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늦게까지 Dexter를 보고 잠들어서 그런지, 오전까지 늦잠을 잤다.

일어나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나니, 주말이라 게임 생각이 났다. 몇 사람 접촉을 해보았지만, 반응이 좀 지지부진했다. 민샤에게 전화를 했더니, 애가 자고 있으니, 나더러 오라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움직이기로 결정했으나, 여전히 엄청난 정체를 자랑하는 죽전에서 발목이 잡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다 결국 7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있던 전심님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애환이 많이 서린 게임, 아그리콜라(Agricola)를 5인 게임으로 배우게 되었다. 우습게도, 규칙서와 카드 번역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하는 법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게임 진행하면서 몇 가지 오역 및 통일되지 않은 용어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너무 채찍질을 받으며 진행한 탓이었으려나. 기회가 되면 한번 다시 훑어봐야 할 것 같다.

아그리콜라를 마치고 전심님은 급히 귀가를 했다. 아무래도 내가 늦게 도착한 것에 다소 서운함을 가진 것 같은 눈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 없어서 조금은 답답하다.

이어서 이번에 태중이를 통해 독일에서 구해 온 null und nichtig라는 트릭테이킹 게임을 4인이서 진행했다.

영문으로 살펴 본 내용으로는 무척이나 간단한 트릭테이킹이라 생각해서, 넘겨달라는 민샤의 요청에 조금 망설이다 넘겼는데, 직접 해보니 꽤나 마음에 든다. 역시 오랫동안 긱을 뒤지면서 평을 살펴보며 산 녀석을 그리 쉽게 넘기는 게 아니었는데... 쩝~

게임은 리드수트를 따라가야 할 필요도 없고, 트럼프로 트릭을 획득하는 것도 아니지만, 트릭 획득이 곧 점수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독특한 형태를 띄게 된다. 즉, 각 색상별로 최후에 획득한 카드의 숫자만이 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인데, 각 색상별로 0짜리 카드가 2장씩 있으므로, 신경쓰지 않으면, 모조리 0으로 도배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두자리 숫자의 카드들을 잔뜩 획득했다고 좋아하며 방심하다가는 어느 샌가 0짜리 카드들의 잔치 속에 울상을 짓게 되는 게임.

3~5인 게임인데, 카드를 속으로 헤아리는 사람에겐 더 없이 쉬운 게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카드 카운팅에 신경쓰지 않는 이에겐 그야말로 폭탄 바르기 게임이 된다.

눌 운트 니히티히를 마치자 시간이 새벽 1시를 향해가고 있길래,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신선설농탕에 들러서 아내와 설농탕 한 그릇씩 먹고 들어왔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둘이 거리를 걸어가니까, 오래전 아내와 데이트하던 기억이 났다. 아내도 그런 느낌이 싫지는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