면,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채점지를 넘깁니다. 채점지에는 1~10번까지 항목이 있고, Y/N 항목에 표시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묘사자는 그림카드의 봉투를 벗기고 채점항목을 차근차근 읽어내려갑니다. 총 10개의 항목이 있으며, 이 중 한 가지는 ‘골든 크리테리아’라고 해서 가산점을 주는 항목이 됩니다. 이는 10면체 주사위를 굴려서 정하게 되지요.

각 항목별로 Yes에 체크를 하면 1점씩, 골든 크리테리아의 경우 3점을 획득합니다. 묘사자의 경우 Yes를 체크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면 해당 항목에 대해 1점씩 획득합니다.

모두가 동일 횟수로 묘사자를 맡게 되면, 게임이 끝이 납니다. 몇 번씩 묘사자를 맡게 될지는 참가자들이 정하는 겁니다. 끝난 시점에서 총점이 가장 높은 사람이 승리자가 됩니다.

[즐거움]

지난 설에 가볍게 맛보기로 돌려봤습니다. 제가 규칙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로 돌렸기 때문에 다소간의 어색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게임에서의 즐거움을 예상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우선 그림과 제목이 유쾌합니다. 적절한 패러디와 우화적인 그림들만으로 충분히 즐겁습니다.

또 한, 그림을 통해서 묘사해내야 하는 항목들이 꽤나 의외성을 띄고 있습니다. 가령, 주사바늘이 안테나보다 더 높아야 한다든지, 얼굴크기가 책보다 더 커야 한다든지 하는 등의 항목들은, 나중에 충분히 폭소를 유발시킬 것 같습니다. 알고 나면 나중에 긴장을 하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또 채점항목이 작렬하면 다시 폭소가 터지는 것이겠지요.

아울러 시간 제한이라는 요소 때문에 긴장감이 상당합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추상화가가 되는 동질감을 주는 것도 시간 제한이라는 요소 때문일 겁니다.

그 리고 채점이 다 끝나기 전까지는 원본 그림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폭소 유발 요소입니다. 상상력을 끝까지 끌어낸 시점에서 공개되는 원본 그림! 그림판에 그려진 추상화가 원본그림에 두 사람(묘사자+예술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결과라는 사실에 박장대소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렇듯, 의외성이 클수록 폭소 역시 정비례하는 법이지요.

[총평]

이러한 게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시스템 그 자체보다 즐기는 참가자에 의해 게임의 재미가 결정됩니다. 즐겁게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는 엔돌핀 생성제가 될 테지만, 무미건조한 참가자들에겐 어려운 게임이 되겠지요.

이 게임의 규칙서를 읽으면서 머릿속을 스친 것이 바로 교육적 활용입니다. 놀이문화가 부박한 한국 사회에서 연령과 성별을 초월하고, 그들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교육소재를 찾기가 꽤나 어려운데요. 이 게임은 꽤 괜찮은 대안이 될 것 같다는 겁니다. 제작사도 이를 인식하고 홍보에 활용하려는 듯이, 홈페이지에 학급에서의 활용 방안 자료를 올려두었더군요. 학년과 과목별로 기대효과와 토의 주제 및 방식 등을 상세히 적어두었습니다. 역시 맨 마지막에 교육할인도 있다는 문구를 잊지 않았구요.

처음 진행하다보면 대부분 추상화를 그리게 된다는 단점은 좀 있습니다만, 결국 득점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나면 약간씩 그림들은 개선이 될 것 같습니다. 즐거움과 미술에 대한 동기 유발적 효과도 있겠군요.

