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매제와 함께 집을 찾아왔다. 백일을 넘긴 조카와 함께.

지난 주부터 찾아오겠다고 계속 졸라댔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어서 이제야 오게 되었다. 오자마자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로 봐서 어지간히 게임에 대해 목말랐던 모양이다.

최근에 아내와 내가 찾아내서 많이 사랑해주고 있는 이구복(利口福) 칼국수 집에서 만두 전골로 점심을 해결했다. 조카인 예은이는 볼 때마다 부쩍 자라났음을 실감할 정도로 무서운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아직 아기일 뿐이지만,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꽤나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느낌이다. 울기도 울지만, 웃기도 또 얼마나 잘 웃는지... 사실 예전에는 아이들이 꽤 많이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조카 외에는 그다지 많이 웃는 아이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혈육이라 달리 보이는 걸까?

동생 내외에게 첫 게임으로 요즘 밀고 있는 아그리콜라를 선보였다. 카드를 배제한 가족게임으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전까지의 게임에서 곧잘 따라오는 모습을 보이길래, 아내가 과감하게 선택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단번에 감을 잡기엔 조금 어려웠던 모양이다.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을 하니까, 동생은 지루해하는 티를 낸다. 매제는 바로 이해한 듯 하며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게임을 시작하니까, 역시 어려워한다.

사실 아그리콜라는 규칙의 간단함과 명료함에 비해, 게임의 난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가족을 먹여살린다는 절체 절명의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풍요로운 삶을 꾸려나가기엔 너무나도 행동의 제약이 크다. 그래도 게임이 중반 이후에 접어들자 얼추 감을 잡았는지, 동생이 갑자기 질주를 시작한다. 최종 결과에서 동생이 2위, 매제가 4위를 차지했다.

아내의 경우 타이트하게 견제하는 세력이 없어서 다소 느슨하게 농장을 운영한 모양이다. 동생에게까지 밀린 3위... 동생이 조카 예은이에게 젖을 물리느라고 게임이 하염없이 늘어지는 바람에 본인 역시 집중하기 힘들었으니, 단기간 집중해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성격의 아내가 게임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2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게임을 4시간 넘게 진행한 나머지, 다음 게임으로는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줄로레토를 선택했다. 역시 짦막한 설명과 직관적인 게임 진행에 동생 내외 역시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연거푸 두 차례에 걸쳐 게임을 진행했다.

본인이 계속 1등을 차지해서 좀 머쓱해졌지만, 동생 내외는, 우리 부부의 순위는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고, 오직 자기들간의 대결에만 집중하고 있다. 간혹 부부싸움하고 씩씩거리며 전화하던 동생인지라, 오히려 저렇게 게임 순위를 가지고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이긴 한다.

정오부터 시작된 모임이 어느덧 저녁 9시에 다다르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줄로레또를 하면서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게임에 대한 갈망이 큰 동생 내외는 한 게임 더~를 외친다. 좀 집중할 수 있는 게임으로 다빈치 코드를 선택했다. 역시 쉽게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게임이라 연거푸 두 게임이 돌아간다.

게임을 마치고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를 얼른 싸매고 귀가하는 동생. 애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가지고 왔던 카메라와 포토프린터도 두고 갔다. 내일 어머니께서 찾아오신다는데, 그 편에 전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