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 호주] 후기

무려 1년 하고도 5개월의 공백을 깨고 드디어 18XX가 돌아갔습니다. 각자의 생활전선에서 눈물나는 사투를 벌이던 철도의 역군들이, 철로 한 칸이라도 더 놓아보겠다며 눈내리는 영하의 서울 거리를 헤맨 끝에 이뤄낸 쾌거입니다. 비록 반환점도 미처 돌지 못한 채 아쉬움의 폐막을 해야했지만, 간만에 느껴볼 수 있는 명작의 향취였습니다. 이 감동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기엔 아까운 나머지 졸필이나마 몇 자 적어봅니다.

1. 작가

올해 에센에 신작을 무려 3개, 그것도 모두 18XX로만 출판한 사람이 있습니다. Helmut Ohley는 일전에도 Leonhard Orgler와 손을 잡고 수 편의 18XX를 만든 바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회사,Double-O Games에서의 2010년 신작, [1880: 중국]뿐만 아니라, Lookout Games를 통해 [Poseidon]과 [Railroad Barons]를 18XX팬들에게 선보였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데다, 주문을 받으면 그 때부터 제작을 시작하는, 그래서 주문하면 1년 이상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모 회사의 게임들과는 달리 나름 대량생산(?) 후에 판매를 하고 있어서, 저로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득템할 수 있는 게임이었지요.

어쨌거나, 2007년작인 [1848:호주]를 손에 넣은 건 2009년 초. 거의 2년 가까운 기다림의 끝에 돌아가게 된 셈이네요. 그의 나머지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고 짧은 게임이라고 합니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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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드게임긱)

게임의 배경은 호주입니다. 드넓은 대륙이지만, 중요 거점들이 넓직하게 떨어져있어서 그런지 지도는 A3 사이즈로 아담하네요.

지도는 해안/산악/사막의 3종류 4구획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8XX에서 구획을 나눈 지도를 쓰는 게임은, 제가 해본 바로는 이 게임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단순한 시각적 용도 뿐만 아니라 게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3. 특징

일반적인 18XX, 특히 거의 모든 시리즈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1830과의 비교를 안해볼 수 없겠지요. 긱에서도 이를 따로 문서화한 사람이 있습니다. 두드러진 부분만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사기업의 경매가 Dutch Auction입니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경매 방식을 취하는데, 1848에서는 가격이 점차 떨어지는 방식이며, 전술한 문서를 작성한 긱유저는 “아마도 정가에 대부분 팔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만, 3인 게임이라 그런지, 가격은 꽤 떨어진 상태에서 구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어쨌거나, 나쁘지 않은 경매 방식이었고, 특히 함께 제공된 경매 차트 덕분에 더욱 깔끔함이 돋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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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판

게임 중간 시점의 각종 현황판(주가 차트 / 증서 차트 / 시대 차트 등)

게임 중간 시점의 각종 현황판(주가 차트 / 증서 차트 / 시대 차트 등)

또한, 국유화가 있습니다. 1861에서도 이와 같은 요소는 있었는데, 국유화의 주체가 러시아 국영철도였던 1861과는 달리, 1848에서는 국유화의 주체가 영국은행(Bank of England)입니다. 따라서, 돈이라는 요소에 의해 국유화가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18XX에서, 주식회사들이 자사 주식의 가격 상승을 위해 꾸준히 배당을 하다보면, 정작 회사 운영자금이 부족한 시점이 옵니다. 운영자금을 챙기기 위해서는 배당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 경우 회사 주가가 하락한다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따라서 이렇게 회사들이 어쩔 수 없이 주춤하는 타이밍을 잘 포착해서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18XX의 묘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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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몬드 님의 상황

그런데, 1848에서는 부족한 운영자금을 메우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대출입니다. 각 회사는 매 경영 라운드마다 100파운드씩, 총 500파운드의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대출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갚을 필요도, 이자도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대출은 주가를 무려 2칸이나 하락시키고, 반복된 하락의 끝에는 국유화의 아픔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히 잘 쓰면 주주에게 꾸준히 배당금을 안겨주면서도 경영자금을 챙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겠더군요.

아울러, 지도가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바, 각 구획을 넘어갈 경우에는 일정한 제약이 붙습니다. 자신의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철로를 놓을 것인가를 계산하고, 그에 맞춰서 구획을 넘어갈 수 있는 열차를 마련하는 재미(?)가 추가되었지요.