여 담이지만, 토익시험의 L/C를 보면, 그림에 적합/부적합한 문구를 선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서 요구하는 것은 짧은 시간동안 핵심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유추하는 능력인데, 이 게임은 그러한 능력과도 연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진주를 찾은 기분입니다. 인원 제한도 없고, 연령제한도 비교적 너그러우니, 자녀들이 있는 집안에서 꽤 의미있는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설 특선 추상화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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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Tom Vasel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날이라, 점심 먹고 의정부로 출발을 했다. Tom과의 만남에는 여기저기 얽힌 일화가 좀 있다. 우선, 지난번 What's it to Ya의 공동구매 때문에 메일을 주고받게 된 Mike Petty의 소개로 Tom이 먼저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이후로 일정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조금씩 어긋나서 거의 석 달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다시 Mike가 메일을 보내왔다. 내용인 즉, "너희, 아직도 안 만났냐?" 였다. 결국 나와 Tom의 만남이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았다.

물론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주변의 보드게임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모집했건만 역시나 불발탄. 아니 신청자는 있었지만, 이날 오전, 정확히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불발탄으로 판명이 났다. 수원에서부터 불참하는 아빠들을 대신해서 아기 엄마들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올 계획이던 리키마틴님이 아내의 급전을 받고 불발탄을 날렸던 것이다. 사실 이 내용을 이날 오전에 메신저를 통해 민샤님께 전달 받았고, 이후 나와 아내는 의정부로 출발한 것이었는데, 돌아와보니 상당한 오해가 누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오해에 몇 달동안 시달려온 나로서는 앞뒤 안 가리고 모든 채널을 닫아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지만,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아 정중한 해명글을 올렸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인간관계에 대해서 점차 자신이 없어지는 걸 느낀다. 정말 칩거에 들어가야할 것 같다.

어쨌든, 의정부까지 가서 Tom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큰 키에 상당한 덩치의 소유자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게다가 다섯 딸의 아버지였다. 집은 거의 촌구석에 있었고, 아주 좋은 집도 아니었지만, 넓이만큼은 상당했다. 게임 보관과 아이들 양육이라는 조건에는 적당한 조건이랄까.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Tom은 나와 같은 나이였다. 나보다 불과 2개월 정도 생일이 빠르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느냐고 묻자, 나더러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다. (음? 뭘?)

예상대로 엄청난 소장품, 그리고 학교 사무실에도 만만치 않은 소장품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상당수의 게임들은 리뷰를 부탁하는 제작자들 덕분에 무료로 공급받는다고 했다. 하긴 그는 개인의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보드게임긱, Funagaindice tower라는 인터넷 방송까지, 보드게임 분석가로서 상당히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정도 특전(?)은 누릴만 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소장품 구경에 정신이 팔린 동안, 아내는 Tom의 아이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한국 아이들이라면 으례히 할 것 같은 낯가림도 이 아이들에겐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 같다. 우스개지만, 아이들이 아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것 같다.

가볍게 한 게임을 하기로 해서, Power Grid를 선택했다. 이번에 출시된 새로운 발전소 카드덱을 사용하기로 했다. Tom에 말에 따르면 발전소가 좀 더 강력해졌고, 확장 게임을 위한 발전소도 추가되었다고 한다. Tom과 그의 아내, 그리고 우리 부부 내외까지 4인 게임으로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 때문에 신경이 분산되는 것 같아서, 내가 좀 서둘러서 종료조건을 만들어버렸다. 내가 다음 라운드 발전에 필요한 자원까지 모두 사놓은 상황인지라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Tom이 적잖게 당황하는 기색이다. 하긴 그는 내 덕분에 그 게임에서 꼴지가 되어버렸다. 본인은 3등이었고, 아내가 1등을 차지했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고군분투했던 Tom의 아내는 2등을 차지했다.

