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6일에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독일 생활도 벌써 두 달 반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말이 서툴고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럭저럭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네요. 근황도 전할 겸, 정리도 할 겸 포스팅을 합니다.

1. 비자 신청 등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EU국가들을 한국인이라면 무비자로 90일동안 머무를 수 있습니다. 관광이 목적이라면 90일을 초과해서 머무르지 않을테니, 사실 상 관광목적인 경우에만 무비자를 허용한 것이지요. 그래도,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지 비자 신청이 가능해졌고, 그것이 이곳에서는 더 일반적이더군요. 도착해서부터 준비했던 것이고, 비자가 발급되지 않으면 독일 생활이 불가능하므로 제게 가장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순조롭게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더군요.

우선, 재정보증서류에서 암초를 만났습니다. 비자신청인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규칙적으로 일정 금액이 입금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현지 계좌에 거액을 예치해두어야 하고, 일정 기간동안은 상당부분 인출할 수 없도록 묶어두어야만 합니다. 환율이 역대 최악을 기록하는 최근 상황(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는 아직 유로화가 정식 출범하지 않았으므로, 유로화의 환율은 현재가 최악임)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후자는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부모님 역시 월급생활자가 아니므로 부적격.

결국 사업하시는 외삼촌이 나서서 재정보증서류를 발급받았습니다. 이 과정이 거의 한 달이 걸렸네요. 만일 도착 직후부터 준비하지 않았다면 매우 곤란했을 겁니다.

해당 서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iMac과 함께 제게 도착을 했고, 이를 들고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

첫날 찾아갔을 때는 영사부 근무시간이 막 지났을 때더군요. (세상에! 오후 4시에 업무 종료라니...) 그래도 다행히 친절하신 직원분 덕분에 필요서류가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쉬운 건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호주제가 유명무실해진 건 알고 있었지만, 호적 자체가 사라진 건 몰랐습니다. 호적이 가족관계 증명서를 비롯한 여러가지 증명서로 분할(!)되었으며, 이들 모두 전자정부를 통해 프린터 출력이 불가능한 서류입니다. 또한 본인이 아니면 신청도 불가! 결국 전자정부를 통해 제가 직접 신청을 하고, 이를 우편 송달하게 했습니다. 이 서류를, 한국에 있는 본가 컴퓨터의 원격제어를 통해 스캔을 받았고, 아직 프린터가 없기 때문에, USB메모리에 이를 담아서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대사관에서 원래는 안해주는 건데, 약간의 아양(!)을 겯들여서 서류출력을 허가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독일어로 된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혼인증명서), 운전면허증 공증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드디어 필요한 모든 서류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의 과정도 꽤 우여곡절이었습니다만, 이후의 과정도 역시나(!)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행정관청 민원부서에서 전입신고를, 외국인관청 비자부서에서 비자발급을 요청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들 관청의 공무원들이 현재 파업중이라는 겁니다.

사실 전입신고는 10월부터 하려고 했었던 것인데, 매번 파업으로 인해 번호표 받는데 실패해서 11월까지 미뤄진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비자 신청도 안된다는 것이죠. 오전 8시부터 업무를 하는데, 7시에 관청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더군요. 제가 현재 거주중인 Wedding은 Berlin중에서도 외국인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항상 붐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업무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긴 줄이 늘어서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쁜 것은 제 앞에 4명을 남겨둔 시점에서 번호표 분배를 종료했다는 것이지요. 역시 파업 때문에 정상업무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벌써 수차례 미역국을 먹었던 저로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베를린에 있는 모든 관공서 주소를 받아서 검색을 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구글 맵스가 없었더라면 여기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한국은 주소 체계가 상당히 어지러워서 구글에서도 제대로 된 지도를 등록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이곳 독일은, 심지어 제가 가지고 있는 아이팟터치에서조차도 주소만 입력하면 자세한 경로와 주변 지형을 알려줍니다. 이번에도 구글맵스의 힘을 빌어 다른 관청의 위치를 검색했습니다.

