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일찍 잠이 든 덕분에 좀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날도 춥고 해서, 콘도의 조식을 먹은 후로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방안의 따뜻함을 만끽하게 되었다. 어째 여행을 떠나도 집에서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하다.
12시까지 체크아웃을 해야 하기에 11시를 조금 넘긴 시점에 숙소를 나섰다. 호텔과는 달리 숙소를 정돈하고 점검을 받아야 한다길래 꽤 신경써서 정리를 했는데, 아무도 점검하러 오지 않았다.
단양까지 와서 8경 구경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콘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고수동굴을 찾았지만, 싸구려 상술냄새가 풀풀 나는 관광지 특유의 촌경에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다. 정말 흔쾌히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초긴축 여행, 일명 거지투어로 미국을 일주하던 때에도 어지간한 곳은 무료로 열어둬서 관광객의 호기심을 충분히 유발시킨 후, 결정적인 순간에 관광객의 돈 지출을 요구하는 그들의 상술에 큰 유혹을 느꼈었던 본인으로서는, 좀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냥 어떻게든 발을 디딘 이들의 푼돈이라도 긁어보려는 모습에 그냥 발길을 돌리게 된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여기에 써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터무니 없는 유람선의 가격도 그렇고, 관광지 근처에 가기도 전부터 엄청난 주차요금을 물리는 통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버렸다. 여러가지 모습에서 후진국의 행태를 찾을 수 있는 한국이지만, 관광이라는 측면에서도 후진국임을 다시금 깨닫고 조용히 귀로를 택했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즐겨도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애써 찾아온 이들을 축객하는지...
단양에 나타난 백곰 두 마리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제천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해서, 잠시 제천으로 핸들을 돌렸다. 만두와 갈비탕을 합친 만갈탕이 참 맛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이곳을 찾은 건 그녀가 대학생이었을 무렵. 그녀의 기억만을 의존하고 찾아간 나머지 꽤나 빙빙 돌아야 했다. 그리고 힘들여 찾은 곳은 겨울방학을 맞아 휴업중. 설이 끝나면 다시 영업을 한다고 해서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서야 했다.
그래서 아내가 예전에 찾았었던 음식점 가운데 그럭저럭 만만한 두부마을을 찾아갔다. 무난한 맛이라 그럭저럭 배를 채우고 인근 호수에서 얼음낚시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갔다. 제천시장이 경고문을 걸어두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이들이 빙어를 낚고 있었다. 조그만 낚싯대로 연신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작은 빙어들을 낚아올리는 데, 처음엔 좀 신기하게 보다가, 낚시란 가장 합법적인 속임수라는 만화 타짜의 문구가 떠올라서 약간 씁쓸해졌다. 하긴 인간이 인간을 속이는 것도 그다지 큰 죄가 되지 않은 정글 같은 곳에서,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는 인간이 가장 아랫단계나 다름없는 물고기를 속여서 잡는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돌아오는 길에 마침 리키마틴님이 한 게임 하자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아내도 나도 먼 여정의 피곤한 몸이라 어렵겠다는 회신을 보내고 귀가를 했다.
항상 여행을 다녀오면 하는 이야기지만, 역시 집이 최고다.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나고 싶어하겠지. 후후~
아내의 겨울방학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 되었지만, 변변한 여행 한 번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결국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2주 전부터 벼르고 별러서 간 것이었는데, 결국 다른 동행인은 만들지 못했고, 우리 둘만의 여행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아내를 만난 이후로 부모님을 모신 가족여행 외엔 모두 우리 둘만의 여행이었다. 역시 결혼하게 되면 그렇게 되는 걸까?
애초 예정지는 백암온천이었으나, 교통의 불편함으로 인해 자동차를 몰고 가야 했는데, 편도 4시간 여가 걸리는 거리인지라, 단양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단양8경으로 유명한 단양은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볼 거리가 많아서 사람들이 꽤 붐빈다고 했다. 겨울은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꽤 고급 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머무를 수 있었다. 우리 두 부부가 1박 하는 비용이, 조식과 수중테마파크 이용 비용을 포함해서 86,000원이었으니 평소 정가대로라면 상상하기 힘든 가격이다.
숙소는 콘도 내에서도 꽤나 전망이 좋은 13층이었다. 마침 우리가 오기 얼마전에 눈이 내렸는지, 창밖에서 바라본 설경이 제법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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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을 풀고, 우선 아쿠아월드로 향했다. 식사를 막 하고 출발을 한 데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간식을 좀 먹은지라, 식사는 생략했다.
아쿠아 월드는 아산 스파비스나 캐리비언베이 실내풀과 비슷한 구조의 수중 테마 파크인데, 노천탕도 갖추고 있어서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사실 머리가 뜨거운 상태로 오래 있는 게 꽤나 힘들어서리, 사우나 같은 곳에도 오래 있지 않는다. 중간중간 찬물로 샤워를 해줘서 머리를 식혀주지 않는 한.
사람들은 많지 않아서 오히려 한산함 마저 느낄 수 있었다. 중간중간 월풀과 같은 특수 장치들을 곳곳에 해두었기 때문에 오랜시간 있어도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아내도 역시 누군가와 함께 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3~4시간 여동안 아쿠아월드에서 시간을 보내고, 콘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어지간한 특급 호텔에 버금가는 시설들이 많았고, 상당한 규모의 연회장도 여럿 갖추고 있었다. 개인이 회원으로 가지고 있기에는 부담되는 게 콘도지만, 중급 이상의 업체라면 이런 콘도 하나 정도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하에 슈퍼마켓에서 저녁거리를 좀 구매했다. 쌀과 김치 등은 집에서 가져왔지만, 역시 밖에 나와서는 색다른 게 먹고 싶은 법. 하지만, 음주가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콘도의 지하 슈퍼마켓은 큰 선택의 폭을 제공하진 않았다. 가장 큰 부스를 차지하고 있는 게 술과 안주거리라니...
재미있는 것은 보드게임 부스였다. 화투와 카드 등과 더불어 보드게임도 제법 큰 규모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종류와 수준 역시 상당한 정도였다. 이런 슈퍼마켓 등에서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게임을 찾을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드게임이 있으면 항상 눈길부터 간다.
고민끝에 냉동 부대찌개를 선택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냉장고와 인탁션레인지 등 취사에 관한 전반적인 기기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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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다보니, 아내가 먼저 M.T.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우리가 묵은 방은 기본 5인 최대 7인이 묵을 수 있는 숙소이며, 5인까지는 추가 비용없이 묵을 수 있는 곳이다보니, M.T.로도 제격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테이블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보드게임 멤버들과의 M.T.는 제법 솔깃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숙소의 욕실
욕실도 완비되어 있었고, 침실이 두 곳이라 여럿이 묵어도 괜찮았다.
침실 1
침실 2, 이곳에는 침대가 있다.
침실 1은 사용을 안했고, 침대는 있었지만, 따뜻한 온돌이 좋아서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잤다. 5명이 사용할 공간을 우리 두 사람만 사용하려니 한참 여유가 있었다.
아내와 저녁시간을 보내기 위해 2인용 게임을 몇 가지 가져왔지만, 이것도 여행이라고 좀 피곤했는지,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금방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하나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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