피자로 저녁식사를 해결한 우리는, 아이들이 제법 큰데도, 게임에서는 소외시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애들도 할 수 있는 게임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Tom이 보관장에서 애들용 게임을 몇 개 집어왔는데, 게임 자체는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는 것들이지만, 아이들이 즐거워 하는 걸 보니 우리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다섯 아이의 아버지인 Tom은 왠지 좀 아이들이 성가신가보다. 흘흘~ 하긴 나 같아도 매일 다섯 자매들에게 시달린다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게임을 마치자, 아이들이 갑자기 일제히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아내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모양이다. Tom 일가가 슬슬 피곤할 것 같아서 작별을 고하고 귀가길에 나섰다. 그런데 때마침 설 연휴의 시작이라 하행길이 지독한 정체에 거렸다. 약 60여 킬로미터의 거리이고, 길의 대부분이 고속도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의정부로 갈 때는 1시간 정도 밖에 안 걸렸는데, 귀가길에는 무려 3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역시 전날과 마찬가지로 귀가와 함께 우리 둘 모두 뻗어버렸다.
늦은 오전이 되어서 잠에서 깨어난 우리는, 가벼운, 그러나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MANN님으로부터 한니발:로마 vs. 카르타고의 설명을 들었는데, 너무 매력적인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특히 역사를 테마로 하는 전쟁 게임의 경우,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지만 추상화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추상화가 많이 진행될 수록 테마는 옅어지는 대신 시스템의 균형을 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고(예: 바둑, 장기), 반면 추상화가 적게 진행될 수록 테마는 진하게 반영되겠지만, 균형잡힌 시스템을 구현하기 힘들어진다. 사실 전쟁이라는 것이 균형잡힌 양자간에 진행된 적이 거의 없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를 테마로 한 게임에서 결론까지 역사적 결과와 동일하게 만든다면, 누가 게임을 하려 들겠는가? 어쨌든 간에 테마와 시스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언제나 게임 디자이너에게 큰 숙제건만, 이 게임은 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설명만 들은 시점에서 조금 성급한 감은 있지만, 게임에는 역사적 사실이 비교적 듬뿍 담겨있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장수들의 특수 능력, 지형과 부족의 특징,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따른 특수성(아프리카누스의 등장 같은..) 등이 게임의 사실성을 충분히 살려준다. 게다가 로마와 카르타고가 비교적 팽팽한 상황전개를 보인다는 점에서 시스템의 균형 역시 잘 잡힌 듯 하다. 한동안 로마사에 몰입했던 나로서는 충분히 흥분할만한 게임이다. 하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일단 2인 게임인 한니발: 로마 vs. 카르타고는 접어야 했다.

3인 게임은 은근히 게임을 고르기 애매하다. 아내는 ALEA의 명작들, 특히 플로렌스의 제후를 간절히 원했지만, 3인 게임은 2인 게임만도 못하다는 세간의 평 때문에 채택되지 못했다.

전날 손님방, 즉 게임이 잔뜩 진열된 방에서 잠을 청한 MANN님은 사실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 평소 궁금했던 게임들의 규칙서를 읽어보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데, 그 덕분에 배우게 된 게임이 하나 있다. 바로 로마제국을 기독교 제국으로 만든 유스티아누스 황제에서 이름을 딴 레오 콜로비니의 [Justinian]이 그것인데, 사실 테마와는 크게 상관없는 줄서기 게임이다. 아마도 로마의 역대 황제들과는 달리 동양의 절대 군주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는 유스티아누스의 이미지만 차용한 듯 싶다. 말하자면 길어지지만, 결론적으로 유스티아누스 황제에게 누가 더 강한 연줄을 대느냐 하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3인 게임이 너무 심심하다. 3명 가운데 1~2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나머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세력 관계의 판도를 뒤집을 수가 없다. 게임 인원이 3~4인 전용이라고는 하지만, 4인 게임에서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5~6인은 되어야 좀 활발한 세력 이동이 생기지 않을까? 어쨌거나 세력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상태라면, 처음에 뽑아온 카드의 운이 클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세력 판도 변경 결정시기를 정하는 사람이 중요해지므로, 더더욱 세력 이동은 경직될 것이다. 어쨌거나 3인 게임으로서의 이 게임의 가치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MANN님이 독어 독해 능력이 출중한 덕분에 생각치도 않은 게임을 배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겠지만, 다시금 한번 살펴봐야 할 정도로 좀 헛점이 보이는 게임이었다. 레오 콜로비니와 팔랑스의 화려한 구성물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첫 인상이었으니 말이다.

