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 호주] 후기

무려 1년 하고도 5개월의 공백을 깨고 드디어 18XX가 돌아갔습니다. 각자의 생활전선에서 눈물나는 사투를 벌이던 철도의 역군들이, 철로 한 칸이라도 더 놓아보겠다며 눈내리는 영하의 서울 거리를 헤맨 끝에 이뤄낸 쾌거입니다. 비록 반환점도 미처 돌지 못한 채 아쉬움의 폐막을 해야했지만, 간만에 느껴볼 수 있는 명작의 향취였습니다. 이 감동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기엔 아까운 나머지 졸필이나마 몇 자 적어봅니다.

1. 작가

올해 에센에 신작을 무려 3개, 그것도 모두 18XX로만 출판한 사람이 있습니다. Helmut Ohley는 일전에도 Leonhard Orgler와 손을 잡고 수 편의 18XX를 만든 바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회사,Double-O Games에서의 2010년 신작, [1880: 중국]뿐만 아니라, Lookout Games를 통해 [Poseidon]과 [Railroad Barons]를 18XX팬들에게 선보였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데다, 주문을 받으면 그 때부터 제작을 시작하는, 그래서 주문하면 1년 이상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모 회사의 게임들과는 달리 나름 대량생산(?) 후에 판매를 하고 있어서, 저로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득템할 수 있는 게임이었지요.

어쨌거나, 2007년작인 [1848:호주]를 손에 넣은 건 2009년 초. 거의 2년 가까운 기다림의 끝에 돌아가게 된 셈이네요. 그의 나머지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짧은 게임이라고 합니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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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드게임긱)

게임의 배경은 호주입니다. 드넓은 대륙이지만, 중요 거점들이 넓직하게 떨어져있어서 그런지 지도는 A3 사이즈로 아담하네요.

지도는 해안/산악/사막의 3종류 4구획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8XX에서 구획을 나눈 지도를 쓰는 게임은, 제가 해본 바로는 이 게임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단순한 시각적 용도 뿐만 아니라 게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3. 특징

일반적인 18XX, 특히 거의 모든 시리즈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1830과의 비교를 안해볼 수 없겠지요. 긱에서도 이를 따로 문서화한 사람이 있습니다. 두드러진 부분만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사기업의 경매가 Dutch Auction입니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경매 방식을 취하는데, 1848에서는 가격이 점차 떨어지는 방식이며, 전술한 문서를 작성한 긱유저는 “아마도 정가에 대부분 팔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만, 3인 게임이라 그런지, 가격은 꽤 떨어진 상태에서 구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어쨌거나, 나쁘지 않은 경매 방식이었고, 특히 함께 제공된 경매 차트 덕분에 더욱 깔끔함이 돋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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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판

게임 중간 시점의 각종 현황판(주가 차트 / 증서 차트 / 시대 차트 등)

게임 중간 시점의 각종 현황판(주가 차트 / 증서 차트 / 시대 차트 등)

또한, 국유화가 있습니다. 1861에서도 이와 같은 요소는 있었는데, 국유화의 주체가 러시아 국영철도였던 1861과는 달리, 1848에서는 국유화의 주체가 영국은행(Bank of England)입니다. 따라서, 돈이라는 요소에 의해 국유화가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18XX에서, 주식회사들이 자사 주식의 가격 상승을 위해 꾸준히 배당을 하다보면, 정작 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한 시점이 옵니다. 운영자금을 챙기기 위해서는 배당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 경우 회사 주가가 하락한다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따라서 이렇게 회사들이 어쩔 수 없이 주춤하는 타이밍을 잘 포착해서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18XX의 묘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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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몬드 님의 상황

그런데, 1848에서는 부족한 운영자금을 메우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대출입니다. 각 회사는 매 경영 라운드마다 100파운드씩, 총 500파운드의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대출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갚을 필요도, 이자도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대출은 주가를 무려 2칸이나 하락시키고, 반복된 하락의 끝에는 국유화의 아픔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히 잘 쓰면 주주에게 꾸준히 배당금을 안겨주면서도 경영자금을 챙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겠더군요.

아울러, 지도가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바, 각 구획을 넘어갈 경우에는 일정한 제약이 붙습니다. 자신의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철로를 놓을 것인가를 계산하고, 그에 맞춰서 구획을 넘어갈 수 있는 열차를 마련하는 재미(?)가 추가되었지요.

4. 게임 진행

게임은 저와 알몬드님, 수풀에돌님의 3인 게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사기업 경매는 느긋한 수풀에돌님과 알몬드님의 성정덕분인지, 꽤 가격이 떨어질 기세였습니다. 결국 조급함에 먼저 구매를 서두른 건 저였고, 가장 많은 돈을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CAR의 경영자 증서를 제공하는, P6의 사기업을 구매한 기세를 몰아 초장부터 CAR을 출범시켰고, 모두가 분위기에 편승한 덕분에 가장 먼저 품절남, 아니 상종가를 친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알몬드님이 뒤이어 회사를 출범시키셨고, 에돌님은 두 회사의 차대주주로서 초반 게임을 관망하시는 듯 했지요.

하지만....