지난번 시내 중심에 있는 Tiergarten 관청에 갔을 때 깨달은 것이지만, 너무 중심부에 있는 관청을 가면 사람들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후미진 곳에 분청을 목표로 했습니다. Wedding의 북쪽에 있는 구역이 Reinickendorf인데, 이곳의 중앙관청도 아닌 동분청을 찾아갔습니다. 지하철 역으로부터도 꽤 떨어진 곳에 있더군요. 다행히 제 예상이 맞아서 이곳에서는 번호표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후미진 곳이라 점심을 사먹을 곳도 마땅히 찾을 수 없어서, 우리 앞에 대기중인 30여명을 믿고, 다시 도시 중심부로 나왔습니다. 참고로 Reinickendorf는 예전 Berlin에 포함되지 않았던 곳입니다. Berlin이 확장되면서 한 구역으로 편입된 것이지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전입신고에 성공(!)했습니다. 그날 일과는 그걸로 끝이었지요. 수업도 들어갈 수 없었고... 아마 한국에서 전입신고에 하루를 온통 들어 바쳐야만 했다고 한다면 믿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건 외국인 관청에서의 다음날에 비하면 약과였습니다. 전날 하도 데였던 아내가 아예 새벽부터 가서 기다리자며 오전 5시에 기상을 시키더군요. 전날 외국인 관청에 가는 길을 익히는 등 이것저것 조사하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던 저로서는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습니다.

Berlin 특유의 음울하고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외국인 관청에 도착한 건 새벽 6시를 갓 넘긴 시각. 하지만, 역시나 파업의 영향인지, 긴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업무시작도 안 한 시각이라 그 쌀쌀한 새벽 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대기하는 건 정말 고역이더군요. 아내는 인터뷰를 대비해 옷차림도 가볍게 하고 나와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고, 의도하지 않았던 노상포옹을 한 시간 가량 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의 독일이라지만, 아직까지 그때만큼 장시간 사람들 앞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추위 앞에선 별 수 없더군요.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기다림 끝에 겨우 건물 내 진입에 성공했고, 대기표를 받았습니다만,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1차 대기 후 서류 작성을 했고, 다시 2차 대기 후 수수료 입금(60유로 x2), 그리고 3차 대기 후 결국 비자를 손에 넣었습니다만, 역시 이로 인해 그날의 일과를 모두 날렸습니다. 새벽 6시부터의 기다림은 무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결과로 나타났으니까요.

그나마, 저희는 양호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고도 조금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만으로 약속(Termin)만 잡고 돌아선 사람도 있고, 심지어 그보다 늦게 온 사람은 아예 빈 손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니까요.

한국에서의 관공서 업무가 아무리 비능률, 비효율이라지만 적어도 기다림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독일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인터넷

이사하고 바로 한 것이 바로 인터넷 신청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길어야 1주일 걸리는 인터넷 신청이, 무려 한 달이나 걸린 것도 문제지만, 약 1주일 정상 작동하더니 먹통이 되어버린 인터넷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전화와 함께 물려있는 인터넷이기 때문에, 전화도 먹통이 되더군요. 휴대전화로라도 고장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잘 알아듣기도 힘든 ARS 안내를 10초간 들은 대가로 2유로 가량이 빠져나가는 걸 보고 다시 전화를 걸 엄두가 안 나더군요.

그래서 인터넷 신청을 했던 동네 백화점 전자코너(dug)를 찾아갔습니다. 역시 아침 이른 시각에 찾아가서 점원보다 제가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 점원, 지난 번 찾아갔을 때의 불친절함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저더러 직접 전화하라는군요. 짧은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건만 요지부동입니다. 한참을 졸랐더니 전화 번호 하나 딸랑 적어주면서 집에 가서 전화해보랍니다. 그리고 그 번호는 수신자 요금부담이니 휴대전화로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해주더군요. 하지만, 지난번에도 그렇게 적어준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로 밝혀진 바, 곧바로 현장 확인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없었던 휴대전화가 선불 충전 전화로나마 있었던 게 다행이었지요. 역시 해당 번호는 ARS안내만 나오고 곧바로 끊어졌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오기가 치솟더군요. 의자에 앉아서 응대하는 점원과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서서 끝까지 버티는 고객. 아내는 거의 주저 앉아서 한숨만 내쉬고 있지만, 어떻게는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 덕분에, 고맙게도(!!) 회사의 전화기로 제가 직접(!!)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영어는 그다지 보편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한국은 때때로 ARS에서 영어 안내를 들을 수도 있지만, 독일에서 그런 건 없습니다. 오로지 독일어로만 모든 것이 진행됩니다. 심지어 E-Mail까지도...

여하튼 그곳에서 2시간 씨름한 덕분에 문제가 해결... 된 것이 아니고 고장 접수만 했습니다. 연락 주겠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전혀 연락을 들을 수 없었고, 결국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들었습니다. 아마 도합해서 3~4시간은 기다렸을 겁니다. 한 10여분 대기하다보면 나중에 다시 걸어달라는 말과 함께 끊어버리는 매정한 ARS만 상대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말입니다. 정말 소싯적 8비트 컴퓨터 게임하던 시절의 근성을 다시 끄집어 내는 곳이네요.