뭔가 게임을 더 한 것 같은데, 기억 나는 건 이 정도다. MANN님의 여자친구인 뮤님의 호출로 MANN님이 급히 복귀를 하면서 이 날의 모임은 끝이 났다. 이 때가 대략 오후 5시 경.

내일 미국 대사관에 가야 하는데, 대사관에는 주차시설이 없다고 한다. 광화문 일대에서 주차하기가 그리 녹록치 않을테고, 인근 종로 구청이나, 세종 문화회관도 살인적인 주차요금을 받는 곳들. 한참 인터넷으로 주차 가능 시설을 뒤져본 결과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여행으로 탄력받은 우리는 주변의 보드게임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M.T.를 획책해보기로 했으나, 아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어서 무산되었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추진하는 것도 생각해보았으나, 내 주변 보드게임 애호가들은 여유를 사랑하는 이들임과 더불어, 적극적인 호응까지도 절제(?)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어서, 장시간 신청을 받았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는 지난 1년여 동안 해외 공동구매를 추진하면서 깨달은 바, 화끈하게 단기간 추진으로 반응을 살펴본 것인데, 역시나 좀 성급했던 것 같다. 게다가 아내의 방학은 설 연휴와 함께 끝이 난다. 이로써 매 휴가철마다 단체 여행 및 M.T.에 대해 품었던 계획은 구상단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무산된 셈이다. 앞으로 수년간은 이같은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마침 MANN님이 방문의사를 갑자기 밝혀서 토요일 모임을 갖게 되었다. 본래 M.T.를 가려고 생각한 날이라 다른 이들에겐 예고를 한 바 없는 번개가 되었지만, 그래도 몇 명은 참석을 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역시 내 헛된 기대였음이 곧 드러났다. 모임 참석자는 MANN님이 유일했다.

아내가 보드게임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고, 모임주관이 갈수록 피곤함을 더해주고 있던 터라, 사전 예고를 통한 모임은 사실 상 우리 집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거듭된 졸속 번개형 모임은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내가 주관하는 공동구매도 끊어진 상황이니 거리도 먼 이 곳을, 더 이상 사람들이 찾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연이은 번개 초대에 대해 다소간의 불만을 표현한 이도 있었으니, 이 또한 본인이 초래한 일이라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한국과의 인연은 몇 가닥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모든 게임이 3인게임으로 진행된 이 날의 모임은 기실 몇 게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아내가 MANN님을 부르면서 "밤샘도 가능!"이라고 호기롭게 외쳤으나, 정작 밤샘을 각오하고 온 MANN님이나, 아내는 물론, 나까지도 이제 밤샘은 무리인 것 같다. 새벽 1시를 기점으로 모두들 기력 소진의 증세가 역력해서, 다음 날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MANN님은 손님방에서 자리를 마련해드렸다.

p.s. 시간이 좀 흘러서 기록을 남기려다보니 무슨 게임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그리콜라와 BRASS는 한 것 같은데, 다른 게임은 영 기억이...
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나갔다. 그것도 버스로...

그런데, 나가려고 준비하다보니 이것저것 꼬이는 게 많다. mp3p가 말썽을 부렸고, 대신해서 휴대전화에 mp3를 넣었더니, dcf로 변환하지 않아서 재생이 안되는 거였다. 결국 pda에 넣었던 "비밀번호 486"만 실컷 들으면서 서울에 들어갔다.

그나저나,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하는 게 내가 잘못된 것일까? 하긴 아내도 멀미를 호소하는 걸 보니, 우리가 그동안 버스를 안타긴 했나보다. 하지만, 멀미를 안해도 좋을만큼 편안하게 운전하는 버스를 한국에서 타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보다.

도착한 곳은 강변역. 테크노마트 지하에 위치한 뉴욕식 중화요리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사실 아내가 원했던 곳이기도 했다. 좀 웃기는 건, 미국에서는 중화요리는 거의 패스트푸드 수준의 값싼 식사인데, 여기선 비슷한 걸 먹으려면 꽤 돈을 챙겨가야만 한다. 적어도 외식비만큼은 미국을 앞지르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걸 앞지를 것이지...

