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양방언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큰 감명을 받고, 올해에도 있나 싶어서 웹을 뒤지다가 리얼 그룹이 다시 내한공연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얼른 예약을 했다. 사실 전년도에도 이들의 공연을 보고 싶었으나, 필자가 이 사실을 알아냈을 때는 이미 전부 매진이라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올해 필자가 그들의 공연 사실을 알아냈을 때는 서울 공연의 자리가 넉넉하게 있었다. 하지만, 인천에서 생활하는 아내에게 평일 저녁 잠실 왕복은 좀 무리가 있어보여서, 4일 서울 공연을 포기하고, 5일 고양 공연을 선택했다. 전년도에도 인천 공연이 훨씬 빨리 매진된 사례가 있어서인지, Yes24에 할당된 티켓 가운데는 딱 4장이 남아있었다. 서둘러서 으뜸자리(5만원) 2석을 예약!

다소 일찍 도착하여 근처 화정역에서 석식을 한 후, 고양 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 들어섰다. 작년 휴대전화 아카펠라폰의 출시로 한국에서 높아진 지명도를 반영하듯, 많은 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공연 팜플렛을 1,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는데, 사실 프로그램 구성 목차가 내용물의 전부인지라, 부실함이 마음에 걸렸는지, 빨간색 산타모자도 같이 주고 있었다. 이 마저도 조악하기 그지 없었지만, 어쨌든 성탄 분위기도 낼 겸 하나 구입해서 머리에 좀 써줬다. 나중에 하도 아내가 벗으라고 구박하길래, 사진으로 봤더니... 쩝~ 모자가 작은 건지, 필자의 머리가 큰 건지... 모자를 썼다기 보다는 그냥 얹어진 모습.

필자가 예약한 자리는 으뜸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무대로부터 제법 떨어져 있어서, 좀 아쉬움이 있었지만, 일단 공연이 시작되자, 그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화음과 다양한 연출에 그 아쉬움은 멀리 멀리 달아났다.

다소 생소한 멜로디와 생소한 언어, 독어와 비슷한 느낌의, 하지만 독일어는 아닌 스웨덴어로 부르는 캐롤이 서막을 열었다. 이후에도 스웨덴 전통 곡들을 꽤 많이 들려줬는데, 자연스럽게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 같아서, 새삼 문화상품의 위력을 절감케 했다.

유창한 영어로 번갈아가며, 곡 중간중간 관객들에게 익살을 떨곤 했는데, 무엇보다도 이날 공연 최고의 이벤트는, 개구리 노래의 다양한 스타일 변주였다.

스웨덴 전통 동요라, 자세한 가사는 잘 모르겠지만, 중간에 영어로 해설해 준 내용은, “귀도 없고, 꼬리도 없는 개구리, 개골~개골~개골~” 뭐 이런 식이었다.

이걸 원래 곡으로 한번 들려준 이들은, 관객들에게 원하는 스타일을 말해보라고 종용했다. 누군가가 용감하게 외친 한 마디 “hip-hop!”

개구리 노래를 힙합 스타일로? 그것도 아카펠라 그룹인 리얼 그룹이?

하지만, 곧바로 힙합 스타일로 개구리 노래를 부르는 그들. 이미 여러번 호흡을 맞추고 연습한 결과겠지만, 너무도 완벽하게 힙합 노래로 바뀐 개구리 노래에 관객들은 포복절도!
원하는 다른 스타일을 묻길래, 필자는 큰 소리로 “Samba!” 외쳤지만, R&B를 외친 다른 관객에게 묻혀서 유야무야되었다. 아쉽~. R&B만 약간의 난색을 보였지만, 그 밖에 오페라풍의 개구리 노래, 째즈풍의 개구리 노래 등도 기가 막힐 정도로 멋드러지게 소화해내더라.

CD에서만 듣던 그들의 멋진 화음을 직접 들은 것도 좋았지만, CD로는 들을 수 없었던 특별한 음악들도 멋진 성탄절 선물이 되었다. 인터미션 직전에 “또 하나의 성탄절 선물”이라고 소개하고 들려줬던, 팝 메들리는 정말이지, 이들이 진정한 프로이며,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들임을 일깨워주었다. 팝송을 즐겨듣는 편이 아니라 Back street boys의 노래는 곡명을 알지 못하겠지만, Britney Spears의 Oops! I did it again, Toxic 등 익숙한 곡들의 아카펠라 컨버전은 그저 놀라울 뿐. 특히 베이스의 얄케우스가 예의 그 묵직한 중저음으로 “Oops! I did it again”을 부를 땐,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롤러 스케이트와 각종 소품들을 이용해서, 때론 진중하게, 때론 발랄하게 분위기를 전환시켜가며 멋진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사실 아카펠라가 자꾸만 계속 해서 들으면 다소 지루해지기 쉬운데, 그들은 화려한 퍼포먼스와 분위기 전환, 다양한 레퍼토리로 지루함 없이 공연을 이끌었다. 앵콜 2곡까지 포함해서 약 2시간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거나 아깝지 않았다.

사실 소싯적에 중창단 활동을 해봤기 때문에, 반주 없이 화음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필자로선, 그들의 절묘한 화음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배경음악(도널드 덕)처럼 심한 변주가 동반된 곡까지도 그 어느 누구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맞추는 그들의 호흡도 경탄의 대상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스웨덴이라는 곳도 한번 가보고 싶다. 리얼 그룹의 멤버가 대부분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 출신이라는데, 과연 어떤 교육을 하길래,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장수하며 아직도 멋진 음악을 선사하는 그룹이 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