CAR은 Central Australian Railway의 줄임말, 호주 대륙의 중부라면.... 사!막! (쿨럭~) CAR은 험난한 사막 한 가운데를 홀로(!!) 개척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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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간 종료 시점의 지도 현황

반면, 동부 해안가의 Brisbane을 근거지로 삼은 알몬드님의 QR은, 주변의 도시들을 발판 삼아 해안가를 따라 시드니로 철로를 연결해 나아갔고, 곧이어 Canberra를 근거지로 삼은 수풀에돌님의 FT와 함께 동남부 해안을 착실하게 다져나갔습니다. 이어서 알몬드님이 출범시킨 회사도 Sydney를 근거지로 삼는 회사인지라, 그 지역은 아주 오밀조밀 하더군요. 지금도 호주의 주요 도시들은 그곳에 몰려있는데, 게임도 현실처럼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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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에돌님의 상황

두 사람, 아니 세 개 회사가 철로를 쓸어가는 통에, CAR과 뒤늦게 출범한 SAR(여기도 사막이 근거지!!)는 정작 철로가 없어서 발전을 못하는 넌센스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무려 2개의 칸이 초록색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게 되어, 이 두 회사가 공유하는 철도는 소위 말하는 “변비 철도”, “동맥 경화 철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한 차례 경영 라운드의 수익이 다른 회사들은 200~300파운드에 달할 때도, SAR의 경우는 70~80파운드의 빈약한 수익만을 낼 수 있었지요. 이 회사의 운명을 예민하게 감지한 수풀에돌님과 알몬드님은, SAR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구매하시지 않더군요. 덕분에 먹튀도 할 수 없게 되어서 매우 난감했습니다.

슬슬 SAR이 대출을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감지한 두 분은 영국 은행의 주식을 사모으기 시작합니다. 영국은행은, 주식회사에 대출해주는 횟수에 비례하여 주가가 상승하며, 흡수하는 회사가 늘어나면 배당금도 상승합니다. 동료 회사의 경영난을 보며, 한 몫 챙기겠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도 뒤늦게 한 주를 구입했지만, 이미 두 분은 각각 50%, 40%의 지분을 챙긴 뒤였습니다.

저와 알몬드님은 2개씩의 회사를 경영하는 상태이고, 수풀에돌님은 유망한 각각의 회사에 차대주주인 상태. 슬슬 고성능 차량의 등장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경영자들은 각 회사간의 순환출자로 경영 안정을 꾀하느냐, 아니면 과감한 회사 처분 후 달아나는 방식을 택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고, 서로간의 눈치 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려는 찰나... 아쉽게도 시간 사정상 게임을 접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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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상황

게임의 백미가 다가오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매우 아쉬웠지만, 심야에는 대중교통의 운행이 정지되는, 불가사의한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이기에, 눈물을 머금고 게임을 접었습니다.

중간 정산 결과 근소한 차이로 제가 1등, 알몬드님이 2등, 수풀에돌님이 3등을 차지했습니다만, 사실 별 의미는 없습니다. 한 번의 먹튀로 뒤집히고도 남을 간격들이었으니 말이지요.

5. 총평

BGG의 유저들이 남긴 평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훌륭한 18XX 시리즈의 하나입니다. (11월 30일 현재 유저 평점 8.09) 크지 않은 지도지만, 충분한 변조가 가해져서 단조롭지 않았고, 대출과 국유화 등의 요소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게임이 충분히 진행되었더라면, 중-후반부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게임 구성물의 시각화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소규모 인원과,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게임이라고 평하고 싶네요.

간만의 게임으로 모두가 흥분된 상태였습니다만, 며칠 뒤에 다시 모일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아마도 다음 철도작업(!)은 이번 금요일이 될 것 같습니다. 참석하는 인원수에 따라서 시리즈의 종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게임이 되었든 18XX의 모든 게임은 지금까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까, 기대가 됩니다.
세계 최대의 보드게임 축제인 Essen Spiel 2010에 다녀왔습니다. 행사는 21~24일이었지만, 앞 뒤로 하루씩 더해서 20~25일까지 머물렀습니다.

일단 사진들은 Facebook에 올렸습니다. 링크로 대신합니다.

http://www.facebook.com/album.php?aid=69974&id=1151672372&l=87c59f003e

http://www.facebook.com/album.php?aid=69975&id=1151672372&l=ada3ef88b1



어제 저녁 비행기로 베를린으로 돌아왔고, 이제 막 사진 정리를 마쳤습니다. 아직은 여독이 좀 남아있네요.

그래도 기억이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몇 자 남겨보도록 할게요.

요즘은 블로그보다 더 발달한 SNS 때문에 자주 이용은 안 하지만, 정보 공유 겸 잊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간단히 포스팅한다.

1. White Goblin의 게임 4(+1) 종 세트 선주문

http://www.whitegoblingames.nl/en/spiel-preorder.html

Cavum과 Carson City로 내게 눈도장을 찍은 네덜란드 회사 QWG. Quined Games와 White Goblin Games가 2006년 합쳐서 결성한 회사라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White Goblin Games의 이름으로 게임을 내어 놓았다. 일단 로고는 QWG와 White Goblin이 같으니 동일 회사라고 봐야할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본래 Inca Empire는 구매 예정작이었는데, 묶음 판매 가격이 너무 매력적이라, 다른 게임의 구매 여부를 두고 매우 고민중이다.

2. 7 Wonders 선주문

http://www.rprod.be/en/accueil.html

여기저기 review와 preview를 통해 기대치가 올라가고 있는 7 Wonders의 선주문 링크. 777 카피 에센 한정판을 선주문하며, 링크는 9월 15일 자정(서부 유럽 표준시 CEST(GMT +1) 기준)에 열린다고 한다. 왠지 한정판이라는 글귀에 마음이 흔들리는데...