우리 부부가 데이트라고 하면 뭐 별 게 없다. 음식점이나 카페, 또는 서점이나 옷가게가 거의 갈 수 있는 장소의 전부이다. 간혹 공원 산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식사 후 아내는 옷가게를, 나는 서점으로 향했다. 서로 헤어져서 각자 원하는 걸 하는 데이트다. 내가 옷가게에 따라가면 무척이나 지루해하고 피곤해 하기 때문에 오랜 경험에서 나온 하나의 방책이다.

아내가 옷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닌데, 길을 가다가 옷가게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모양이다. 이날도 한참을 둘러보고 입어보고 하더니 결국 빈손으로 돌아나왔다. 이런 걸 보면, 돈을 좀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식사 중에 보드엠에서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흘렸는데, 아내가 흔쾌히 가자고 말한다. 물론 실제로 가게 된 건 아내의 승락이 있은 후로부터 거의 3~4시간이 흐른 뒤였다.

보드엠에는 MANN님이 먼저 와 있었다. 사실 토요일에 시간이 난다고 거의 일주일 전에 연락을 주었는데, 사정상 보류를 했었다. 마침 서울 나들이 행선지에 보드엠이 추가되자 곧바로 연락을 넣었고, MANN님은 보드엠에 도착한 상태였다.

너무 느즈막이 도착한 터라, 한 게임 정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Brass를 원했고, 아그리콜라에 푸욱 빠져있는 아내는 마침 세팅이 막 끝난 아그리콜라에 참여하길 원했다.

이날의 Brass는 지난번의 사소한 오류를 잡은 이후로 처음인 완전한 컨디션의 게임이 되었다. 사실 Brass는 처음 하는 사람이 감을 잡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게임인지라, 함께 했던 또지니님과 보드엠 사장님께 너무 큰 점수차로 이겨버렸다. 그래도 두 분 모두 100점을 가뿐히 넘겼기 때문에 다음 기회엔 호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Brass는 한 번 정도 해야지만 감을 잡는 게임인데 말이다.

날이 많이 추워졌다. 배도 고프고 해서 음식점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돌아다닌 후에야 작은 분식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살다보면 참 기분이 안 좋은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상황이었다. 아주 배고픈 상황에서 맛없고 양많은 음식을 먹은 경우. 그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겪게 되어서 이 날의 마무리는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동생이 매제와 함께 집을 찾아왔다. 백일을 넘긴 조카와 함께.

지난 주부터 찾아오겠다고 계속 졸라댔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어서 이제야 오게 되었다. 오자마자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로 봐서 어지간히 게임에 대해 목말랐던 모양이다.

최근에 아내와 내가 찾아내서 많이 사랑해주고 있는 이구복(利口福) 칼국수 집에서 만두 전골로 점심을 해결했다. 조카인 예은이는 볼 때마다 부쩍 자라났음을 실감할 정도로 무서운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아직 아기일 뿐이지만,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꽤나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느낌이다. 울기도 울지만, 웃기도 또 얼마나 잘 웃는지... 사실 예전에는 아이들이 꽤 많이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조카 외에는 그다지 많이 웃는 아이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혈육이라 달리 보이는 걸까?

동생 내외에게 첫 게임으로 요즘 밀고 있는 아그리콜라를 선보였다. 카드를 배제한 가족게임으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전까지의 게임에서 곧잘 따라오는 모습을 보이길래, 아내가 과감하게 선택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단번에 감을 잡기엔 조금 어려웠던 모양이다.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을 하니까, 동생은 지루해하는 티를 낸다. 매제는 바로 이해한 듯 하며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게임을 시작하니까, 역시 어려워한다.

사실 아그리콜라는 규칙의 간단함과 명료함에 비해, 게임의 난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가족을 먹여살린다는 절체 절명의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풍요로운 삶을 꾸려나가기엔 너무나도 행동의 제약이 크다. 그래도 게임이 중반 이후에 접어들자 얼추 감을 잡았는지, 동생이 갑자기 질주를 시작한다. 최종 결과에서 동생이 2위, 매제가 4위를 차지했다.

