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일이었다. 이곳 시각으로 9월 5일 금요일 오전 7시 경, 갑자기 방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와 함께 단잠에 빠져 있던 나는 부시시한 눈으로 방문을 열었다. 내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종종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을 하곤 했던 승섭이 형이었기 때문에 으례히 문 앞에 형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곳 관리인이 서 있었다.

약간 성이 난 듯한 목소리로 알아듣기 힘든 독일어를 마구 토해내는 관리인. 아직 햇병아리 독일어 실력인 나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고, 몇 마디 듣다 못해 아직도 잠이 덜 깬 머리를 간신히 돌려서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관리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집의 계약자는 Frau Shin이다.
2. 너는 Frau가 아니다. (쩝~)
3. 고로 너는 이 집에 계약한 사람이 아니다. 8시까지 당장 나가라!

그렇게 말하고서는 집 열쇠를 빼앗아서 휑~하니 가버렸다.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 참고로 이곳의 방문은, 열쇠가 없이는 잠그지 않고, 단지 닫힌 방문도 열 수가 없다.

급히 승섭이 형과 태중이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 밖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잠시 후 승섭이 형으로부터 짐을 싸고 있으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난 데 없는 날벼락에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우리 두 부부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는 10월 2일까지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고, 계약한 금액도 다 지불한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쫓겨날 줄이야...

한국에서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분명 어떻게든 내 스스로 조치를 취할테지만, 이곳에서 나는 문맹의 외국인에 불과한 입장,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내 상황이 처절할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서러움이 울컥 밀려오는 가운데, 한 시간여 짐을 꾸렸고, 그 결과 바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갖춰졌다. 꾸려진 짐들을 바라보노라니 착잡하고 막막하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그 때 시각이 8시 40분 정도. 관리인이 우리를 쫓아내려고 재방문한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문을 여니, 승섭이 형이 열쇠를 들고 서 있었다. 다행히 잘 해결되어서 10월 2일까지 머무를 수 있는 걸로 말을 해놓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린 아내와 나.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앞이 캄캄했던 상황이었으니...

독일에서 두번째 주말을 앞둔 시점에 한번 닥쳤었던 대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