3. Irongames 선주문

http://www.irongames.de/onlineshop-eu/

지난 해 에센에서 Peloponnes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Irongames에서 다시 고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출시. 그런데 가격이 좀 부담된다. 선주문 가격이 35유로... 아무리 Peloponnes의 확장을 끼워준다고 하지만, 가격 때문에 망설여진다.

4. 1880 China 예약

http://ohley.de/1880-China/index.html

올 해 에센에서 무려 3개의 18XX를 선보이는 Helmut Ohley. 2개는 Lookout을 통해, 나머지 1개를 자신의 홈페이지인 위 링크를 통해 발매한다. 18XX 답게 다양한 옵션으로 구매가 가능하지만, 가장 저렴한 기본버전으로도 무려 39유로의 고가!!

룩아웃에서 작년에 나온 1853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다른 2개의 18XX 게임 역시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할 것 같은데...


관심작 선주문 링크는 현재까지 위와 같다. 추가되는 대로 더 추가할 계획이다.




2010/03/21 - [Boardgame/Train Game (18xx)] - [다시 보기] 1825 Unit 3 - Part 1

3. 게임 특징

2인 게임이다보니 등장하는 회사의 수가 적고, 배경이 되는 지도가 아담합니다. 사기업이 3개, 대형 주식회사가 3개, 소형 주식회사가 3개 등장합니다.

3개의 사기업 가운데 2개는 게임 시작할 때 임의로 분배하므로, 3개의 사기업을 독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 번재 사기업부터 구매 대상이 되는데, 이 가격이 대형 주식회사의 경영자 주식 가격(일반 주식의 2배)에 해당하므로, 사기업 2개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불리할 것도 없더군요. 사기업은 매 경영 회전(Operation Round)마다 일정 수익을 벌어다 주는 것 외엔 특이점은 없습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폐쇄되는 것도 아니고, 대형 주식회사에 인수되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사기업을 적게 가진 게임 참가자는 게임을 빨리 끝내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아야 하겠군요.

회사는 총 주식의 60%가 팔려야 출범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18XX 시리즈와 같습니다만, 한 사람이 보유할 수 있는 한 회사의 주식 한계가 없습니다. (1830 기준 60%) 내키기만 하다면 100% 사들여서 사기업처럼 굴릴 수도 있습니다.

등장하는 회사들도 순서가 있습니다. 후반기에 등장하는 소형 주식회사들은 기지 정류장(Base Staion)을 추가로 지을 수가 없지만, 특수 열차들을 출범과 동시에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기존 회사들이 깔아놓은 선로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2인 게임에서 후반에 등장하는 회사마저 기존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주식 거래하는 건 번잡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이 회사들의 증서는 단 넉 장 뿐입니다. 40%짜리 경영자 주식 증서 한 장과 20%짜리 일반 주식 증서 석 장씩. 이들 회사들의 출발 장소가 지도에 명기되어있지 않아서 잠시 헤맸었는데, 추가 지도 조각(!)이 동봉되어있더군요. 단일 게임에서도 조립형 보드를 제공하는 게임입니다.

주식 시장은 1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르거나 내리거나 하는 것이 직선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다른 18XX의 상당수는 2차원적으로 되어있어서, 시세표 상에서 상하좌우의 이동이 발생합니다.) 1825년이 배경이다보니 아무래도 1870년의 나름대로 고도화된 주식 시장과 동일한 시장을 갖는다는 것이 다소 모순된 것이겠지요. 또한 주식 거래 회전 때는 주식의 시세가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경영 수익을 배당했느냐, 배당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주식 시세가 변합니다.

이렇게 보면 기존 18XX에 비해 오직 규칙들을 빼기만 한 것 같지만, 더한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배당금의 액수에 따라 주식 시세의 변동폭이 정해진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시리즈들이 배당하면 한 칸 상승, 배당하지 않으면 한 칸 하락, 거기에 조금 더 추가한 게임들은, 수익의 반만 배당하면서 시세를 유지했지만, 1825에서는 배당금이 많으면 그만큼 시세 상승폭이 커집니다. 현재 주식 시세를 기준으로 2배 이상의 금액을 배당하면 2칸, 3배 이상의 금액을 배당하면 3칸 상승하는 식입니다. 이 때문에 자금 축적을 위해 수 차례 배당을 하지 않다가도, 한 번의 거액 배당으로 시세를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열차의 등장으로 구분되는 단계는 총 3단계. 각각의 단계는 3짜리 열차, 5짜리 열차가 팔리면서 열리는데, 5짜리 열차가 팔리면서 열리는 제3단계는 조금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18XX에서 열차의 구매는 순차적입니다. 한 번에 두 종류의 열차가 구매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지요. 1825도 제1, 제2단계에서의 열차구매는 이와 같지만, 제3단계가 열리면 모든 열차가 구매 가능해집니다. 이 때 등장하는 U3, 3T와 같은 특수 열차를 이용하면 독특한 전략의 구상도 가능해집니다.

정리하면, 1825는 다른 시리즈에 비해 규칙이 많이 간소화되었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2인 게임의 특수성이기도 하겠고, 배경이 되는 1825년의 주식 시장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덕분에 게임 내내 규칙서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규칙 적용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타일 향상 흐름도(Tile-upgrade flow chart)정도만 가끔 쳐다보면 됩니다.
드디어, 숙원사업 하나를 풀었습니다. 아내와 1825 Unit 3을 돌려본 것이지요.

아아~ 가슴 벅찬 감동이, 게임을 중단한 지 6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비록 첫 플레이인데다, 오리지널 구성물로만 게임을 돌린터라, 시간 지연이 꽤 되었습니다. 게임 박스에는 2~4시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첫 게임에 그런 스피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BGG에서도 소요시간 때문에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한 사람이 있더군요. 자기는 4.5시간 걸렸는데, 아무리 첫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도저히 2시간대에 게임을 마칠 수는 없을 것 같다면서...

