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과 모처럼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해서, 그동안 한식으로 건조해진 뱃속에 기름진 피자를 좀 넣어주고, 간만에 외식한 김에 데이트 기분도 낼려고 영화관람까지 달렸다.

마침 몇 주전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했을 때, 꽤 보고 싶다는 느낌을 주었던 영화가 바로 전날 개봉을 해서 상영중이길래, 주저없이 선택했다. 제목은 어거스트 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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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남자와 쥴리어드 출신의 첼리스트인 여자가 운명같은 사랑을 나누지만, 여자의 아버지가 반대하여 단 한번의 만남을 끝으로 헤어진다. 하지만, 그 한번의 만남은 열매를 맺었고, 아버지는 태어난 아이를 사산했다고 속이고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여기까지가 배경이다. 이 후 여자가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아이는 부모를,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아이를 찾는 이산가족을 찾는 데, 이것이 사실 내용의 전부이다.

어찌보면 뻔한 신파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를 멋진 극화로 승화시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다른 블로거들은 혹평을 감추지 않는 것 같은데, 줄거리 전개만 놓고 보면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는 엉성한 얼개라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는 영화에서 차지하는 음악의 비중을 일반적인 영화에서의 그것과 비슷하게 취급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꾼이다. 남녀가 서로 만나게 된 계기도 음악이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물도 음악이다. 그들이 아이에게 물려준 유산도 음악이고, 아이가 부모를 찾기 위해 매달리는 것도 음악이다. 핏줄을 타고 음악이 전해지고, 다시 음악으로 핏줄을 찾아가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음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간과하면 전체 이야기의 약 절반 이상을 놓친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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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아들과 어머니와의 연결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버지와의 연결점이 약하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한번 감동의 물결로 나를 흔들어 놓은 장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의 기타 합주.)

다소 과장된 듯한 아이의 음악적 천재성은,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재능에, 강한 염원이 합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면 납득하지 못할 바가 아니며, 지나친 우연의 연속은 그들이 서로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는 점과 그 염원이 담긴 음악이 지닌 흡인력을 생각하면 나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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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유일하게 아리송한 캐릭터였던 로빈 윌리암스. 극 중 그는 악역이었을까, 선역이었을까? 혹시 자본주의 앞에 무릎꿇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영화 내내 그가 주는 메시지를 잡기 위해 꽤 고심했었는데, 아직도 좀 아리송하다.)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이산가족 찾기를 시작할 무렵, 사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서로를 찾는 애절한 눈빛이 음악이라는 촉매를 만났을 때 엄청난 파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토록 감동적인 이야기 앞에서 끝까지 참을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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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만의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몇몇 블로거들이 “어이없다.”라고 평한 장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핏줄이 음악을 통해 끌어당겨서 모인 이들이기에 어쩌면 놀라는 것이 더 어색했을거라 생각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볼 때도 걷잡을 수 없는 눈물샘의 폭발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남녀상열지사보다는 핏줄의 흡인력이 더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어쨌든 아내에게 놀림 거리 하나 추가되었다. 쩝~

여운이 좀 가라앉으면, OST라도 하나 구해서 당시의 감흥을 느껴보고 싶다. (사실 youtube에서 몇몇 곡들은 벌써 감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