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위에 그린 세상 4. “Newguman, where are you?”




1. Polarity라는 게임은 독특한 게임이다. 종이물고기에 클립을 끼우고, 막대자석이나 말굽자석으로 낚시대를 만들어 놀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자석 놀이 게임….

이 게임의 디자이너는 Douglas Seaton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확히는 이 사람이 만든 건 아니다. 이런 게임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이 D.Seaton이고, 이 사람에게 이 모티브를 전해 받고, 이를 게임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그가 이 모티브의 제공자인 Seaton에게, 디자이너의 영예를 전한 것이다.



독특한 게임성에 독특한 배경을 지녔고, 독특하게 생긴 천통에 담긴 독특한 재질의 게임. 그런데, 이 게임의 겉에는 더욱 독특한 문구가 쓰여져 있다.



“Douglas Seaton, where are you?(더글라스 시튼씨, 당신 어디에 있소?)”

그에게서 모티브를 받고 게임을 만들었지만, 이 게임이 세상의 빛을 볼 때에 그는 행방이 묘연한 것이었다. 그를 애타게 찾는 저 문구. 이후에 그가 이 문구를 게임에 삽입함으로써 D.Seaton을 찾았는지 매우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2. 이 게임은 개인적으로도 독특한 배경을 지녔다. 그 사람의 골방에서 게임을 전수 받고, 어렵사리 다이브다이스를 통해 공동구매를 추진하여 손에 넣은 게임. 하지만, 이 게임을 전수해준 이는, 2005년 11월의 마지막 만남 이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항상 웃음 띤 얼굴로, 익살과 재치로 모든 게임에 재미를 불어넣던 그 사람. 

바로 거만이님이었다.

3. 그전에도 거만이님과의 만남은 그리 자주 있지 않았었다. 일산모임에서 스치듯이 만난 첫 인연은, 첫 배움의 [증기의 시대(Age of steam)]가 너무나 지독하고 골치 아파서 그의 게임에서의 인상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다만, [오스트라콘]에서 보여준 그의 재치와 익살 정도가 큰 웃음을 안겼기에,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라는 느낌만 받았지만,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재치 있는 언변을 보였기에, 그다지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좋은 인상으로 시작된 인연이었기에, 두 번째의 만남이 기약되었던 모양이다. 잠실, 당시 페이퍼이야기 본사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재치와 익살로 좌중을 압도해나갔다. 당시 함께 자리했던 이들이 게임하는 것도 제쳐두고 수다로 서너 시간을 보냈던 기억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기연(奇緣)이었던 당시의 만남은, 필자의 보드게임에 소중한 인연이 되어 현재까지도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4.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곳은 그의 자취방이었다. 그와 필자를 포함한 5인방이 그의 자취방에 모여 몇 가지 게임을 돌렸는데, 이른 바 골방 게임 모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자취방은, 필자가 당시로부터 불과 1년 전에 머무르던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다. 그로 인해, 그도 필자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후,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된 모임이었다.

그 때 느낀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그곳에서 비로소 필자는 그의 진가를 볼 수 있었다. 특유의 느긋한 어조와 빙긋이 웃는 얼굴로 게임들을 소개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달관자를 연상케 했다. 그가 속한 곳은 빡빡한 일정과, 동료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숨통을 죄어오는 경쟁사회. 그 속에서 그러한 달관자의 모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기에 필자는 그의 모습에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필자가, 그에게 그날 처음 소개받았던 [Polarity]에 매료되었던 것도, 그의 달관자같은 설명이 워낙 독특했기 때문이리라.

그의 스타일은 이후의 게임인 [카멜롯에 드리운 그림자(Shadows over Camelot)]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무엇을 해도 여유가 넘치는 그의 플레이스타일은, 설명을 하던 그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면서 마치 신선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로 인해 게임 상에서 배신자가 아니냐 하는 오해를 샀고, 실제로 게임 속에서 고발까지 당해야만 했지만….

5. 이후 본인의 자택으로 초대해서 한 차례 더 만남을 가졌지만, 그는 그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간간히 다이브다이스에 나타나서 짧은 글을 남겼지만, 여전히 그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는 없었다. 

여행을 다닌다든지, 어딘가에 취직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종적이 묘연한 그의 모습에서, 골방에서 느꼈던 달관자 내지는 신선같은 느낌이 떠올랐다.

어쩌면 구름처럼 세상을 주유하는 그를 찾는 것이 어리석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그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그만의 방식으로 보드 위에 달관자의 삶을 투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외쳐본다.

“Newguman, where are you?”

p.s. Newguman은 거만이님의 e-mail ID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