사실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 참가자의 초기 자금 액수를 늘리면, 게임 시간이 짧아진다고 설명되어있더군요. 어쨌거나 저희도 새벽 2시 경에 펼치기 시작한 게임을 6시가 되어서 중단했습니다. 물론 규칙서를 다시 익히느라 실질적 게임 시작 시각은 4시 경이었습니다만, 그다지 짧은 게임은 아니지요.



그 밖에 다른 구성물들도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크게 아쉽지도 않은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Mayfair나 JKLM, Hans im Glück에서 만든 게임들보다는 좀 열악합니다만, 대부분의 18XX들이 개인 출판물임을 감안할 때는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2월 13일, 월요일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초야에 은거하는 백면서생이라 찾아주는 이도 없기에, 덩달아 제 전화기도 캔디(외로워도~ 슬퍼도~)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왠 낯선 번호가 뜨더군요. 의아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한 통의 전화. 그 전화로 인해 즐거운 인연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다이브다이스에서 눈팅을 주로 하신다는 그 분은 통화 내내 정중하고, 교양있는 태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춘추가 제법 되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참 인생 선배셨습니다.

통화 내용은 간단했지만, 저로서는 당황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의 골자는 “당신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소~.”였으니까요.

연애도 저돌적으로 해왔던 터라, 여성에게도 자주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하기는 많이 했지요. ^^; 하지만, 중년 남성으로부터 그 말을 듣고 나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요.

어 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18일 토요일에 깜짝 아지트 번개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변덕스러운 저희 커플의 일정 덕분에 모임은 당일날까지 불투명했고, 결국 단촐하게 제 친구 커플을 포함한 5명이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제 연인의 기분이 들쭉날쭉이라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쩝쩝~)

처음 뵌 분이시지만, 전화로 받은 인상 그대로시더군요. 다만, 호기심이 남다르셨습니다. 저 역시 호기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라, 만나서 대화를 나눈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서로 친해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호기심 못지 않게 열정도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제겐 낯 간지러운 이야기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만, 마치 스타에게 10대 소녀 팬이 품고 있음직한 열정을 중년까지도 간직하시고 계시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 부러웠습니다.

쑥스러움을 누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보드게임과 더불어 마주 앉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 화두였지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보드게임이라는 유희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의 공통된 갈증은, 바로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 보드게임을 매개로 연을 맺은 이들에게서 한가지로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그 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게임에 대한 갈증과, 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대단하셨습니다. 어쩌면 월요일의 전화 통화도 그 연장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만, 의아한 점은 저 같은 초보 게이머가 선택(?)된 점입니다. 게임에 대한 열정이라면, 절대로 뒤지지 않을 다이브다이스의 회원들이 즐비한데 말이지요. 어쩌면 저를 계기로 그런 분들을 만나고 싶으셨을 겁니다. 서울의 동부지역(상일동, 하남, 구리, 광주 등)에 의외로 보드게이머가 많은데, 때가 되면 정기적인 모임을 주관해봐야겠습니다.

각설탕 하나 먹고, 이날의 첫 게임으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를 선택했습니다.

이 게임은 묘하게 제게 3인 게임으로 남아있습니다. 2~4인까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3인일 때 가장 좋은 이유 때문일까요? 아직 2인, 4인 게임으로는 해보지 못하고 오직 3인 게임으로만 돌렸네요. 이 날 역시 아직 친구커플이 도착하지 않은 관계로, 3인 게임이었습니다.

그 분(다이브다이스의 대화명을 빌어 이하 “차님”이라 호칭)은 처음 접하는 게임이라시기에 간단히 설명을 하고,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게임을 처음 할 때 겪는 어려움, 즉, 외부 분쟁과 내부 분쟁을 헷갈려 하시더군요. 덕분에 게임 초반부터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저와 제 연인은 두 분쟁의 차이를 알려드리기 위해, 그리고 차님은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마디로 분쟁 러쉬였습니다. 세 진영의 각 지도자들은, 설사 환자 화장실 들락거리듯, 보드 판을 들락거려야 했고, 영토를 키워나갈 틈도 없이 숱한 타일들이 분쟁 해결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게임 종료 조건이 2가지가 있는데, 보통 거대 국가 탄생(게임 내 유물 잔존 개수 조건)으로 끝이 났던 이 게임이, 타일이 바닥나서 끝나더군요. 아직 유물이 많이 남았었는데…. 조용히 키워 먹는 건 저나, 제 연인이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기도 했지만, 초반부터 분쟁러쉬가 계속되다 보니, 사실상 전쟁게임이 되더군요. 제가 제 연인을 1점차로 제치고 1등. 차님은 한 종류의 타일을 전혀 모으지 못하시는 바람에, 유물만으로 3점. 뭐 첫 게임은 아픔으로 배우시는 거니까.... 핫핫~ (애써 [설명하고 1등 하기]였다는 것을 감추려는 웃음)

게임 끝나니까 배가 고파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시간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낸 제 친구가 아직도 도착을 안 했었습니다. 그래서, 잠깐 맛보기로 6Nimmt!를 한 라운드만 돌려보았습니다. 친구가 오면 황소 뿔의 춤 5인 게임으로 돌리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지요.