어쨌거나, 이렇게 근성으로 도전과 재도전을 거듭한 결과, 지난 금요일 담당자와의 통화연결에 성공했습니다. 흘흘... 그런데 담당자의 영어는 제 독일어에 필적할만하더군요. 그래도 그 친구의 영어 듣기 능력이, 제 독일어 듣기 능력보다 나을 것 같아서 계속 영어로 대화했습니다. 사실 대화를 할 때 말을 못하면 주도권은 상실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래도 기기 문제인 것 같은데, 혹시 주변에 인터넷 쓰는 친구가 있으면 기기 들고 가서 한번 테스트 해볼래?"라는 황당한 대답을 듣고, 그 때까지의 제 근성은 모두 분노로 환원되었습니다. 제가 영어로 분노를 표출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친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제 노호성에 살짝 움츠려든 그 친구는, 기기를 새로 보내주겠다고 했고, 인터넷 불통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불하는 조치까지도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화요일인 지금까지도 기기는 도착하지 않았고, 내일까지도 소식이 없으면 저는 다시 근성을 발동시킬 겁니다. 정말 피곤합니다.

3. 프린터 그리고 건강보험

건강보험을 들었습니다. 11월 1일부터 적용되지요. 서류들은 진작에 도착을 했고, 병원 방문 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있길래 챙겼습니다. 지난 달 말부터 약간의 복통이 있었고, 어제는 치통도 오더군요. 외국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드디어 몸에 무리를 주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문제는, 병원에 가서 해당 서류를 제출할 뿐, 돌려받지는 못한다는군요. 다른 병원에 가려면, 이를 복사해서 써야 한다네요.

복사할 곳도 마땅히 안 보이고, 마침 프린터도 필요한데, 프린터를 하나 사와서 복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약 2 주 전이었습니다. Saturn과 Media Markt 등을 수차례 오가며 시장조사를 했고, E-bay와 독일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뒤적거렸지요. 맥 지원과 컬러 인쇄, 유지비 등을 고려하여 삼성 컬러레이저복합기 CLX-2160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거 가격이 고무줄이더군요. 어느 곳에서는 300유로를 넘게 부르기도 하고, 인터넷 가격비교 최저가는 189유로니까, 계속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A/S문제도 있고 해서, 동네 컴퓨터 가게로 갔지요. 189유로에 판매하는 곳은 프랑스였습니다. 쿨럭~

미리 사전조사한 가격과 일치하는 219유로였는데, 문제는 배송료더군요.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6유로 정도의 배송료가 붙고, 현장에서 구매해서 배송요청을 하면 16유로가 붙습니다. 결국 돌돌이를 끌고 가서 이걸 직접 끌고오는 무모한(!) 짓을 시도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순탄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지하철 2정류장 되는 거리를 그 무거운 프린터를 끌며 걸어왔습니다. 오늘처럼 비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요. 어쨌거나, 어제 모든 설치와 복사를 마쳤고, 이제 병원에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째, 치통도 가라앉고 복통도 거의 없어진 것 같네요... -_-;;;

4. 월반

기초부터 계속 들어온 독일어과정인데, 석달째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월반시험을 쳤습니다. 차근차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인데, 문제는 교실에 너무 학생수가 많다는 겁니다. 거의 15~20여명이 매일 수업을 함께 하는데, 선생님은 한 명의 낙오자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타입인지라, 저와 아내의 입장에서는 참 답답했었거든요. 그래서 월반을 했고, 지금의 클래스로 옮겼습니다. 화법조동사와 간접화법 등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혼자 복습하며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신경쓸 일들이 많아서 아직 못하고 있네요. 아내는 벌써 거의 다 따라잡은 모양입니다.

5. 아이폰

T-mobile에서만 쓸 수 있던 iPhone이 O2와 Base에서도 가능해진 모양입니다. 오늘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식 대리점이 아닌 이베이에서만 가능한 모양인데, 어쨌거나 잘만 하면 iPhone을 손에 넣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현재 사전으로서의 용도가 가장 큰 아이팟이 딱 1대 뿐인지라, 둘이 공부할 때 좀 불편한 점이 있어서 조만간 지르게 될 것 같네요.

그냥 최근 근황을 주절거리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종종 글은 쓰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올리다가, 이렇게 필 받았을 때 좌악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