4. 게임 진행

게임은 저와 알몬드님, 수풀에돌님의 3인 게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사기업 경매는 느긋한 수풀에돌님과 알몬드님의 성정덕분인지, 꽤 가격이 떨어질 기세였습니다. 결국 조급함에 먼저 구매를 서두른 건 저였고, 가장 많은 돈을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CAR의 경영자 증서를 제공하는, P6의 사기업을 구매한 기세를 몰아 초장부터 CAR을 출범시켰고, 모두가 분위기에 편승한 덕분에 가장 먼저 품절남, 아니 상종가를 친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알몬드님이 뒤이어 회사를 출범시키셨고, 에돌님은 두 회사의 차대주주로서 초반 게임을 관망하시는 듯 했지요.

하지만....

CAR은 Central Australian Railway의 줄임말, 호주 대륙의 중부라면.... 사!막! (쿨럭~) CAR은 험난한 사막 한 가운데를 홀로(!!) 개척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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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간 종료 시점의 지도 현황

반면, 동부 해안가의 Brisbane을 근거지로 삼은 알몬드님의 QR은, 주변의 도시들을 발판 삼아 해안가를 따라 시드니로 철로를 연결해 나아갔고, 곧이어 Canberra를 근거지로 삼은 수풀에돌님의 FT와 함께 동남부 해안을 착실하게 다져나갔습니다. 이어서 알몬드님이 출범시킨 회사도 Sydney를 근거지로 삼는 회사인지라, 그 지역은 아주 오밀조밀 하더군요. 지금도 호주의 주요 도시들은 그곳에 몰려있는데, 게임도 현실처럼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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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에돌님의 상황

두 사람, 아니 세 개 회사가 철로를 쓸어가는 통에, CAR과 뒤늦게 출범한 SAR(여기도 사막이 근거지!!)는 정작 철로가 없어서 발전을 못하는 넌센스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무려 2개의 칸이 초록색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게 되어, 이 두 회사가 공유하는 철도는 소위 말하는 “변비 철도”, “동맥 경화 철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한 차례 경영 라운드의 수익이 다른 회사들은 200~300파운드에 달할 때도, SAR의 경우는 70~80파운드의 빈약한 수익만을 낼 수 있었지요. 이 회사의 운명을 예민하게 감지한 수풀에돌님과 알몬드님은, SAR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구매하시지 않더군요. 덕분에 먹튀도 할 수 없게 되어서 매우 난감했습니다.

슬슬 SAR이 대출을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감지한 두 분은 영국 은행의 주식을 사모으기 시작합니다. 영국은행은, 주식회사에 대출해주는 횟수에 비례하여 주가가 상승하며, 흡수하는 회사가 늘어나면 배당금도 상승합니다. 동료 회사의 경영난을 보며, 한 몫 챙기겠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도 뒤늦게 한 주를 구입했지만, 이미 두 분은 각각 50%, 40%의 지분을 챙긴 뒤였습니다.

저와 알몬드님은 2개씩의 회사를 경영하는 상태이고, 수풀에돌님은 유망한 각각의 회사에 차대주주인 상태. 슬슬 고성능 차량의 등장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경영자들은 각 회사간의 순환출자로 경영 안정을 꾀하느냐, 아니면 과감한 회사 처분 후 달아나는 방식을 택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되고, 서로간의 눈치 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려는 찰나... 아쉽게도 시간 사정상 게임을 접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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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상황

게임의 백미가 다가오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매우 아쉬웠지만, 심야에는 대중교통의 운행이 정지되는, 불가사의한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이기에, 눈물을 머금고 게임을 접었습니다.

중간 정산 결과 근소한 차이로 제가 1등, 알몬드님이 2등, 수풀에돌님이 3등을 차지했습니다만, 사실 별 의미는 없습니다. 한 번의 먹튀로 뒤집히고도 남을 간격들이었으니 말이지요.

5. 총평

BGG의 유저들이 남긴 평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훌륭한 18XX 시리즈의 하나입니다. (11월 30일 현재 유저 평점 8.09) 크지 않은 지도지만, 충분한 변조가 가해져서 단조롭지 않았고, 대출과 국유화 등의 요소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게임이 충분히 진행되었더라면, 중-후반부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게임 구성물의 시각화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소규모 인원과,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좋은 게임이라고 평하고 싶네요.

간만의 게임으로 모두가 흥분된 상태였습니다만, 며칠 뒤에 다시 모일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아마도 다음 철도작업(!)은 이번 금요일이 될 것 같습니다. 참석하는 인원수에 따라서 시리즈의 종류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게임이 되었든 18XX의 모든 게임은 지금까지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니까,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