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푸에르토 리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MLB 팀이 플로리다 말린스입니다. 플로리다 주(州) 마이애미 시(市)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구단인데, 마이애미가 중남미의 입구 같은 곳이라 라틴계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공항에서도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자주 들리더군요. 버스를 타고 갈 때도 영어를 쓰는 사람보다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걸로 봐서 주민구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덕분에 말린스 구단에는 다른 팀보다 중남미 출신의 선수들이 꽤 많습니다. 얼마 전 구단 공중분해(!) 덕분에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이전의 선수 구성을 보면, 도미니칸 공화국, 베네수엘라, 쿠바 등 카리브 해 연안의 많은 국가에서 온 선수들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푸에르토 리코지요. 퍼지 로드리게스, 마이크 로웰 등 친근한 선수들의 고향인 푸에르토 리코가 사실은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게임은 당시의 식민 이주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음울한 분위기의 게임은 아닙니다. 이주민 배에 떼거지로 담겨서 실려 오거나 말거나, 게임 참가자들은 그런 비운의 역사를 떠올리며 숙연해할 틈이 없습니다. 상대의 행동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끊임없이 계산하느라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도는 게임이지요. 보드게임긱 평점 부동의 1위인 게임이라, 이미 더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만, 제 경우는 특이하게도 푸에르토 리코를 2인 게임으로 대부분 돌렸기 때문에, 이 날의 5인 게임이 다소 생소했다고나 할까요. 한 라운드의 대부분의 역할이 특권을 포함하는 2인 게임과, 한 가지 역할을 제외하면 모두 특권과 무관한 5인 게임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2인 게임과 5인 게임의 차이점은 비단 역할선택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게임 전반에 걸쳐서 꽤 큰 차이점을 나타내기 때문에 저로서는 거의 새로운 게임을 접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커피를 포함한 다품종 소량생산과 상인+건물 러쉬를, 비형 스라블님은 상인 전략, Jade님은 담배 주종에 항구+조선소 콤보로, twinkrystal은 옥수수 러쉬를, 비형 스라블님 부인께서는 설탕과 담배 콤보로 전략의 틀을 잡으시더군요.

저는 담배를 제외한 모든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공장제 수공업소를 잡지 않아서 원활한 건물러쉬가 어려웠습니다. Jade님이 항구+조선소로 틀을 잡고 마구 승점사냥을 하시길래, 얼른 건물러쉬로 끝을 내려고 했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특히 바로 왼쪽에 계신 비형 스라블님이 같은 상인 전략으로 나가시는 덕분에 물건도 몇 번 못 팔았습니다. 5인 게임에서 왼쪽 사람이 상인을 잡으면, 저는 물건 팔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쩝~

게임은 Jade님이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twinkrystal이 1점차 신승을 거두었습니다. 한번에 옥수수 6~7개를 끌어당긴 옥수수 러쉬의 막강한 힘을 알 수 있겠더군요. 저는 대형 건물 2개를 포함해서 건물 점수로 역전을 노렸었는데, 창고 없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말로는 처참하더군요. 훌쩍~ 3등에 그쳤습니다.

사실 푸에르토 리코는 너무 많이 돌린 게임이라 질릴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오는군요. 명작은 명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게임을 마쳤을 때, 오후 6시 정도 되었었는데, 모두 귀가하셔야 한다고 하셔서 모임은 끝이 났습니다. 매번 오셔서 게임하실 때마다 따님을 품에 안고, 조기교육(?)을 하셔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게임하시는 비형 스라블님 내외분과, 몇 번씩 길을 잘못 들어서 광주 일대를 훑고 오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즐거워하시는 Jade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