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으로 탄력받은 우리는 주변의 보드게임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M.T.를 획책해보기로 했으나, 아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어서 무산되었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추진하는 것도 생각해보았으나, 내 주변 보드게임 애호가들은 여유를 사랑하는 이들임과 더불어, 적극적인 호응까지도 절제(?)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어서, 장시간 신청을 받았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는 지난 1년여 동안 해외 공동구매를 추진하면서 깨달은 바, 화끈하게 단기간 추진으로 반응을 살펴본 것인데, 역시나 좀 성급했던 것 같다. 게다가 아내의 방학은 설 연휴와 함께 끝이 난다. 이로써 매 휴가철마다 단체 여행 및 M.T.에 대해 품었던 계획은 구상단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무산된 셈이다. 앞으로 수년간은 이같은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마침 MANN님이 방문의사를 갑자기 밝혀서 토요일 모임을 갖게 되었다. 본래 M.T.를 가려고 생각한 날이라 다른 이들에겐 예고를 한 바 없는 번개가 되었지만, 그래도 몇 명은 참석을 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역시 내 헛된 기대였음이 곧 드러났다. 모임 참석자는 MANN님이 유일했다.

아내가 보드게임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고, 모임주관이 갈수록 피곤함을 더해주고 있던 터라, 사전 예고를 통한 모임은 사실 상 우리 집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거듭된 졸속 번개형 모임은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내가 주관하는 공동구매도 끊어진 상황이니 거리도 먼 이 곳을, 더 이상 사람들이 찾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연이은 번개 초대에 대해 다소간의 불만을 표현한 이도 있었으니, 이 또한 본인이 초래한 일이라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한국과의 인연은 몇 가닥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모든 게임이 3인게임으로 진행된 이 날의 모임은 기실 몇 게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아내가 MANN님을 부르면서 "밤샘도 가능!"이라고 호기롭게 외쳤으나, 정작 밤샘을 각오하고 온 MANN님이나, 아내는 물론, 나까지도 이제 밤샘은 무리인 것 같다. 새벽 1시를 기점으로 모두들 기력 소진의 증세가 역력해서, 다음 날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MANN님은 손님방에서 자리를 마련해드렸다.

p.s. 시간이 좀 흘러서 기록을 남기려다보니 무슨 게임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그리콜라와 BRASS는 한 것 같은데, 다른 게임은 영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