9시가 훨씬 넘어 도착한 친구 커플과 함께 우선 식사를 했습니다. 비X XXX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돈까스였지요. 핫핫~ 식사도 하고, 차도 한 잔씩 하면서 잠깐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5인 멤버를 갖추었기에 바로 전에 연습했던 6Nimmt!의 보드게임 버전인 황소 뿔의 춤을 꺼내 들었습니다.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지만,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함으로써, 재미를 배가시킨 게임이지요.

차 님의 초반 독주가 두드러졌습니다. 알다시피 이 게임은 점수 트랙에서 독주한다는 의미가 꼴찌를 의미하지요. 하지만, 뭐든 앞서나가면 좋은 걸로 교육받은 우리네 교육문화 속에서 이 게임은 꼴찌를 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 게임에서 숱한 꼴찌를 했지만, 끝나고 나서도 독주했다는 묘한 뿌듯함을 느꼈…. 쿨럭~

저는 운이 너무 잘 따라줘서 10점을 채 못 나갔습니다. 게다가 해피 카우로 뒷걸음질까지 하는 바람에 나머지 4분과 너무 동떨어졌습니다. 완전 순위권 제외! (다른 말로 1등 예약. 이 게임도 설명 담당이었는데… --;;;;)

초 반은 차님의 독주와 친구 연인의 견제(?), 중위권의 제 연인, 좀체 움직이지 않는 저와 제 친구의 형국이었는데, 중반 이후, 친구 커플이 동반 질주를 시작하더군요. 한 칸 차이로 바싹 추격한 친구 연인, 그리고 5칸 내외로 거리를 두고 추격전을 펼치는 제 친구. 이들의 치열한 레이스(?)덕분에 저희 커플은 왠지 도토리 신세가 된 듯한….

마지막 라운드는 누가 벌점을 먹느냐에 따라 1등이 가려지는 안개 정국으로 펼쳐집니다. 결국 막판에 황소똥(최종 점수칸)에 박힌 건 친구 연인이었습니다. 원래 여기서 게임이 끝나야 하지만, 그 라운드에 공개된 타일들은 모두 배치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친구는 아예 추월해버린 거 아니겠습니까? 헐~ 결국 초반 독주하셨던 차님은, 친구 커플에게 모두 추월 당해서 3등으로 마감하셨습니다. 저와 제 연인이 나란히 1, 2등.

이 게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게임 종료조건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점수조건이고, 하나는 타일 고갈입니다. 중간까지 진행되는 모습을 보니, 대충 타일로 끝이 날 것 같더군요. 타일 고갈 속도가 꽤 빨랐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게임은 점수로 끝이 났지요. 그 이유가…?

친구 연인이 버려야 하는 타일들을 다시 타일 바구니에 넣고 있었던 겁니다. -_-; 중간에 이렇게 묻더군요.

“어? 저기 게임 박스에 버려진 타일들은 뭐야?”
(일동) “…….”

그녀는 타일을 버린다는 것은 의당 타일 바구니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지요. 덕분에 게임이 never ending story가 될 뻔 했었답니다.

이어진 게임은 보난자였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에 익숙치 않은 친구 커플을 상대로 하려다보니, 전략게임은 내어놓기가 어렵더군요. 보난자도 높은 게임성을 가진 게임인데, 평소 돌려보기 힘들었던 터라 오히려 반갑긴 했습니다.

이 게임에서 차님의 진가가 발휘되더군요. 인생의 연륜과 재치가 듬뿍 묻어나는 협상 스킬. 이경규씨가 “인생은 로비야~!”라고 말을 했는데, 역시 인생 경험이 풍부하신 분의 협상은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여기저기 박장대소(拍掌大笑)가 터졌습니다. 중간중간 1등 견제를 위해 게임을 조율하신 차님 덕분에 모두 1점차로 옹기종기 게임을 마쳤습니다. (또 제가 1등… -_-;;;)

친구 커플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3인 게임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차님이 토레스를 원하셔서 신판 토레스를 꺼냈습니다. 차님은 구판으로 소유하고 계시다더군요. 그러고보니, “신판 토레스의 성으로는 몇 층까지 쌓아봤어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8층까지 올려봤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니, “게임에서 말고, 그냥 쌓는거요. 저는 80여 개를 넘어가니까 중심이 안 잡히더군요.” -_-; 저도 아직 그건 해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한번 해봐야겠어요. 보드게임 규칙서에 안나오는 새로운 게임이 하나 나올 것 같지요?