아내의 경우 타이트하게 견제하는 세력이 없어서 다소 느슨하게 농장을 운영한 모양이다. 동생에게까지 밀린 3위... 동생이 조카 예은이에게 젖을 물리느라고 게임이 하염없이 늘어지는 바람에 본인 역시 집중하기 힘들었으니, 단기간 집중해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성격의 아내가 게임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2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게임을 4시간 넘게 진행한 나머지, 다음 게임으로는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줄로레토를 선택했다. 역시 짦막한 설명과 직관적인 게임 진행에 동생 내외 역시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연거푸 두 차례에 걸쳐 게임을 진행했다.

본인이 계속 1등을 차지해서 좀 머쓱해졌지만, 동생 내외는, 우리 부부의 순위는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고, 오직 자기들간의 대결에만 집중하고 있다. 간혹 부부싸움하고 씩씩거리며 전화하던 동생인지라, 오히려 저렇게 게임 순위를 가지고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이긴 한다.

정오부터 시작된 모임이 어느덧 저녁 9시에 다다르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줄로레또를 하면서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게임에 대한 갈망이 큰 동생 내외는 한 게임 더~를 외친다. 좀 집중할 수 있는 게임으로 다빈치 코드를 선택했다. 역시 쉽게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게임이라 연거푸 두 게임이 돌아간다.

게임을 마치고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를 얼른 싸매고 귀가하는 동생. 애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가지고 왔던 카메라와 포토프린터도 두고 갔다. 내일 어머니께서 찾아오신다는데, 그 편에 전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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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발림님이 거래차 광주에 들르시는 길에 전심님을 대동하고 방문을 했다. 참새들이 방앗간에서 참을 수 있겠는가. 게임판이 조촐하지만,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 날의 후기는 사탕발림님이 카페에 올리신 글로 대신한다.



지난(2007년) 에센 신작 가운데 유이하게 구매한 게임이 아그리콜라와 Brass인데, 둘 다 구매를 잘 했다는 생각이다.

아직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구할 wish list는 다음과 같다.

Sorted by Priority

Amyitis Priority: Shop! | Remove

TZAAR Priority: Shop! | Remove

In the Year of the Dragon
Alternate names:
L'Année du Dragon
Im Jahr des Drachen
Priority: Shop! | Remove

Key Harvest
Alternate names:
Demetra
Priority: Shop! | Remove


아내의 제자들이 2주 전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왔다.

침착하고 생각이 깊은 학생, 그리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학생, 무슨 말을 해도 웃고 있는 학생이 각각 한 명씩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 번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먹성들을 자랑했다. :)

이날 돌아간 게임들은 다음과 같다.

Ubongo
Gemblo
For Sale
Coloretto
Elfenland
Bohnanza

이날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학생 덕에 분위기는 다소 부산했지만, 달라진 사제간의 모습을 보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스승은 아직도 한참 어려운 존재인 나로서는, 아내 앞에서 소주가 맛있네, 맥주가 맛있네라며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생소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권위주의와 절대적 교권이 군국주의적 잔재의 영향이라는 생각에 본인 역시 개선의 필요를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그러한 의식을 갖지 않은 학생들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권위주의와 절대적 교권의 빈 자리를 아직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우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울러, 즐거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일인지도 재확인했다. 보드게임을 통한 인성과 지식 교육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길에 3명이 걸어가면, 그 중 한 명은 나의 스승이라는 말처럼, 만나는 모든 이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있는 요즈음이다. 아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운 하루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내와 그녀의 제자들.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얼굴을 가리고, 옷과 목도리를 잔뜩 두른다. 휴대전화로는 실컷 자기 사진을 찍어대는 아이들이 말이다.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승부욕에 불타 3연속 게임을 내달린 아내에게 3연패라는 결정타를 안기고 만 것이다. 그것도 "이번에도 지면 다시 게임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임한 마지막 게임에서 본인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아내를 패퇴시킨 것이다.


안녕~ 아그리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