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명절이 찾아왔다. 가족사의 뒷 이야기를 알 게 된 지난 해 이후로 명절이 달갑지만은 않다. 그래도 아내의 입장도 있고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본가로 향했다.

명절 때 만날 가족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어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본인과는 거리가 먼 다른 나라 이야기이다. 명절이 되면 항상 집안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수위가 올라간다. 이날도 숙모와의 마찰로 인해 숙부님 가족들은 거의 정오가 되어서야 합류를 했고, 이로 인해 오전 내내 유쾌하지 못한 분위기가 집안을 지배했다. 본인이야 늘상 겪는 일이니 익숙하기까지 한 일이지만, 아내가 이런 분위기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것 같다.

항상 명절 때 친척들이 모이면, 먹고 TV보는 것이 전부였던 패턴을 깨보고자 몇년 전부터 보드게임을 들고가기 시작했는데, 올해 명절에는 그 목적이 좀 바뀌었다. 어색해지는 분위기와 굳어지는 내 마음을 감추고 싶은 것이랄까. 사실 숙부님 가족들은 재작년의 포뮬라 드 영향으로 보드게임을 아주 달가와하지는 않는 눈치이다. 그래서 항상 점심만 먹고 한 두시간 뒤면 어떤 핑계로든 귀가해버리곤 한다. 설이나 추석 당일 늦게 와서 점심만 먹고 돌아가는 일. 이것이 숙부님 가족의 명절 보내기이다.

이번 설에는 평소 자주 보기 힘들었던 친척들이 많이들 찾아왔다. 큰 고모의 장녀인 일임이 내외가 벌써 4살이 된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그리고, 순천에 거주하느라 명절 때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큰 고모님도 찾아오셨다.

조카가 되는 일임이 아들은, 또다른 조카인 예은이(본인 친동생의 딸)에게 처음엔 신기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의 중심이 자신에서 멀어지는 것을 감지했는지, 견제 심리가 발동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부모라 맞벌이인지라, 부모의 사랑이 아쉬운 티가 나는데, 유난히 심술을 부리는 모습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이지 고도의 집중력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 명절에 가족간 회동을 하는 일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심란했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느낌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남편이 본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집안의 며느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많이 미안했다. 그래도 큰 불평없이 명절을 보내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항상 명절 때마다 중노동에 시달리신다는 이유로 뒤늦게나 찾아뵙게 되는 처가 식구들께 송구스럽다. 그래도 모두들 새해에 좋은 일이 많으시길...