이번 3인 토레스는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해본 토레스는, 주로 연인과의 2인 게임이었고, 3인 토레스는 지난 번 비X XXX님과의 게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X형 XXX님의 경우 그 게임이 첫 게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테스트 플레이의 성격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X 스XX님께 그날 졌단 말이죠. 허억~) 그런데 차님은 부인되시는 분과 자주 돌리셨다고 하시더군요. 다시 말해 저로서는 베테랑과 진행하는 첫 토레스 게임이었던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현란한 플레이가 펼쳐지더군요. 제가 토레스를 하면서 “이거 참 조잔한 게임이다.”라는 말을 했었거든요. 이유인 즉, 자기가 열심히 쌓은 성에는 남이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를 해야 하고, 남이 쌓아놓은 성에는 열심히 무임승차를 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하는 게임이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 플레이를 아주 현란하게 하신 분이 바로 차님이셨습니다. 제가 기반을 닦은 성에 무임승차를 하신 것도 모자라서, 제가 더 이상 층수를 못 올리게 막아버리시더군요. 물론 본인은 왕창 키우고 말이지요. 첫 라운드에 그렇게 당하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아~ 이게 바로 토레스의 정수구나. 사람들이 왜 이 게임에 환장을 하는지 알겠다.’ 이후부터는 내가 점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점수를 못 먹게 방해하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저와 제 연인은 서로가 태클 플레이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차님의 플레이에 비하면, 요조숙녀 플레이였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라운드에서 제가 선두를 치고 나갔습니다. 치고 나갔다는 표현도 우습네요. 2라운드 점수 계산했을 때는 차님과 2점 차이 밖에 안 났으니까 말이지요. 파워그리드만큼은 아니지만, 토레스에서 먼저 차례를 가지는 것은 그리 유리하지 않습니다. 뒤집힐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계속 박빙의 선두를 유지할 때는 더더욱 그렇지요. 제 연인은 1~2라운드 점수 계산할 당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2파전이었습니다. 아니 2파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을 높이는데 주력했고, 차님은 마스터카드의 보너스 점수에 주력했습니다. 마스터카드의 보너스 조건이 모든 기사들이 서로 인접해 있는 경우 40점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차님의 모든 기사들은 한 곳에 옹기종기 모이고 있었지요. 게다가 왕이 주는 보너스까지 차곡차곡 챙기셔서, 3라운드 점수 계산했을 때, 결국 저를 1점차로 제쳤습니다. 7층짜리 성으로 달아나려고 했지만, 왕 보너스를 챙길 수 없었던 것이 치명타였지요. 그런데 1등은 제 연인이 차지했습니다. (허걱~!) 왕 보너스를 챙겼고, 제가 높여놓은 성에 무임승차를 했고, 그 성의 바닥면적을 넓히면서 여러 성에서 점수를 획득하는 작전으로 나갔던 것이지요. 처음 이 작전에 최대 수혜자가 제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차님은, 이 게임을 제가 이길 경우 부부사기단의 업적일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전혀 의외의 상대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졸지에 저는 꼴찌가 되었네요.

최종 점수! 검은 색에 본인... -_-;

자신이 1등임을 알리는 저 거만한 손가락~!

다시금 느끼지만, 걸작입니다. 게임을 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일전에 이 게임에 대한 평가를 내렸던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더군요. 아직 이 게임의 정수를 다 맛보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죠.

이어진 게임은 알함브라였 습니다. 게임 구매 러쉬 초기에 들어왔던 녀석이라 꽤 자주 돌렸었는데, 한동안 못 찾았던 녀석이지요. 본판이 모두에게 익숙한 게임이라 확장 1번 가운데 [고관의 부탁]을 넣어서 진행했습니다. 결과론이지만, [고관의 부탁]은 인원이 많을 때 더 빛을 발했을 것 같네요.

저희 커플은 주로 2인 게임을 많이 해왔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타일에 금액을 정확히 맞추어서 지불하려고 합니다. 원하는 타일을 무리해서 구매해야 할 필요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카드 장전에 주력하는 스타일인데, 차님은 외벽 중시 스타일이더군요. 필요한 외벽이다 싶으면,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구매해오곤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더군요. 외벽 점수는 가장 긴 사람만 차지하게 된다고 알고 계셨던 겁니다. 에러였던 것이지요. 여담이지만, 차님의 자택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만 정식 규칙보다 훨씬 빡빡한 에러로 진행하는 줄 알았었는데, 차님의 집에서는 훨씬 더 각박(!)한 하우스룰이 적용되고 있더군요.
어쨌거나 덕분에 첫 번째 점수계산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셨었는데, 총알 소진이 심한 탓에, 중반 이후 조금씩 밀리고 계셨습니다. 제 경우는 외벽도 꽤 길게 만들었지만, 고급 건물에 주력했습니다. 탑이나 정원 같이 높은 점수를 주는 타일을 모으고 있었지요. 덕분에 같은 타일에 주력하던 제 연인이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말렸습니다. 최종 순위는 저-차님-제 연인.

알함브라를 끝내고 나니까 시간이 4시 정도 되었습니다. 게임을 더 하고 싶었는데, 차님이 지금 안 가시면 졸음운전의 위험이 있으시다면서 모임을 끝냈습니다.

모 임이라고 해봐야, 번개 형식이었기 때문에, 조촐한 3인 게임 위주로 돌아갔지만, 새로이 열정적인 분을 알게 되어서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그 분”을 잘 설득해서 가급적이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려 합니다. 이렇게 게임을 사이에 놓고 사람과 마주 앉는 시간이 너무 즐거우니까 말이죠.

p.s. 경황이 없어서 사진은 또 토레스밖에 못 찍었네요. 아니면 토레스가 끝났을 때 가장 예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핫핫~

보드 위에 그린 세상 - 3. 보드게이머 A씨의 하루

<프롤로그>

0-1. A씨는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드게이머이다. 프로게이머는 프로겠지만, 보드게이머는 보드가 아니다. -_-;


0-2. B씨는 PC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PC게이머이다. 프로게이머는 프로겠지만, PC게이머는 PC가 아니다. -_-;


1-1. A씨는 즐겨 찾는 보드게임 쇼핑몰에서 신작 출시 소식을 접했다. 그 신작의 가격은 8만원에서 1천원이 빠지는 금액

“음~ 이 회사의 구성물은 실하기로 유명하지. 그래. 이 회사 제품이라면 이 정도 금액은 타당해.”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신용카드를 긁었다. (카드가 가려웠나 보다. -_-;)


1-2. B씨는 즐겨 찾는 PC게임 사이트에서 신작 출시 소식을 접했다. 그 신작의 가격은 3만원에서 2천원이 빠지는 금액

“에이~ 뭐가 이렇게 비싸? 이 회사는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거야?”

그는 망설임 없이 와레즈를 뒤졌다.


2-1. A씨가 구입한 게임에는 두툼한 영문 설명서가 들어있었다. 구성물, 게임목적, 준비, 진행, 게임 종료, 점수 계산, 변형룰 등….

그는 망설임 없이 영한사전을 뒤져 번역을 시작했다. (영문 규칙이 들어있는 게 어디냐는 듯이…)


2-2. B씨가 다운받은 게임은, 원래 구입할 경우 조촐한 한글 설명서가 들어있다. 게임 사양, 조작방법 등…. 그리고 다운 받은 게임을 설치하고 나면, 파일로 된 전자 설명서를 읽겠느냐는 물음이 뜬다.

그는 망설임 없이 “아니오”를 클릭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3-1. A씨가 구입한 게임에는 카드에 영문이 빼곡히 적혀있다. 토익 점수 900점을 상회하는 그에게 그 정도 영문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기와 마주 앉아 게임을 돌리는 친구 C와 D를 떠올렸다. 친구C는 몰라도 친구D는 영문이라면 알러지를 일으키는 인물.

“그래. 게임은 함께 하는 거야.”

그는 망설임 없이 자와 칼, 풀을 동반한 한글화를 시작한다.


3-2. B씨가 구입한 게임은, 캐릭터들이 육성을 통해 게임을 진행한다. 정확한 영어 발음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지만, 한국의 게이머들을 위해 자막처리가 되어있다.

“에이~ 무슨 게임을 꼬부랑말을 들으면서 해? 이 회사는 더빙도 안해주나?”

그는 망설임 없이 “음성 음소거”를 클릭했다. -_-;


4-1. 마침내 A씨는 규칙 번역과 카드 한글화를 마쳤다. 게임이 하고 싶어진 그는, 전화로 친구 C와 D를 불렀다. 오늘은 다행히 그들이 시간이 비었나 보다.

한 시간 여를 기다리자 친구들이 도착했다. A씨는 자리에 앉아 게임을 준비하고(30분), 게임에 대해 설명을 했다. (30분) 게임을 하기로 맘 먹은지 두 시간만에 시작한 그들의 게임은 약 3시간 여의 플레이타임을 기록하고 끝이 났다. 그들은 지퍼백을 이용해 게임 구성물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집어넣었다. (10분) 도합 5시간 10분.


4-2. B씨는 오늘도 게임 생각이 나서 PC앞에 앉았다. B씨는 PC를 켜고 게임을 시작했다.(5분) 한 시간 여를 게임에 열중한 B씨. 슬슬 손가락이 아파질 무렵 그는 게임을 종료하고 PC를 껐다. (20초) 도합 1시간 5분 20초


5-1. A씨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옥션에서 카지노 칩을, 방산시장에서 카드 슬리브를, 지물포점에서 무광 시트지를, 천원 하우스에서 구성물 보관용 플라스틱 함을, 팬시점에서 카드 보관용 종이박스를 구입했다.

그는 지금 문구점에서 구입한 아크릴로 다이스 타워를 손수 제작하고 있다.


5-2. 3개월 전 PC를 업그레이드 한 B씨. 그는 오늘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PC게임을 하고 있다.


6-1. 며칠 뒤 A씨는 즐겨 찾는 쇼핑몰에 새로운 신작이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통장 잔고를 살핀 후, 한숨을 내쉰 A씨

그는 지금 커뮤니티 중고장터란에, 자신이 애써 한글화하고, 슬리브를 씌워서, 지퍼백으로 정리한 게임들을 팔려고 명단 정리 중이다. (구매 자금 마련을 위해…)


6-2. 며칠 뒤 B씨는 즐겨 찾는 PC게임 사이트에서 새로운 신작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가격을 살핀 후, 한바탕 투덜거린 B씨

그는 지금 와레즈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다.


7-1. 지난 에센에서 새로운 게임이 소개되었음을 알고, 가슴 두근거렸던 A씨. 그러나, 그 게임의 출판사는 소량만을 출판하기로 유명한 회사였고, 발매 후 며칠 만에 품절되어 버려서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지금 e-bay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다.


7-2. 지난 E3쇼에서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었음을 알고 가슴 두근거렸던 B씨. 그러나, 그 게임 회사는 한국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는 수익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 한국에서는 출시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해외 와레즈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다.


<에필로그>
위에 적은 A씨는 제가 아닙니다. 물론 B씨도 아니구요. A씨는 주변에 열성적인 보드게이머를 모델로 삼아 가상으로 만든 인물이며, B씨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모델로 했습니다.

문득 생각이 든 사실이지만, 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보드게임은, 같은 게임이라는 점에서 항상 비교대상일 수 밖에 없는 PC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이며, 인원의 제한이 있으며, 언어의 장벽도 스스로 넘어야만 합니다. 그것도 번역과 포토샵질과 컬러프린팅 및 재단(?) 등의 엄청난 수고로움을 요구하는 한글화를 통해서 말이지요.

게다가, 게임을 돌리기 위해서는 규칙을 공부해야 합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설명을 졸면서 들었던 사람조차도, 누군가가 게임을 설명할 때는 눈빛을 빛내며 듣습니다. 아니 심지어 스스로 규칙서를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게임을 공부하며, 때론 누군가에게 가르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해가 잘 안가는 규칙은 질문과 답변 게시판을 이용하거나, 게임 출판사 홈페이지의 FAQ를 뒤적거리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만 하는 보드게임인데도, 구매를 위해 망설임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지금껏 100개를 넘지 않는 저렴한(!) PC게임 구매 개수에 비해, 보드게임은 300개를 훌쩍 넘긴 저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드게이머들은 유희를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의 유희를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속에서, 보드게이머들은 돋보이는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유쾌한가 봅니다.

오늘도 저는 사람들과 만나 게임을 하게 되는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3. 푸에르토 리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MLB 팀이 플로리다 말린스입니다. 플로리다 주(州) 마이애미 시(市)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구단인데, 마이애미가 중남미의 입구 같은 곳이라 라틴계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공항에서도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자주 들리더군요. 버스를 타고 갈 때도 영어를 쓰는 사람보다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걸로 봐서 주민구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덕분에 말린스 구단에는 다른 팀보다 중남미 출신의 선수들이 꽤 많습니다. 얼마 전 구단 공중분해(!) 덕분에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이전의 선수 구성을 보면, 도미니칸 공화국, 베네수엘라, 쿠바 등 카리브 해 연안의 많은 국가에서 온 선수들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푸에르토 리코지요. 퍼지 로드리게스, 마이크 로웰 등 친근한 선수들의 고향인 푸에르토 리코가 사실은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게임은 당시의 식민 이주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음울한 분위기의 게임은 아닙니다. 이주민 배에 떼거지로 담겨서 실려 오거나 말거나, 게임 참가자들은 그런 비운의 역사를 떠올리며 숙연해할 틈이 없습니다. 상대의 행동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끊임없이 계산하느라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도는 게임이지요. 보드게임긱 평점 부동의 1위인 게임이라, 이미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만, 제 경우는 특이하게도 푸에르토 리코를 2인 게임으로 대부분 돌렸기 때문에, 이 날의 5인 게임이 다소 생소했다고나 할까요. 한 라운드의 대부분의 역할이 특권을 포함하는 2인 게임과, 한 가지 역할을 제외하면 모두 특권과 무관한 5인 게임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2인 게임과 5인 게임의 차이점은 비단 역할선택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게임 전반에 걸쳐서 꽤 큰 차이점을 나타내기 때문에 저로서는 거의 새로운 게임을 접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커피를 포함한 다품종 소량생산과 상인+건물 러쉬를, 비형 스라블님은 상인 전략, Jade님은 담배 주종에 항구+조선소 콤보로, twinkrystal은 옥수수 러쉬를, 비형 스라블님 부인께서는 설탕과 담배 콤보로 전략의 틀을 잡으시더군요.

저는 담배를 제외한 모든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공장제 수공업소를 잡지 않아서 원활한 건물러쉬가 어려웠습니다. Jade님이 항구+조선소로 틀을 잡고 마구 승점사냥을 하시길래, 얼른 건물러쉬로 끝을 내려고 했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특히 바로 왼쪽에 계신 비형 스라블님이 같은 상인 전략으로 나가시는 덕분에 물건도 몇 번 못 팔았습니다. 5인 게임에서 왼쪽 사람이 상인을 잡으면, 저는 물건 팔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쩝~

게임은 Jade님이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twinkrystal이 1점차 신승을 거두었습니다. 한번에 옥수수 6~7개를 끌어당긴 옥수수 러쉬의 막강한 힘을 알 수 있겠더군요. 저는 대형 건물 2개를 포함해서 건물 점수로 역전을 노렸었는데, 창고 없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말로는 처참하더군요. 훌쩍~ 3등에 그쳤습니다.

사실 푸에르토 리코는 너무 많이 돌린 게임이라 질릴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오는군요. 명작은 명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게임을 마쳤을 때, 오후 6시 정도 되었었는데, 모두 귀가하셔야 한다고 하셔서 모임은 끝이 났습니다. 매번 오셔서 게임하실 때마다 따님을 품에 안고, 조기교육(?)을 하셔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게임하시는 비형 스라블님 내외분과, 몇 번씩 길을 잘못 들어서 광주 일대를 훑고 오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즐거워하시는 Jade님께 감사드립니다.

2. 컬러레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말하라면 미하엘 샤흐트를 첫 손으로 꼽을 겁니다. 처음으로 구입한 보드게임이 한자(Hansa)였다는 이유도 크지만, 무엇보다 깔끔하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랄까요. 특히 대부분의 정보를 공개한 상태에서 수싸움을 하게 만드는 그의 게임 스타일이, 가림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솔직한 저의 스타일(정말?)과 잘 맞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자주 찾게 되는 게임들은 이 분의 게임들이 많더군요. 최근에는 2인용 게임인 리슐리외를 자주 하게 되는데, 이 역시 미하엘 샤흐트의 작품입니다.

컬러레토 역시 카드게임이지만, 모든 정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샤흐트다운 게임이더군요. 3종류 이외의 모든 카드들은 마이너스 점수가 된다는 점도 매우 신선했습니다. 대부분의 카드게임에서 카드 획득은 좋거나, 나쁘거나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좋을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꽤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더군요.

6Nimmt! 이후로 5인 이내의 인원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을 게임을 하나 더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2~3인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비형 스라블님의 말씀에, 모임 이후에 둘이서 한번 시도를 해보았으나, 3~5인 게임이라는 규칙서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접었다지요. (혹시 우리 둘을 골탕 먹이시려고 일부러? -_-;)

딱 한번 돌아간 게임이고 너무 강렬한 인상 덕분에 사진 찍는 것을 잊었습니다. 핫핫~ 대신, 그 직전 모임에서 다이아몬드를 돌리신 후의 사진 한 컷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